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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Aug 03. 2017

<나는 농담이다, 2016>

슬픔을 농담으로 치유하는 이야기

“감정이나 편지는 다락에 넣어 두는 게 아니야. 무조건 표현하고 전달해야 해. 아무리 표현하려 애써도 30퍼센트밖에 전달 못 한다니까.”

이 소설은 김중혁 작가의 2016년도 작품으로 장편 소설로서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김중혁 작가는 애초부터 원고지 500~600매 사이 정도의 분량으로 맞출 요량으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설의 짧은 분량만큼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송우영, 낮에는 컴퓨터 수리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우영의 이복 형인 이일영, 우주 비행사인데 우주에서 사고를 당하고 실종되는 캐릭터입니다. 송우영은 지상에서 밤마다 '백퍼센트 코미디 클럽'에서 스탠딩 코메디(농담)을 연기하고 이일영은 고장난 우주선에 실려 우주에서 궤도를 돌며 죽음 직전까지 지상에서 미쳐 가닿지 못한 농담을 남기게 됩니다. 이런 두 남자의 사이에 세 명의 여자가 나타나 두 사람을 연결해줍니다:


정소담. 이일영과 송우영의 엄마입니다. 불행한 사고로 남편과 사별하고 이일영을 남긴 채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송우영을 낳았습니다. 이일영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오다가 결국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이일영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열 두 통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기게 됩니다.


세미. '백퍼센트 코미디 클럽'에서 송우영과 함께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동료입니다. 처음에는 이야기 속의 비중이 높지 않지만 결국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하고 모든 캐릭터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됩니다.


강차연. 이일영의 연인입니다. 우주에서 실종된 이일영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정소담이 남긴 열 두 통의 편지를 대신 받게 되고, 후에 이일영이 마지막으로 남긴 녹음 파일을 건네 받아 듣게 됩니다.


소설은 이일영과 송우영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는 이일영 앞으로 부치지 못한 열 두 통의 편지를 남기게 되고, 송우영과 세미는 이 편지를 이일영에게 전해주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일영은 우주선 사고로 우주에서 실종되었기에 두 사람은 이 편지를 그의 연인 강차연에게 대신 전달해줍니다. 편지를 읽은 강차연은 채 가닿지 못한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이일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결국 이 편지를 우주 궤도에서나마 이일영에게 전달해줄 방법을 찾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이 참 흥미로왔습니다: <나는 농담이다>.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이라거나 농담같은 성격의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문장이 너무 진부했을까요. 소설 속에서 송우영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을 통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이렇게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농담 속에서 살면 좋을 거 같습니다. 형체는 없는데 계속 농담 속에서 부활하는 겁니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농담에서 또 살아나고, 평생 농담 속에서 사는 겁니다. 형체가 없어도, 숨을 못 쉬어도 그렇게 살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상실을 겪은 코미디언 송우영은 코미디, 즉 농담으로 슬픔을 다스리게 됩니다. 소설 전반에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슬픔이 깔려있고 사이 사이에 농담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런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으로서의 농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면 말초적이고 의미 없어 보이는 농담들이 더러 있지만 자신의 아픈 경험을 농담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들은 표현과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진실성을 갖게 되고 그냥 듣고 웃고만 지나갈 수 없는 짙은 여운을 남기게 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와 기쁨이는 가장 다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한 덩어리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와도 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중혁 작가는 '작가의 말' 조차 한 바탕 유쾌한 농담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소설 읽는 내내 야설스러운 농담에 낄낄 거리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가슴 먹먹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책에 대해 '후일 영화화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던데, 저도 이 소설은 영화화 하기에 좋은 플롯과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와 우주라는 공간을 병치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편지와 교신 내용을 통해 병치하고 결국 이 시공을 어느 시점에서 하나로 교차시키며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플롯을 만들어내는 테크닉은 흡사 영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그것과 견줄만 합니다. 김중혁 작가는 놀란 감독처럼 스토리와 플롯의 차이를 잘 구분하고, 플롯을 어떻게 엔지니어링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책의 내용과 별개로 손에 들기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하드커버 책 디자인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벌어진 일들은 흰종이에 검은 글씨로, 이일영의 교신 내용은 검은 바탕에 흰글씨로 표현한 부분도 소설이 문자를 넘어 색감으로도 확장된 느낌을 주는 나쁘지 않은 형식적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끝으로 이 소설을 접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두 편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중혁 작가는 이 소설을 구상할 때 영화 <그래비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던데, 저도 제일 먼저 영화 <그래비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도 아래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실종이 된다는 절대 고독의 느낌과 지구와의 교신에서 일종의 '코미디'를 시전하는 조지클루니는 소설 속 배경과 캐릭터와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편의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입니다. 이 영화는 돌아가신 어머니 유언에서 자신들이 모르는 이복 형제에게 남긴 편지를 전하기 위해 중동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남매의 이야기인데 앞서 설명한 대로 가닿지 못한 편지를 이복 형제에게 전해준다는 기본 설정이 유사합니다. 물론 시작점은 유사하지만 이후 두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김중혁 작가가 <영화당> 프로그램에서 <그을린 사랑>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씀도 한 적이 있어 아마도 이 영화에서도 영향을 받으리라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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