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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승 Jun 30. 2020

5. 어차피, 사기판 '나비의 꿈'

현대미술은 어렵다?

조영남은 미술계의 사기꾼인가, 현대 작가인가.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일단락된 사건은 법정을 떠나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대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 미술계의 속내가 복잡한 탓이다. 조영남 스스로 ‘관행’이라고 표현했고, 전문가들도 ‘관행’의 위법성 여부를 말했지만, 그 표현에서부터 그간 빈번했던 현대미술에 대한 오독과 오역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조영남, <병마용갱>

대작 논란으로 상징적 이름이 된 그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1960년대 후반 서구 미술계를 강타했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미니멀 아트로도 불리는 미니멀리즘은 빈번하게 오독돼 자칭 미술 전문가들도 여전히 여러 문맥에서 잘못 사용하는 문제적 용어다.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에 미니멀하다는 수식을 붙이듯, 최소로 표현된 추상회화를 미니멀리즘이라 수식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독이자 오역이다. 미니멀한 아트와 미니멀리즘은 구분돼야 한다.


서구에서 미니멀리즘이 대두된 1960년대 후반의 시대적 배경을 상기하고자 한다. 당시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인간의 종말’을 예고하고,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저자의 죽음’을 진단한 직후였다. 데카르트가 인간에게 세계의 주인의 자리를 허락한 이래 인간은 세계를 대상화해왔다. 의인화한 동화를 생각하면 쉽다. 인간이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시각으로 재단해 동일화시키려 한 것이다.


푸코는 그런 인간중심주의를 종식시키고자 했고, 바르트는 구체적으로 예술 영역 안에서 저자에게 사망 선고를 내려 창조자로서의 지위를 부정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68혁명이 일어나고 반전운동과 여성운동, 인권운동이 세계를 휩쓸었던 당대는 기존 질서를 반성하며 기득권에 항거하는 시대였다. 미술계 내에서도 제도권 미술을 거부하고자 한 작가들이 저자성을 지우기 위해 스스로 손을 작품에서 거둬들였다. 그러니까 합리를 주장하지만 결국은 불합리한 인간의 천재성 따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반성이었다.

Frank Stella, 1964년의 작업 모습

<블랙 Black> 시리즈로 유명한 프랭크 스텔라(Frank Philip Stella)는 “당신이 본 거 그게 당신이 본 거야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가 캔버스에 남긴 일정한 간격의 블랙 드로잉은 거창한 예술성이 개입된 게 아니라 그냥 자로 잰 반듯한 검은 선이다. 반면 한 시대를 앞선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그 이름도 숭고한 <숭고한 영웅 Vir Heroicus Sublimis>을 가로지르는 선은 그냥 선이 아니다. 작가는 ‘Zip’이라 명명했다. 뉴먼은 ‘위대한’ 예술성을 실천하고자 했고 세상을 열고 닫는 지퍼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린버그가 상찬했던 모더니즘의 바로 그 정신이며, 스텔라가 엿을 먹이고자 했던 윗세대의 그 ‘위대한’ 예술이다. 그러니 평평한 화면에 선을 내려 그었다고 이 선, 저 선 뭉뚱그려 추상적이니, 미니멀하다느니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추상과 미니멀리즘은 극과 극의 예술이다.

Barnett Newman, Vir Heroicus Sublimis, 1950, 242x513cm

미니멀리즘 작가로는 칼 안드레(Carl Andre),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등이 대중적이다. 스텔라처럼 캔버스에 뭔가를 그려 넣는 행위조차 하지 않겠다는 이들은 주로 설치 작업을 했다. 공장에서 제작한 철판을 전시장 바닥에 깔거나, 스틸 상자를 벽에 나란히 붙였다. 벽에 붙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바닥의 철판은 작품인지 타일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이걸 밟아도 되는지 안 되는지 당황스럽다. 모더니즘 이후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이처럼 관객에게로 옮겨 갔다. 작품이 되고 말고는 이제 관객이 결정한다.

Carl Andre, 1988 전시 전경, Palacio de Cristal, Madrid

또 한 명의 소개하고픈 작가는 미니멀리즘 작업을 하다 개념미술로 옮겨간 솔 르윗(Sol LeWitte, 1928-2007)이다.  1967년 “아이디어가 미술을 만드는 기계”라고 선언했던 그는 바닥 타일인지 작품인지 모를 사물의 물성조차 배제하고자 했다. 이후 갤러리 벽에 무수한 직선을 남긴 <월 드로잉 Wall Drawing> 작업에 천착했다. 물론 작가인 그는 설명서에 사인을 할 뿐, 직접 선 한 줄을 긋지 않았다. 수백수천 개의 선은 제도사들이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윗의 작품이다.

Sol LeWitt, Wall Drawing 289, 1978, MASS MoCA

이제 《50주년》특별전(1부: 4.21.-5.31 2부: 6.16.-7.19.)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현대 전시장에 서서 작품을 맞을 차례다. 50주년 전시인 만큼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망라돼 있다. 작품 수가 워낙 방대해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된 이번 전시에서 2부는 설치 작품들에 집중돼 있다. 총 72점의 작품 가운데 작가가 직접 제작한 작품은 얼마나 될까.

갤러리현대 《50주년》 특별전 전경

눈길이 아닌 발목을 잡아끄는 작품부터 보자면, 작품명 U:나비의 꿈, 〈U:쥐 죽은 듯〉이다. 맨바닥에 깔려 관객에게 긴장감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좌대 위에 깔렸으니(안전바가 없는 게 어딘가!), 명백히 ‘나 예술품이에요’하는 작품이다. 벽에 붙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캔버스를 닮아 평평하고, 색면회화를 닮았으며, 작품명에서 보듯 서사가 있으니, 벽에 걸렸다면 언뜻 모더니즘 정점의 추상회화로도 보였을 작품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을 위반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다. 오브제인데, 게다가 이불이라는 구체적 공예품이다.

이슬기, 〈U:쥐 죽은 듯〉, 〈U:나비의 꿈〉, 2020

2014년부터〈이불 프로젝트: U〉를 진행했다는 이슬기 작가의 2020년 작이다. 작가는 안과 밖, 가로와 세로 등 고정관념의 경계선을 하물고자 했다고 한다. 일상의 이불을 그 자체로 전시 공간 안으로 들인 자체가 경계 허물기라 할 수 있다. 이불은 침대 위에 있어야 하며, 납작한 작품은 벽에 붙여야 한다는 공식 허물기인 셈이다. 또한 이불을 꿈과 현실의 경계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는 누빔이불이라는 공예를 통해 타 문화 장인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 땀 한 땀 이불 위에 꿈을 수놓은 이는 작가가 아니란 얘기다. 작가는 꿈을 수놓자고 했고, 공들여 수놓은 이는 누빔이불 장인이다. 이때도 작품 브랜드는 ‘이슬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급예술과 거리 먼 화투를 소재로 다른 이의 손을 빌려 회화를 제작한 조영남은 사기꾼일까. 혹자는 설치가 아닌 회화이기 때문에 작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고 항변할지 모르나, 신고전주의 시대에 그 ‘위대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도 휘하에 제자를 여럿 뒀고 밀려드는 주문품을 제자가 대신 그렸다. 굳이 200년 전부터의 관행을 말하지 않아도, 포스트-매체의 조건에서 매체의 존립 근거는 무너진 지 오래다. 회화니 설치니 하는 매체 구분조차 그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그렇다고 ‘사기가 아니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작가는 ‘저자성의 삭제’라고 말하지 못하고 ‘관행’이라고 했으며, 전문가들조차 이 ‘관행’이라는 작가의 설명에 기대어 유무죄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본인이 행한 걸 알지 못하고, 작가를 평하는 전문가들도 작가가 뭘 행했는지 알지 못한다. 조영남의 작품을 구입한 이들도 단지 유명세에 큰돈을 지불했을 뿐 그 가치를 가늠하지 않았다. 작가도 모르고, 전문가라는 평자들도 모르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법원도 모르고, 모르는 이들끼리 모여 정답을 찾고자 했으니 어차피 사기판, 나비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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