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밤에 떠오른 생각
지금도 책을 볼 때 중요한 부분은 색연필을 이용해 줄을 긋는 습관이 있다. 컬러 볼펜을 써보기도 하고 형광펜을 써보기도 했지만 색연필을 사용해야 마음이 편하다. 왠지 끝이 강하고 날카로운 볼펜은 새 책에 흠을 내는 거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고 형광펜도 뒷장으로 묻어나는 일이 잦아 좋아하지 않는다. 색연필 특유의 뭉개짐 때문에 손이 떨려도 밑줄이 비뚤거리지 않아 보인다는 장점도 있다.
며칠전 자주 쓰던 초록색 색연필 끝이 닳아버린 걸 알았다. 늦은 밤 커터칼을 하나 꺼내 색연필 끝을 깎다보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그 순간 내게 칼로 가지런히 다듬어진 뭉툭한 연필 끝에서 엄마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름 설움이 되었던 아픈 기억 중 하나는 내가 끝내 (당시) 최신 샤파 연필 깍기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 시절 엄마는 늘 내 연필 대여섯 자루를 손수 깎아서 필통에 채워주셨다. 하지만 난 부잣집 친구들이 하나씩 갖고 있었던 삼각형의 샤파 연필 깎기에서 튀어 나온, 사람의 손길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을 법하게 반질 반질 완벽한 원형으로 다듬어진 연필이 늘 갖고 싶었다. 나에게 필통속의 연필 모양은 부잣집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구분하는 일종의 상징이었던 거 같다. 연필을 쓸 때마다 나는 일찌감치 자본주의 계급 시스템을 느끼며 스스로 좌절하고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언젠가 엄마는 다음 시험 성적을 잘 받으면 내년엔 연필 깎기를 사주마 약속했고 아마도 난 열심히 공부해서 그 성적을 받았던 거 같다. 하지만 왠일인지 엄마는 끝내 샤파 연필 깍기를 사주지 않으셨다. 어린 마음에 그 사건은 두고 두고 내게 아쉬움으로 남았고 지금도 어디선가 그 연필 깎기를 보면 어린 시절 나름 엄마의 배신으로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왜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그 후 연필이 내 필통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어머니께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본 적은 없이 그 일은 기억에서 잊혀졌다.
내가 점점 나이가 들어 대학교에 입학해서 밤늦게 공부를 하던 어느날 며칠전처럼 색연필을 다듬다가 문득 그 시절 엄마가 칼로 깎아주신 연필이 기계로 갈아낸 연필 보다 훨씬 예쁜 연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던 거 같다. 아마 그 시점이 내가 진짜로 철이 들었던 날이 아닌가 싶다.
그 후로 세월이 한참 더 흘러서 지금 나는 당시 엄마 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중년이 되었고 이제 엄마라는 말을 하기 쑥쓰러울 정도로 엄마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공부많이 하고 재주도 많이 익혔다는 나이 들어버린 아들이 깎은 연필 끝은 엄마가 그 때 해주신 것 처럼 가지런하고 예쁘지 못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엄마가 깎아주셨던 연필의 반듯한 모양을 흉내낼 수가 없다.
아마 그 연필은 엄마 사랑을 닮았던 거 같다. 달그락 달그락... 필통속 엄마 사랑이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걸어가던 날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