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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 돼지 Aug 12. 2017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어른들의 나약함에 결국 소외되고 상처입는 아이들

"관객에게 질문을 하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며 다시 시작된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한 대형 극장의 프로모션 동영상에서 우연히 봤던 카피입니다. 아쉬가르 파르하디(Ashgar Farhadi)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공부를 좀 해봤고 현재 이란 영화를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생에 두 번째로 오스카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반 무슬림 정책에 항의의 뜻으로 시상식에 불참한 것으로 한 번 더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한 감독입니다. 


이 영화는 2012 오스카에서 처음으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영화인데 이는 이란 영화 역사상 최초의 오스카 수상이라고 합니다. 또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는 이래적으로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에서는 9위로 뽑히는 등 작품에 대한 외부 평가가 무시무시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아쉬가를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를 본 제 개인적 느낌은 한 마디로 '감독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님을 확인한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관객은 이 가족의 일상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혼을 위해 법정에서 판사와 상담을 진행하는 한 부부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남편은 나데르(Nader, Peyman Moaadi 배역), 부인은 씨민(Simin, Leila Hatami 배역) 입니다. 부인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해외 이민을 가려고 하고 남편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이란에 남기를 원합니다. 이란의 부부가 겪고있는 문제는 우리 일상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두 부부의 재판 과정을 관객이 판사의 위치에서 상담하는 부부의 정면 쇼트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의 시작부터 이 가족의 일상을 판단하는 제3자의 위치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부부의 이혼 과정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는 건 부인이 별거에 들어가면서 낮 시간동안 집안 살림을 돕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할 가정부 라지에(Razieh)를 들이면서 입니다. 라지에는 치매에 걸린 노인의 옷을 갈아입히는 문제조차 종교 지도자에게 상의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지만 임신한 몸 상태와 가정부 일을 하면서도 철부지 딸을 같이 돌봐야 하는 환경 때문에 사실 치매 노인을 돌보기가 여의치 않은 상태입니다. 더우기 라지에의 남편은 아무리 치매 노인이라지만 남자만 있는 집에 부인이 가정부로 일을 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사람인데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 후에 법적에서 처벌을 받게될 정도로 다혈질인 사람입니다. 결국 치매 노인을 돌보다 어떤 사고를 겪게되고 그 과정에서 나데르는 라지에를 집에서 쫓아내려 하다가 결국 라지에가 유산을 하고 맙니다. 이후 라지에는 남편과 함께 나데르를 고소하게 되고 이후 법정에서 나데르가 라지에가 임신한 것을 알고도 밀쳤는가, 나데르는 치매 노인을 학대했는가를 놓고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의 거짓말로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씨민은 나데르를 도우려하고 그들의 딸 테르메(Termeh, Sarina Farhadi 배역)은 정직과 가족이라는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상처받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끈과 진실이라는 가치 사이의 거리

영화는 결국 평범한 한 가족에 닥친 부부간의 갈등, 그리고 이웃과의 갈등에서 각자의 이기심으로 인한 거짓말이 커져나가는 과정과 신 앞에서만은 정직할 수 밖에 없는 종교 윤리적 문제가 결합하여 결국 어떻게 모두에게 비극을 남기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의 플롯 전개가 아주 디테일 하면서도 한국 정서조차 이해할 수 있는 보편성,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특수성을 넘나들고 있어 드라마 장르의 영화임에도 스릴러 영화 수준의 긴장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거짓말과 그 진실에 대한 고찰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라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쇼몽>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각자의 인물들이 서로 다른 증언을 하고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이라고 하는 것의 허상에 대해 회의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마무리 되는 반면, 이 영화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라 이미 분명한 진실을 두고 어떤 것이 각자의 입장에서 올바른 선택이냐에 대에 관객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라쇼몽>과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로 인해 전율하게 되는 경우는 시각적 충격을 받게 되거나, 플롯 자체가 정서를 자극할만한 공포, 스릴러 물일 때 등 주로 강력한 사건으로 인해 정서적인 자극을 받는 경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아주 평범한 일상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보편적인 이야기의 디테일과,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무력감을 보여주는 절제된 영상 때문에 오히려 전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법정에서 뭐라고 증언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딸에게 '사실대로 말해'라고 아버지는 말하게 되고 결국 법정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딸이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며 눈물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리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감독이 영화속에서 주제를 전달하고 관객이 그로 인해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울림을 받게 되는 과정에는 때로 대사도, 음악도, 쇼트의 기교도 필요 없는 아주 절제된 정지 화면 하나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파르하디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자신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이런 딸의 선택을 기다리는 법정 밖 복도에서의 두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크래딧을 올리게 됩니다. 보통 OST가 아주 좋은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래딧을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다만 이 영화는 거의 변화없는 두 부부의 모습을 그저 정지화면처럼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인데도 쉽게 자리를 뜨기 어려웠습니다. 


때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실망하는 영화가 적잖게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첫 작품인 이 영화는 제게 감독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 시켜준 걸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제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저는 영화가 끝난 이후 계속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별점: ★★★★

한줄평: 어른들의 나약함에 결국 소외되고 상처입는 아이들.

☞ 감독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준 놀라운 플롯 전개와 연출

국내 개봉당시 영화 포스터. 카피와 달리 이 영화는 진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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