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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Sep 04. 2023

가성비 사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원으로 사치하는 방법


대부분의 미용실에는 머리만 감겨주는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메뉴가 있다. 미용실마다 가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15,000원을 넘기는 곳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이는 내 바운더리 안에서의 가격이고 압구정, 신사, 강남 등등의 땅값 비싼 동네 혹은 연예인이나 셀럽이 주 고객인 업장은 어떨지 알 수 없다. 하여튼 내 이동거리 안에 위치한 미용실에서 샴푸 서비스에 책정된 가격은 대략 10,000원 내지 12,000원이다. 1-2년 전만 해도 5,000원에 해주던 곳이 어느샌가 두배로 올랐지만 그러려니 하고 있다.

두 배라고 해도 결국 만원이다.


나는 12,000원을 내고 회사 근처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들러 머리만 감고 오는 행위를 즐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의미 없는 소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행위를 나 홀로 가성비 사치라고 명명한다.


미친 듯이 뛰는 물가 속에서, 뭐든지 경제적인 재화로 책정되어야 만족하는 배금주의자들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10,000원 한 장으로 한 껏 사치 부리는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분전환을 위해 맛있는 걸 먹으러 가려고 해도 배춧잎 한 장은 너무 미약하다.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에 더해 보기에 좋고 맛도 좋은 디저트를 주문하려고 하면 배춧잎이 두 장은 필요할 것이다. 아메리카노가 아닌 다른 음료를 시킨다면 예산은 더 높아진다. 그나마 먹는 것이 가장 만만한 사치의 방법인데도 이렇다.


쇼핑으로 넘어가면 예산은 10,000원의 5배 또는 10배로 훅 올라간다. 이를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그런데 날 위한 소소한 사치를 허락하고 싶다면 그때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미용실에서 머리 감는 일이 왜 가성비 사치가 되는가,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굳이 남의 손을 빌린다. (그것도 돈을 내고)

2. 훈련받은 전문가의 세심한 손길이 두피 구석구석 시원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3. 뽀송하고 상큼하게, 완벽하게 물기를 말려준다.

4. 디자이너에 따라 간혹 뻗친 머리를 살짝 드라이로 잡아주기도 한다.

5. 이 모든 것을 10,000원으로 내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해결할 수 있다.

6.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 길어야 30분

7. 점심밥을 다소 포기하고 미용실에 다녀오기에 나쁘지 않다.


머리를 감겨주는 디자이너가 일주일 간격으로 재방문한 나를 보며 이렇게 종종 미용실에서 샴푸를 자주 하냐고 묻길래 사치 부리고 싶을 때 간다고 대답했더니 상당히 놀라면서 납득하는 게 재밌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라길래 이런 생각으로 미용실 방문하는 사람이 또 없나 싶었는데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샴푸비의 가격이 여기서 더 오르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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