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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Aug 12. 2017

컨택트 (Arrival, 2016) - 上

머리와 가슴을 모두 자극하는 영화


2017년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지만 누군가 제게 올해 본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영화 <컨택트>, 원제 <Arrival>을 뽑을 겁니다. 영화를 본지 몇 달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블루레이도 출시되어 여러 차례 영화를 다시 돌려봤지만 볼 때 마다 느끼는 지적인 전율과 정서적 여운이 쉬 사라지지 않는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SF 영화 중 한 편이 1997년 로버트 제멕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메튜 메거너히 주연의 영화 <콘택트, Contact> 입니다. 이 영화는 유명 SF 소설가 칼 세이건의 소설 중 유일하게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지적인 SF 영화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수작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플롯이 외계에서 수신한 메시지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가 주요 이야기의 축이었고 거기에 과학과 종교의 문제, 가족의 문제까지 다뤘다는 점에서 이 영화 <Arrival>과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마 국내 배급사에서 이 영화의 제목을 원제와 다르게 <컨택트>로 가져가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추측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애초에 이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 영화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올라온 호평들을 보면서 호기심으로 영화와 원작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제 인생 영화 한 편이 추가되었습니다.

조디포스터 주연의 영화 콘택트(Contact, 1997)의 한 장면

보통 잘 만들어진 SF 영화는 관객에게 둘 중 하나의 약속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고 거기서 오는 오락적 요소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어려운 과학적 이론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아주 진지한 질문을 던져 사회적 논쟁 거리와 지적 카타르시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자를 완성하는 영화는 최근 마블이나 DC 시리즈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장르의 영화는 극영화에서는 보기 힘들고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 <컨택트>는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잘 찾았기에 'SF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중에서 저는 이 <컨택트>는 수작을 넘어 '걸작 SF'로 칭해도 손색이 없는 과학적 리얼리즘과 정서적 울림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If you could see your whole life ahead of you right now, would you do anything differently ?"


영화 속 주인공인 루이스 뱅크스가 상대역 이안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외계인과 언어학, 물리학 등을 다룬 SF 영화인 동시에 인생의 근본적 목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영화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목적을 '어떠 어떠한 성취, 결과'를 정해놓고 거기까지 도달했느냐, 어떻게 갈것이냐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시간의 인과 관계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일면 타당하고 합리적이긴 하지만 영화는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시간 속에서 과연 그 과정이 최종 결과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것인가를 관객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약 그 결과를 미리 알 수 있고 정해져있다면 과연 그 삶의 여정은 아무 의미가 없고 궁극적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온전한 행복마져 버릴 수 있는 것인가? 이는 상상에만 의존한 의미없는 선문답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결정론적 숙명 -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는다 - 을 생각해보면 현실에 당면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음이라고 하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인생의 목적이 최종 결론이 결코 죽음이 아닐진데 그렇다면 인간의 실존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탄생과 죽음만이 인생의 시작과 종착역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간다는 그 수행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루이스 뱅크스가 자신의 딸과 보낸 짧은 시간의 시작과 끝을 플래시 백 형태로 보여주게 되는데 영화 마지막에 이 장면이 반복되면서 영화가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 비선형적 인생관을 영화의 편집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던 루이스의 기억은 영화 후반부에 사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플래시 포워드 였음을 알게 되고 그 결과를 알게 되었음에도 딸과의 시간이라는 과정을 수행하는 삶을 선택한 모습을 보면서 밀려오는 감동은 선형적으로 스토리를 전달했던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뭉클함을 선사했습니다. 루이스의 결정에 동의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이안의 심정도 납득할만 합니다만, 이 영화는 미래를 예언하고 미래를 대응애야 한다는 식의 주술을 다룬 영화라기 보다는 이미 이안의 떠남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정되어 있는 것 (unstoppable)이라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루이스 뱅크스 역할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 언어학자로서의 지적 이미지와 동시에 모성 이미지, 그리고 히로인으로서의 역할까지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시간에 대한 비선형성을 일반 관객에게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추가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앞 뒤가 순환 고리처럼 이어진 편집을 했다거나, 딸의 이름의 앞 뒤로 읽어도 똑같은 한나(HANNAH)라고 쓰이는 팰린드롬(palindrome) 형태로 작명하거나, 외계인의 햅타포드B 언어가 마치 커피잔 위의 무늬처럼 둥근 픽토그램(pictogram) 형태로 시각화 하고 딸을 잃고 비탄에 빠진 루이스가 걸어가는 병원의 긴 복도가 마치 끝이 없을 거 같이 원형으로 이어진 장면으로 연출하는 장면 등에서 비선형성의 의미를 관객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원작에는 없는 영화만의 기법을 보여줍니다. 원작 소설이 워낙 뛰어나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제 측면에서 영화는 원작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아주 훌륭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한 철학적 관점 외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메타포도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날 지구에 영화처럼 낮선 외계인이 방문하면 인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소통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낮선 환경, 낮선 이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호기심을 충족하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통이라는 점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속 주인공이 언어학자인 것은 이런 소통을 정서적인 힘에만 기대에 설득하지 않고 인류 문명의 산물인 언어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에 과학적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는데, 굳이 여성으로 선택한 것은 소통과 배척이라는 두 가지 가치에서 여성이 가진 모성에 기반한 소통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속에서 다뤄지는 여성 히로인은 종종 남성 히어로 코스프레로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작 <원더우먼>이 대표적일테고 <에이리언>의 리플리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히로인 루이스는 여성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소통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이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캥거루' 라는 이름의 어원에 얽힌 전설 (비록 거짓이지만)을 이야기 해주게 되는데, 이에 대한 군의 반응 "호주 원주민들이 선진 문명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몰살 되었다"라는 답변 역시 일반적으로 낮선 이와의 소통이 단절되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훌륭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과 영화에 담긴 과학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편에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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