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디펜스 해주기 어려운 완성도
영화의 배경은 '군함도(軍艦島)'라 불리우는 '하시마(端島)'섬으로 섬 전체가 탄광인 지역입니다. '하시마'는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라고 하는데 이 섬이 '군함도'라 불리운 건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서라고 합니다. 영화는 이 섬에 강제로 징용되어 끌려간 조선인들과 이 조선인들 중 주요 독립운동가를 탈출 시키려고 하는 OSS요원 '무영(송중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하고 싶은 말'과 '보여주어야 할 것' 사이에서 길을 잃은듯한 부족한 완성도가 아쉬운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는 한국 관객의 정서상으론, 그리고 이를 투영 받은 감독/작가들은,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있어 비극과 영웅적 활극 사이에서 장르적 균형을 잡기가 대단히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주제를 강조한 영화를 만들자면 감독의 장기가 발휘되기 어려운 무거운 영화가 되버려서 대중적 흥행을 보장하기 어렵고, 활극으로 만들자면 지나치게 가벼운 영화가 되어 자칫 국뽕이 되거나 역사의식 부재의 영화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플롯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주제'와 '재미' 어느 곳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감독이 명확한 결정을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음에도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불분명하고 연기가 매우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황정민 같은 배우의 연기력이 갑자기 떨어졌을리는 없음에도 무척이나 황정민 출연 장면이 작위적이고 어색하다는 것은 시나리오와 연출의 문제라고 밖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소지섭, 송중기 등 몸값 높은 남자 배우들이 담당한 캐릭터 뿐 아니라 검증된 연기력의 여자 배우인 이정현 마져도 연기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있거나 일관성이 없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화면과 음악/스코어의 어색한 조합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군함도를 탈출하는 어린 소년들의 비극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 때 음악이 화면이나 영화의 흐름과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빠른 비트의 일본 음악을 들려주는데 이 장면의 음악은 화면과는 완전히 분리된 소음으로까지 느껴지면서 당시의 비극을 희화화 한다는 불편한 감정마져 들게 됩니다. 이렇게 음악이 영화의 흐름과 분리되거나 음량이 영화의 대사나 소음을 묻어버리는 장면은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어서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며 감상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다만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탈출과 그 와중의 전투 장면에 이르러서는 영화가 비로소 류승완 감독의 장기를 만난듯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만 합니다. 물론 말미에서는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신파씬이 다시 등장해서 끝내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마음이 개운치 못하게 만들긴 합니다만...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지금도 극장에서 상영중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 다 2차 대전이라는 시대의 역사적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과 '탈출'을 기본 소재로 한다는 점이 같다는 것이 공통점이면서도 영화의 구성에서는 두 영화가 전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덩케르크>는 일반적인 전쟁 실화에서 다루는 숏을 과감히 생략하고도 관객에서 전쟁의 비극을 생생하게 체험시키는 작품을 만들었다면, <군함도>는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 그 내용이 관객에게 가닿지 않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류승완 감독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덩케르크>의 '뺄셈의 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움도 컸던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