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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Aug 22. 2017

내일을 위한 시간(2014)

누군가에 밀려 미끄러진, 혹은 누군가를 밀어버리고 올라간 높이

저희 아버지는 대기업 회사원으로 정년까지 일하셨었습니다. 워낙 성실하신 탓에 제가 어렸을 적 실직하신 기간 단 하루도 없이 매달 꼬박꼬박 월급 봉투를 어머니께 가져다 주셨죠. 제게 회사란 그런 곳이고 정년 퇴임이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당연한 인생의 단계 중 하나였습니다. 석사 학위까지 받고 대기업 직장인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저는 이미 시작과 동시에 정년 퇴임 단계까지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IMF라는 전대 미문의 금융위기가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삼키기 전까지는요.


우리 나라도 IMF 이후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졌고 고용 불안이 직장인들의 가장 큰 걱정이 된 거처럼 유럽도 이런 고용 안정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이 영화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다르덴 형제가 만든 일종의 사회 실험극 영화입니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저해하는 어떤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내가 윤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공동체 이익 속에서 내 이익을 극대화 하는 선택이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사회 실험극 말입니다.


주인공인 산드라( Marion Cotillard)는 병가를 끝내고 직장을 복귀하려는 주부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드라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산드라를 해고하는 대신 나머지 16명의 팀원들에게 일인당 1000유로 씩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안을 양자 택일할 것을 제안하고 이를 투표에 붙여 산드라의 해고가 결정된 상황입니다. 금요일 오후 산드라를 지지하는 직장 동료와 함께 사장을 만나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를 허락받은 후 산드라는 주말 동안 직장 동료들을 만나 월요일 아침 자기에게 투표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결정은 과반 수 이상의 찬성으로 하게 되므로 산드라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복직을 지지해줄 동료들 약속의 숫자 아홉입니다.

산드라는 두 아이를 양육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직장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주말 내내 산드라는 동료를 한 명씩 찾아다니며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여정은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좌절을 주며 반복이 되는데 같은 말을 녹음해둔 테입 마냥 같은 레파토리가 반복하지만 만나는 상대의 반응과 조금씩 변해가는 산드라의 심리적 변화 때문에 매 대화가 처음인냥 긴장이 팽팽하게 전개됩니다. 여기서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산드라는 동료들에게 투표 결과에 대해 비난을 하거나, 월요일에 자신을 지지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말, 자신은 직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월요일에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지 그져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지점에서 산드라의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건 IMF를 거치며 미끌어지는 높이를 경험해본 제 자신의 경험이 이입되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상대의 결정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이 동정받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쥔 권력자나 단체에게 거절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산드라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는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Sandra: I wish that was me.
Manu: Who?
Sandra: That bird singing...

다르덴 형재는 동료를 만나는 산드라 모습을 통해 관객들을 이 사회적 실험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저 선택을 비난 혹은 지지할 수 있는가? 보너스가 100유로 (10만원) 이라면 혹은 10000유로(1000만원)라면 저들은 선택을 다르게 하지 않을까?

흰색 작업복을 입은 동료들과 이방인처럼 분리되어 보이는 산드라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정서는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런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속 산드라나 동료들의 모습은 한국인 관점에서 볼 때는 다소 이상하리만큼 냉정하다는 생각에 이질감을 느끼게도 됩니다. 물론 영화라는 건 감독의 의도를 투영하기 때문에 실제 프랑스인들의 모습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만, 이쯤되면 등장해줘야 할 아이의 순진함에 엄마가 오열하는 장면이나,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료, 그리고 마지막에 감정을 폭발시키는 주인공의 신파 장면이 등장할 법도 한데 영화는 무서우리만큼 자제를 하는 주인공 그리고 때로 지나치게 냉정한 동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냉정함이 다소 흔들리며 조금 너무 나갔다 싶은 장면도 없지는 않은데, 특히 그녀의 동료 중 한 명이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과 헤어질 각오를 하고 결정을 번복하는 장면은 조금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생경함 역시 제가 그네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유일한 지점이었습니다.

동료들도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괴로워 합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동료들이 산드라에게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는 부분입니ㅏ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한다고 하느냐. 보너스를 포기한다고 한 사람이 누구냐. 모든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고 공동체의 결정에 자신의 비윤리적 결정을 희석해도 될 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용기있는 다수의 편에 설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Two Days, One Night 이지만 실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산드라의 시간은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지 3박 4일입니다. 아마도 영화의 원제에서의 1박 2일은 산드라가 설득을 위해 소진한 토요일과 일요일 보다는 산드라의 부탁을 받은 동료들이 보내게 된 주말과 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속에서는 그 One Night은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이미 산드라의 여정을 삼인칭 시점에서 관찰한 관객들에겐 동료들의 One Night이 길고 괴로운 밤이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두 발 뻗고 잘 잔 사람들도 있겠죠.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니까.


월요일 아침 산드라는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에 합당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다르덴 형제는 우리들에게 다른 사람을 밀어버리고 올라간 높이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산드라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남편과 나누는 통화 내용을 끝으로 그녀가 걸어가는 뒷 모습을 그져 아무말도, 음악도 없이 한참을 보여주며 깜깜한 적막속에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게 됩니다. 저는 그 적막속에서 자리를 떠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며, 그녀가 지금 어딘가에선 행복하길 간절히 바래봤습니다.

우리 잘 싸운거지? ...나 행복해.

별점: ★★★★

한줄평:

1.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바로 경험해 본 높이. 누군가에 의해 밀려서 미끌어져 본 높이 혹은 누군가를 밀어버리고 올라간 높이.

2. 산드라의 뒷 모습이 멀어지고 엔딩 크레딧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가 어딘가에서 꼭 행복해져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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