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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Sep 09. 2017

영화 <딥 임팩트> 그리고  소설 <모비딕>

그냥 밤에 떠오른 생각

평소 소설가 김중혁 작가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포츠인이나 예술인에 대한 이런 종류의 호감은 유가 분명하지 않은 단순한 느낌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고, 그렇다고 느낌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분명한 육감같은 경우도 많다.


꽤 오래전 봤던 미미래더 감독의  <딥 임팩트>라는 SF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SF 장르 영화의 관점에서 그리 호평받는 영화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다루는 가족애와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장면과 대화들을 좋아한다. 그것도 참 많이 좋아한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김중혁 작가의 오래전 인터뷰 기사 한 토막을 우연히 읽었다.  김중혁 작가가 영화 <딥 임팩트>를 그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김중혁 작가가 영화 <딥 임팩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장면으로 언급한 걸 본 것이다. 바로 베테랑 우주선 선장이 사고로 눈을 잃은 젊은 우주인에게 소설 <모비딕>을 읽어주는 장면이다.


살면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드물거니와 영화 속 많은 장면 중 그 장면을 딱 짚어 이야기하다니! 그 순간 김중혁 작가는 나의 막연한 호감 작가에서 분명한 완소 작가 #1으로 실시간 업그레이드 되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타자에 대한 호감이 단 한 사람의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여주인공 테레자는 자기 편인지 아닌지를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에서 알아낸다고 했다. 나도 아마 본능적으로 상대가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 내 편을 판단하는 거 같다.

대부분 기억조차 못하거나 공감 해주지 않는 내안의 어떤 느낌을, 누군가 기억해주고 자신도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혜성을 폭파하기 위해 우주로 나선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이 사고로 눈이 멀게 되는 대목이다. 눈이 먼 우주비행사가 멍하니 누워 있는데, 캡틴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말을 건다. “책 가져왔어?” “아뇨, 전 영화 세대라서요.” “쯧쯧, 내가 《모비딕》과 《허클베리 핀》을 가져왔어. 읽어줄게. 잘 들어. 모비딕 챕터 원.” “푸하하하.”

나는 “모비딕 챕터 원”이라고 캡틴이 읽고, 눈이 먼 우주비행사가 “푸하하하” 웃는 장면이 좋다. 두 사람의 웃음이 좋다. 그래, 멍청한 일이지,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지. 우주에서, 이 망망대해에서, 인간이쓴 책을 낭독하고 듣는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알지. 그래도 캡틴은 낭독을 시작한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첫 문장 중 하나!)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했다.”

출처: http://topclass.chosun.com/board/print.asp?tnu=201110100007&cPage=1&catecode=


난 이 장면을 지금까지 본 우주를 다룬 영화에 나온 씬 중 가장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이 씬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 실명이라는 극단의 비극에 직한 인간과 이를 위로하는 세대를 초월한 인류애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데 있어 문학의 역할까지를 포괄한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느낌을 함께 기억하고 같은 감정을 나눌 사람을 늘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유명 소설가로부터 내 감정을 이해받았다는 느낌이 너무 좋다.


※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제작사/배급사/Getty imag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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