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6
꼭 가봐야 하는 명소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다 해보는 것들을 따라서 해보면 그것들 중에서 내가 진짜로 즐길 만할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는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하루가 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나 역시 태어나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봤다. 한국에서는 너무 비싼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공연이었다. 화려하다고 소문난 ‘오르페움 극장(Orpheum Theatre)’의 가장 구석진 좌석에서 공연을 보고 한동안 행복에 겨워 있었다.
한여름 밤 어느 공원에서는 잔디밭에 드러누워 1948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인 <자전거 도둑>도 봤다. 성인이 되어 매일 같이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런 고전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재미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원에 널브러져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내게 이 모든 것은 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어 회화를 전담으로 가르쳐준 선생님은 내게 ‘말콤 엑스’에 대한 책과 DVD를 빌려주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제도의 특이한 점과 중동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며 나의 세계는 한층 더 넓어졌다.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marches)’에서 제일 맨 앞에 서 있던 중년의 경찰관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1면에 그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실렸다. 수려한 외모의 시장님이 안경을 쓰니 더욱 섹시하다는 짧은 소식도 함께. 서울의 평범한 대학생이던 나는 세상에 대해 딱히 편견은 없었지만 애초에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이 곳에서의 일년은 문화적 다양성이란 폭격을 맞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샌프란시스코가 모두에게 행복한 지상 낙원이란 소리는 절대 아니다. 나는 의도하지 않은 약간의 사고로 한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또 저녁에 홀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어떤 백인 남자가 내게 온갖 욕을 하며 위협한 적도 있었다. 이 일을 겪은 뒤로는 절대로 밤에 혼자 외출하지 않았다. 10시도 안된 시각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었음에도 그런 일은 일어났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랬던 건지, 여자라서 그런 건지, 아님 둘 다였기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은 어느 카페에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다 겪은 일이다. 그 때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었고 독일에서 온 남자애들에게 오프 사이드 법칙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축구에 환장한 그 애들은 먹고 있던 오렌지 껍질을 움직여가며 수비수와 공격수가 이러이러할 경우에는 골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열심히 설명해줬다. 이렇게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옆 테이블의 점잖게 생긴 할아버지가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공손한 말투로 저는 남한에서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그는 뚫린 입이라고 이렇게 짖었다. 왈왈.
“그렇구나. 근데 너 몇 살이지? 나랑 결혼하면 미국 시민권이 나온단다. 어때?”
친구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나는 당혹감과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저 할아버지, 아니 저 새끼는 나 같은 동양인 여자들 몇 명에게 저 딴 소리를 해댔던걸까. 바로 쌍욕을 해줬어야 했는데. 이 경험 때문에 나는 아직도 오프 사이드 법칙이 정확히 어떤 건지 잘 모른다.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질척대는 것을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인지 나는 온갖 종류의 언어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평생 당할 것을 이 때 다 당했다고 생각할 만큼. 그래도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유럽은 특히 독일은 다르지 않냐며 베를린에서 온 한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그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독일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아. 세계 어디나 다 똑같을걸?”
아니 왜 이 따위 일을 겪어야 하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나는 그 곳에서 살았던 것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 다소 심심한 도시로의 유학이나 여행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주저없이 이 곳으로 가라고 등을 떠민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신기한 매력을 지녔다. 다른 주에 사는 미국인들도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마치 다른 나라에 가는 것처럼 여길 정도다.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던져지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해 배웠던 경험은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영화를 보고, 그림을 배우고, 사람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사람사는 거 어디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낯선 도시를 찾아갈 꿈을 꾼다. 너무 늦기 전에 다시 그 곳으로 떠나고 싶다. 내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던 도시 샌프란시스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