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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Aug 12. 2017

컨택트 (Arrival, 2016) - 下

머리와 가슴을 모두 자극하는 영화

上 편에 이야기 한대로 이 영화는 높은 작품성을 가진 작품인만큼 각종 시상식에서도 충분히 눈도장을 받았습니다. 물론 작년 한 해 <라라랜드>라는 워낙 헐리웃이 사랑할만한 작품이 나와서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점이 아쉽긴 합니다만, 저는 이 영화가 예술적, 기술적으로 더 인정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下 편에서는 이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서 놀라운 점에 대해서 기술해보고자 합니다.

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이 압도되는 지점은 바로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이 작곡한 음악이 루이스와 한나의 일생과 함께 흐르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처음 볼 때도 그 음악과 영상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비선형적 구조로 인해 영화를 다시 볼 때 영화의 시작에서 다시 느껴지는 감정적 울림에 있어서 요한 요한슨의 음악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요한 요한슨(1969년생)은 아이슬란드 출신에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곡가라고 합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나오는 음악은 이 영화만을 위해 작곡된 스코어는 아니고 이전에 <셔터 아일랜드>에서도 나온 바 있는데, 그 영화에서도 인상적이었다고 느꼈지만 <컨택트>에서는 영화의 주제와 영상 그리고 소리가 하나로 움직이는 듯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sziNUZa4Sw&list=RD0sziNUZa4Sw&index=1


이런 서정적인 음악 뿐 아니라 루이스가 처음으로 외계인을 만나기 위해 외게인 우주선 내의 터널을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온 압도적인 사운드는 주인공들이 실제 느꼈을 두려움, 공포, 호기심을 잘 드러낸 멋진 스코어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는데 뱃고동 소리 같은 저음이 온 몸을 감싸던 순간부터는 사운드에 완전히 압도되어 이후 영화가 걸작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gGaM-6bxoE&list=RD0sziNUZa4Sw&index=4


아쉽게도 요한 요한슨은 아카데미에서 음악상 후보에도 노미네이트 되지 못했는데요, 대신 Sylvain Bellemare 팀이 음향 편집 부분에서 오스카를 수상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거대한 동물을 연상시키는 저음의 기괴한 울음 소리를 내게 되는데요. 약간은 공포스러우면서도 경건한 느낌의 소리를 내 달라는 드니스 빌뇌브 감독의 요구를 만족 시키되 인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쓰기 위해서 사운드 팀이 뉴질랜드 토종 새의 울음 소리를 샘플링 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통해 영화 전체의 사운드 믹싱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음악과 사운드의 역할은 정서적 밀착과 사실감 부여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만큼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좋은 오디오 시설이 갖춰진 환경에서 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연기 부분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이룬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의 폭과 깊이가 상당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과 올해 개봉한 <녹터널 애니멀스>나 이 영화에서의 에이미 아담스의 섬세한 표정 연기를 보게 되면 현재 헐리웃을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여배우로 에이미 아담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에이미 아담스는 탁월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어머니로서의 모성, 한 남자를 사랑하는 감수성 그리고 과학자로서의 지성, 세계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히로인의 역할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이었음에도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감히 작년 오스카 여우 주연상이 에이미 아담스로 갔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어야 하는 에이미 아담스


이 영화의 핵심 주제와 전체 구조가 인생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 목적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도구로서 사용되는 외계인의 언어는 시간과 기억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한 과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외계의 언어를 통해 미래를 이해하게 된다는 과학적 뼈대는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방식도 달라진다."라는 말로 풀이되는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외계의 언어는 지구상의 일반 언어와는 달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혹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선형적으로 쓰여지는 언어가 아니라 앞과 뒤가 없는 원형으로 쓰여진다는 점에서 시간의 선행이 없이 쓰이기 때문에 단지 언어의 구조적인 문제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시공의 개념에서 재정립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간과 인과론 모두를 백지 상태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에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누군가 상대에게 하트 모양의 그림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한 번에 해석될 수 있는 그림 문자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런 그림 문자는 앞뒤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한 번에 내용이 전달되는 개념이겠지요.

이 영화에는 유명 미래학자이자 인공지능 전문가인 Stephen Wolfram 그리고 여성 언어 학자 Jessica Coon 등이 과학적, 언어학적 사실성을 뒷받침 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원작 소설인 <The Story of Your Life>의 저자 Ted Chiang는 애초에 자기 소설의 영화 시도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으니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 및 스크립트를 보고 자기 소설의 핵심 주제를 잘 표현할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복잡한 물리학과 언어학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자 및 과학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니 아래와 같은 예를 들더군요. 우리가 방안을 한쪽에서 시작해서 다른 쪽 문까지 걸어가는 경우 실제 수학과 고전 물리학은 이 절차를 세분화 해서 시간 순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왼쪽 발을 내딛고 다음에 오른 발 전진... 이런 식으로 해서 방안을 가로지르는 시퀀스를 설명할 수 있는데 실제 사람이 그 행위를 인식하고 수행할 때 시작점과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있고 그 사이의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미 우리가 목적지를 결정한 상태에서 그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햅타포드 인들이 말을 하는 방식으로 적용을 해보면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행위를 수행하게 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이냐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주라는 것은 빅뱅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방향, 즉 우주의 종말을 향해서 시간이 흐를 수 밖에 없는 열역학 법칙에 의해 지배받게 되고, 기억이란 엔트로피를 낮추는 방향, 즉 과거를 향할 수 밖에 없는데 '미래를 기억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엔트로피를 낮출 수 없기 때문에 '기억한다'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Stephen Wolfram 인터뷰 (블루레이)
언어학자 Jessica Coon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 Ted Chiang


영화 속에서 햅타포드 인의 언어는 커피잔 속에 남은 잔형처럼 보이는 그림문자인데 실제로 이 문자는 랜덤하게 그린 이미지가 아니라 영화를 위해 실제로 만들어진 언어라고 합니다. 영화에 참여한 과학자 Stephen Wolfram의 아들은 시각적으로만 의미있는 문자가 아니라 영화의 내용을 과학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기를 원했고,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았던  Patrice Vermette이 그림 문자의 디자인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Wolfram 팀이 이를 Wolfram Language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생성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면서 실제로 의미를 갖는 언어로서 완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속에서는 관객에게 쉽게 개념만을 전달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장치에까지 과학적 투자를 아끼지 않은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래 그림은 Wolfram 팀이 햅타포드 언어의 규칙을 정하기 위해 원문자를 12개의 섹션으로 나누고 Wolfram Language를 통해 이를 시각화 하는 프로그래밍 코드를 보여줍니다.




보통의 SF 영화는 그 과학적 깊이는 빈약하되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거나 탄탄한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지적 쾌감에 초점을 맞추거나(하드 SF) 하는 방법을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지적 쾌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 대중성이 떨어지거나, 관객의 외면을 받게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에 인간의 실존 문제나 모성이 주는 감동같은 정서적 울림이라는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한 경우입니다. 즉,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의 대중성을 확보하고 일반 관객을 배려한 감독의 친절까지 겸비하여 하드 SF 드라마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발표할 때 마다 계속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됩니다.

별점:★★★★
한줄평: 머리와 가슴 모두를 울린다. 진지한 주제, 빈틈없는 연출, 세련된 음악, 영혼을 울리는 연기.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SF 걸작이 또 한 편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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