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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Mar 27. 2023

무기력과 불안과 허무 그 어디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 지금 쓰고 있는 줄이어폰의 수명이 다 됐다. 리모컨 기능은 아예 무용지물이 됐고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면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못 듣는다. 에어팟을 사야 하나 다시 줄이어폰을 사야 하나 갈팡질팡 하다가 아무것도 못 사고 그냥 나왔다. 아이폰용 줄이어폰은 삼만 원 조금 못 미치고 에어팟 2세대는 대략 이십만 원 중후반, 에어팟 프로 3세대는 삼십만 원 중후반대의 가격을 자랑한다. 이걸 사야 하는가. 삼만 원과 삼십만 원 사이에는 너무 큰 괴리가 있다. 프리스비와 에이샵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2. 에어팟 삼십오만 얼마는 몇 달을 고민했는데 지난 주말 러쉬에서 다 떨어진 목욕용품에 더해 사고 싶었던 목욕용품까지 도합 이십육만 원어치를 샀다. 에어팟과 러쉬의 차이는 뭐였을까. 당장 없어도 엄청 아쉽지는 않은 전자기기와 청결, 위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도구의 차이라고 합리화해 볼 수도 있겠다.


3. 내 소비패턴은 늘 이따위다. 좋은 겨울 외투 삼십만 원은 너무 아깝고 비싼데 소설책 삼십만 원어치, 네일아트 이십만 원은 별 고민 없이 지불한다. 통상적으로 옷에 투자하는 걸 더 현명한 소비라고 할 것이다. 나는 통상적이지 못한 사람인가. 상담 선생님한테 물으면 가치가 다른 것이라고 대답해 주실 테다. 비슷한 문답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다만 난 나를 지독하게 혐오하고 또 혐오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 중한 무게를 두는 나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4. 월급이 입금됐고 그냥 뭐라도 사고 싶어서 운동화 매장, 귀금속 매장, 대형마트, 전자기기 매장 등등을 정처 없이 헤집고 다니다가 그 어떤 것도 안 사고 복합쇼핑몰을 나왔다.


5. 안 산 걸까 못 산 걸까. 못 산 건데 안 산 거라고 정신승리 하는 것일 수도 있다.


6. 관심 있는 사람이 즐겨 신는 운동화와 똑같은 모델이 눈에 들어와서 다른 색상으로 살까 말까 한참을 들었다 놨다... 미저리 같아서 그만뒀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디자인이라 밖에 나가면 저거랑 똑같은 신발 천지삐까리일 텐데도. 뭐 눈엔 뭐만 보이는 법이다.


7. 대신 로또 복권은 화끈하게 만 원어치 구매했다.


8. 대형서점이 입점해 있는 복합쇼핑몰이었는데 서점에 발길도 주지 않은 건 오늘이 처음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처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결과가 뻔한 것처럼. 그렇게 나는 서점이 있으면 반드시 들어가서 한 권은 손에 들고 나오는데 오늘만큼은 서점이 쳐다보기도 싫었다.


9.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번다한가. 왜 이다지도 슬프고 화가 날까. 무기력하고 불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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