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Feb 09. 2020

상대평가의 난

여행기는 아닙니다 3 

지난 달 번역 수업을 시작하기 전 가장 걱정했던 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번역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알아보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혹은 글쓰기는 나쁘지 않지만 공부가 아주 많이 필요하니 늘 영어 공부에 매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든가. 이런저런 걱정으로 머리 속이 복잡했지만 한 마디로 ‘너는 별로야. 애저녁에 때려치워.’ 라는 평가를 들을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허나 두어 번의 과제를 제출한 뒤 받은 피드백은 문장의 흐름이 좋으니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오 내가 재능이 있대! 맘마미아! 그렇게 수업은 아무 문제없이 평탄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의외의 복병은 늘 수업 시간이 부족해서 강의 내용을 2배속으로 훑어주는 강사 선생님도, 가끔 얼토당토 않게 지문을 해석하는 나도 아니었다. 바로 편집자로 오래 일하다가 번역가의 길을 모색하는 어느 아줌마 수강생이었다. 강경화 장관이 롤모델인 듯 백발이 성성한 머리칼을 소유한 호호 아줌마 같이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본수업 전에 과제를 체크하는 한 시간 동안 다른 어떤 수강생보다도 더 많이 떠들어댔다. 강사님보다도 더. 내가 이 아줌마 수업을 들으려고 수강료를 낸 게 아닐까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제부터 그녀를 호호씨라고 부르도록 하자. 


호호씨의 가장 큰 불만은 이미 버젓이 출판이 된 결과물조차도 오역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아무리 유명하고 경력이 화려한 번역가라도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강사님이 번역했다는 결과물에도 오역투성이라며 면전에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지적하는 오역의 수준은 내 예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여기 캐롤라이나 박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부분 보이시죠? 만약 번역자가 캐롤라이나 박새 울음 소리를 실제로 들었다면 아마 이 표현은 쓰지 않았을 거에요. 제가 미국에 오래 살아봐서 아는데….”


그녀가 지적한 부분은 전체 내용에서 하등 상관이 없는 아주 매우 심하게 작은 부분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이 문장이 있거나 없거나 독자는 물론, 지나가던 우리집 개도, 옆집 고양이도 요만큼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하는 말을 잠시 듣던 강사님은 그럼 호호씨는 미국에 얼마나 살다 오셨나요? 물었다. 


“오래 살았어요. 오래 살았는데…”(안 알랴줌) 


미국에 오래 살았다는 양반이 발음은 그렇게 구린 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뭐 어르신들은 발음 교정이 어려우니까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의 오역 지적질은 매시간 마다 한참이나 이어졌다. 두 달 동안 이어지는 수업을 가기 싫었던 건 오전의 교통 체증도, 까다로운 과제 때문도 아닌 오직 그녀의 잘난 척 하나였다. 어느 날은 호호씨의 쓸데없는 지적질이 너무 듣기 싫어서 한숨을 쉬며 책상에 엎드렸더니 강사님이 수업이 지겨워도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수업이 끝난 후 참교육을 시전하셨다. 슨생님,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안선생님… 농구가, 아니 수업이 듣고 싶어요. 엉엉. 


보통 이 지경이 되면 여성들은 자기 탓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야,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 말자. 저 아줌마 편집자였다고 하잖아. 다 이유가 있으니까 지적을 하겠지. 내가 지금 너무 예민한거야. 아침이라 피곤하고, 밥도 안 먹었으니까. 커피가 맛이 없어서 더 신경이 쓰이는 거야. 내가 예민한거야, 내가. 뭣도 모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생각 안 하겠지? 나는 왜 이렇게 삐딱하게 구는 걸까. 욕 좀 그만하자. 


마침내 지난주 수업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나만 짜증났던 게 아니구나. 늘 조용히 듣고만 있던 수강생들이 드디어 반격을 시작했다. 그 작은 불씨는 바로 상대평가였다. 


그날 함께 체크해야 할 과제는 먼 먼 옛날, (아마도 공룡이 살던 시기에) 경제학 교수인 저자가 중간고사 채점 방식으로 인해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던 사건을 유쾌하게 설명한 글이었다. 당연히 미국 대학교를 배경으로 쓴 에세이였는데, 출판된 프로의 번역문(해답지라고 보면 된다)과 자신의 과제를 비교하며 내 글은 뭐가 부족한지, 어디를 어떻게 고치면 좋은 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강사님이 체크한 자신의 과제 중에 어색하다고 표시한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며, 과연 프로는 어떻게 번역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모두가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뜻 깊은 시간이다. 어쨌든 원래 의도는 그렇다… 오늘도 호호씨는 어떤 현란한 어휘를 구사하며 이 번역문은 오역투성이라고 지적질을 시전할 지, 절망적인 심정으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과제에는 문장 흐름이 좋다는 칭찬을 받지 못해서 시무룩한 감도 있었다. 쳇) 


언제나처럼 한숨을 푸욱 쉬고 호호씨는 입을 열었다. 여기, 여기, 또 거기, 그리고 저기에 있는 이런 식의 표현은 오역이지만 뭐 받아들인다 쳐도(안 받아들이면 어쩔 건데?)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오역이 무려 두 군데나 있는데, 하며 일장연설을 시작하려는 찰나 내 왼쪽에 앉은 수강생 한 사람이 감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죄송한데요(여자들은 습관처럼 사과한다. 모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오역이 많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러시면 뭔가 대안이 있었으면 하는데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호호씨는 목을 두어 번 가다듬은 뒤 답변을 내놓았다. 


“제가 어떻게 했냐면요, 마음에는 안 들어요, 마음에는 안 드는데…(그럼 마음에 들게 했어야지, 이 아줌마야?)” 


딱히 인상적이지도 명쾌하지도 않은 문장을 읊은 뒤 청중으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없음을 확인하자 그녀는 다시 본론으로 돌어갔다. 


“미국 대학교에는 아예 상대평가가 없어요. 이 글을 이렇게 부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안되는데,”


뭐라고요? 이게 무슨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인가(유행이 한참 지난 비유지만 나는 이 표현을 굉장히 좋아한다). 상대평가가 없다고? 내가 알기론 아이비리그 대학교 신입생 중에는 상대평가로 인해 점수가 좋더라도 C나 D를 받고 충격에 휩싸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그다지 먼 옛날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대학교에서는 1학년 1학기 교양 수업 성적은 Pass 아니면 Fail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뭘 알겠는가? 나는 호호씨처럼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재원도 아니고, 편집자는커녕 지겨워 보이는 책은 일단 덮어놓고 리뷰부터 읽는 한심한 인간인데. 미국 대학교에는 상대평가 제도가 없다고 단언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밀레니엄 초기 4년 동안 피똥을 싸며 전공 수업을 들었던 어린 날의 나를 추억했다. 그 때 집안 기둥을 뽑아서라도 미국 대학교를 갔어야 했나. 


그렇다면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MIT 등등은 왜 시험을 보지? 왜 학생들은 각성제를 먹어가며 밤새 시험 공부를 하지? 중국을 이기려고? 아니 그럼 애초에 한국 대학교는 상대평가를 왜 하지? 천조국이 안 하시는데? 수많은 생각이 휘몰아치는 와중에 교실 앞쪽에 앉은 수강생이 반격을 시작했다. 


“무슨 근거로 미국 대학 전체에 상대평가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미국에서 학위도 따고 대학교에서 학부생 수업도 진행했거든요. 지금 말씀은 단단히 잘못 알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우리 중에 미국 대학교에서 학위를 땄을 뿐만 아니라, 무려 영어로(!) 대학생을 가르친 수강생이 있었을 줄이야. 팝콘, 나는 왜 오늘 팝콘을 사오지 않았던가!! 


단발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그 수강생(교수님이라고 하자)은 님, 무슨 약을 드셨길래 그런 헛소리를 하시는지요?라는 어조로 호호씨의 뚫린 입을 단번에 막아버렸다. 수십 년 경력의 편집자이자(그냥 늙어 보여서 하는 추론이다. 얼마나 오래 편집자로 일했는지는 모른다) 미국 거주 경험자인 호호씨는 그 놈의 상대평가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차분한 어조로 성적 곡선이 어쩌고 하며 다른 부분 번역에 대한 의견을 이어갔다. 


여기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면 호호씨 참 쪽팔리겠구만. 팝콘각 꿀잼이네, 하며 몇 초 더 웃고 가뿐하게 넘겼을 것이다. 허나 호호씨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양반이 아니었다. 그녀가 민망해할까봐 강사님이 몇 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는 지금 입문 수업이라 전체적인 문장이 얼마나 잘 읽히는지 프로들이 한 번역을 보고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한 상황이에요. 그치만 호호씨가 수업 시간에 늘 지적하는 세세한 부분도 잘 알아 두고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자세는 정말 중요합니다... 블라블라(여튼 호호씨가 하는 지적이 대체로 쓸모없지만 죄다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


호호씨는 발끈했다. 


“저도 오역된 부분 그냥 혼자 알고 넘기면 돼요. 근데 다른 수강생들한테도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일부러 더 알려드린 것도 있어요. 제가 왜 굳이 제 시간 써가면서 그렇게 하겠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말씀 안 드리는 걸로 할게요(참고로 종강까지는 딱 한번 만이 남았다. 아니, 이제 와서…?)” 


아… 캐롤라이나 박새 소리도 모르는 무지한 중생들을 위해 그러셨구나… 그 지문은  동물이 추위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지문이었는데, 하필이면 박새 소리가 마음에 걸리셨구나… 호호씨는 이 심경 고백을 끝으로 수업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강사님이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 문이 부서져라 닫고 나가 버렸다. 그러든지 말든지. 


호호씨를 만난 이후로 나는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푸근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은 더더욱. 그런데 치명적이라던 나머지 다른 오역은 대체 뭐였을까? 아마 영영 알지 못하겠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작가의 이전글 우리 딸은 만들기 쉬운 음식을 좋아해서 너무 이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