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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woo Arslan Kim Oct 25. 2017

진화의 중심에서 진화를 바라본다면

<핀치의 부리> - 조너선 와이너

이 책을 처음 읽었던건 아마도 생물학에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에 제대로 홀린 후로 여러가지 생물학 서적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던 그때, 어느 이름 모를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이한음 선생님 번역 버전의 책.


 고등학교 생물학 과정으로 배운 진화생물학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교과서에서 예시로 나오는 핀치의 부리와 먹이의 관계 정도에 대한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처음 읽었을땐, 정말 고등학생의 생물 수준에서 들리면 들리는데로, 이해되면 이해되는데로 그냥, 무대포로 쭉쭉 읽어나갔던 책이었다. 그래도 현장에서 진화를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 일인지는 책을 처음 읽었을때부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읽었던 오래된 판본이 어느덧 20주년 기념판으로 새롭게 번역되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다른 고민 없이 구매해서 바로 읽어버렸다.


 이 책은 핀치 연구의 대가들인 피터 그랜트와 로즈마리 그랜트 부부 그리고 그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동료 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언론인이자 작가인 조너선 와이너가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각각의 섬에 서식하는 핀치들이 실제로 어떤 진화적인 기록들을 몸에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러한 형질들이 자연에서 어떻게 선택되어가는지를 직접 관찰하는 것에 대해서 대담과 기록의 형식으로 저술하였다.


이 책은 진화가 실제로 관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 중 하나를 다루는 책이기도 하다. 1977년의 가뭄 현상으로 인해 섬의 식물상이 변화를 겪게 되고, 핀치들의 섭식환경이 변하면서, 핀치의 부리 형태 역시 그 환경에 적합한 형태로 선택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통해 진화라는 현상이 아주 작은 변화로부터 충분히 관찰될 수 있고, 자연선택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밖에도 종분화나 이종교배 현상 등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직접 보고 싶을 현상들에 대해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들을 소개한다.


  20주년 기념판이 나오는 오랜 시간동안, 나 역시도 대학 생물학 과정을 배우면서, 매 순간 책을 다시 볼때마다 이해되고 배우는 내용도 달라졌다. 그리고 현장에서 새를 관찰하고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의 신분이 되어보니 이 책에서 보이는 것도 다르고, 읽히는 느낌도 다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책의 주인공들이자, 실제로 핀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노고가 그대로 몸에 들어온다. 덕분에 책 읽는 재미가 배로 늘었다.

 진화의 현장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건 큰 축복이다. 이 책은 그 행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간증이며, 그 현장을 경험한 느낌들을 나눠받을 수 있는 책이다. 받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다면 꼭 읽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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