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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왕수 May 19. 2018

리더의 올바른 마음가짐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중국을 찾아서' 를 읽고

대학교재와 같은 역사책을 읽는 것은 힘들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건과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그려놓은 역사소설은 책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반면, 일반 역사서를 읽는 '작업'은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일반 역사서에는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가 없다. 대화의 부재는 생동감과 리듬감을 떨어뜨린다.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3인칭의 관찰자 시점은 작품을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런 작품의 시계열적인 구성은 교과서를 연상시킨다. 더이상 시험 공부가 목적이 아닌 독자들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일반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특별한 주의사항이 있다. 


                                                                    Jonathan D. Spence


예일대 역사학과 석좌교수 조너선 스펜스가 쓴 [현대중국을 찾아서]는 전형적인 대학교재식 역사책이다. (실제로 동 교수의 강의 교재로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작품은 17세기 초 명나라 말기부터 1989년 천안문사태까지의 중국을 무대로 한다. 명나라, 청나라,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까지 4개의 공식적인 통치 정부가 지나온 시대가 작품의 배경이 된다. 작가는 중국이 어떠한 근/현대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띠고 있는지, 지난 350년의 시간들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군사적 관점의 분석틀로 바라본다. 900쪽 남짓한 책속에는 매 시대별 주요사건과 인물, 사회의 변화과정, 그리고 이를 읽어내는 작가의 해석이 시계열별로 차곡이 쌓여있다. 광범위한 시대를 다룬 역사해설서를 읽는 것은 마치 바다수영과 같아서, 처음에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높고 두터운 지식의 물살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건조한 서체와 긴 문장의 파도를 몇차례 맞다보면 이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훈련의 시간을 지나고나면 비로소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잔잔한 지식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초심자에게 바다는 그다지 재미있는 놀이터가 아니다. 드넓은 공간에서 호기롭게 무작정 놀 생각을 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쉬운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책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이번 책에서 나의 목표는 각 시대의 정권들이 몰락하는 이유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통치권력은 명나라, 청나라의 왕조와 공산당에 중국을 넘겨준 국민당 정권이었다.


16세기 말 명 왕조의 영화는 절정에 달했다. 당시 전세계 GDP 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명나라는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문화나 예술면에서의 성과도 뛰어났다. 도시생활과 상업은 전례없이 번창했으며, 인쇄, 도자기, 비단제조술은 동시대 유럽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때부터 제국은 기울기 시작한다. 그는 여자와 권력의 맛을 즐기는 전형적인 인간상은 아니었으나 모든 방면에서 무능한 리더였다. 황제는 공무를 처리하며 발생하는 원로들과의 대립이 불편했고, 사사건건 벌어지는 관료들과의 언쟁에 시달렸다. 업무상 마찰에 스트레스를 받은 황제는 급기야 국정 운영의 실무를 포기하고 점차 궁궐 속으로 칩거한다. 그는 유교적 학업의 핵심인 역사서와 철학 공부를 등한시 했고, 국정운영을 모조리 환관(거세한 남자 시종)들의 손에 맡긴다. 당시 그 수가 무려 1만명이나 되었던 환관들은 저마다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국정을 낭비했고 부패의 씨앗을 여기저기에 뿌렸다. 변방에서는 만주족, 포르투갈, 일본 등 이민족과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국제무역의 패권이 유럽국가로 넘어가며 중국은 경기침체와 함께 극심한 빈부격차를 경험한다. 그렇게 제국은 쇠퇴일로를 걷는다. 내외부 통치 모두에서 잘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능한 리더의 모습에서 국가가 쇠퇴하는 모습을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망국의 과정이다. 눈씻고 뭐하나 잘한 것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의외로 국민당 장제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45년 일본이 세계 2차대전에서 패전하여 중국에서 퇴각할 당시만해도 국민당의 군사력은 공산당의 갑절이었다. 하지만 2배의 전력으로도 공산당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어려웠고, 국민당과 공산당은 각각 미국과 소련의 지원하에 중국의 남부와 북부에서 각자의 거점을 마련한다. 청왕조 말기부터 시작된 중국 인구의 급증으로 인당 경작면적이 줄어든 인민들의 열악한 경제여건은 청왕조 붕괴의 원인중 하나로, 뚜렷한 해결책 없이 반세기가량 이어진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뿌리깊은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어 한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국민당의 치세기간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취해지지 않는다. 권력층은 부패했고,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경제 이념하에서 빈부격차는 점차 늘어나기만한다. 반면 공산당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급진적인 토지개혁(경작지의 무상분배로 소작농을 없애는 정책) 을 실시하고, 거점지역에서 차근차근 민심을 쌓아간다. 급기야 양당간의 중재에 앞장섰던 미국은 더 이상 가교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중국에서 발을 빼고, 국민당은 이어지는 국공내전에서 완패하며 타이완으로 쫓겨간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199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보다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흑색선전이 훨씬 심했다. 그 때문일까 세계사 만화책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대립을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열렬히 국민당을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머릿속에서 자본주의=선(善) 이었다. 게다가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공산당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던 국민당의 모습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국민당은 명나라가 그랬듯 스스로의 실수로 무너졌다는 것을.


앞선 두 정권과 청나라의 쇠퇴과정은 사뭇 다르다. 

만주족의 나라인 청나라는 강희제라는 뛰어난 황제를 시작으로 3명의 황제가 무려 138년을 통치하게 된다. 강희제는 타이완을 병합하는 등 국경을 확장하고 만주족과 한족과의 통합을 추구하여 안정적인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다. 반면 토지와 세제에 대한 조사와 개편을 하지 않은 점과 외부 세계와 적극적으로 무역을 하지 않은 점은 그의 과실로 꼽힌다. 그의 뒤를 이었던 옹정제는 선대 황제가 소홀히 했던 내치에 많은 힘을 쏟고 가시적인 성과도 창출해냈다. 관료제의 구조와 지방의 재정문제, 효율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전달체계의 개발 그리고 정부내 실행 부서를 강화하는 등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대를 이은 건륭제는 약 63년간 나라를 통치하는데, 지방분권에 역점을 두었고 지금의 신장지역을 포함한 광대한 서역을 정복하여 중국에 복속시켰다. 하지만 그 외 급격히 증가한 인구에 적합한 경제모델 개발의 실패, 관료제의 부패 그리고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와 만주족 사이의 대립 등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서서히 국가의 기반은 흔들리게 된다. 청나라는 그의 세대에 이르러 힘이 본격적으로 쇠퇴하게 되지만, 사실상 더 큰 문제는 쇄국정책이라는 오랜 기본 방침에서 비롯된다. 해상권을 장악한 유럽의 각국은 청 말기에 광저우를 비롯한 동남해안의 각 지역항에 대한 개항을 요청하지만 청나라는 무역에서의 자유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급기야 무역 불균형을 참다못한 영국은 인도에서 대량의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에 판매를 하고(당시 영국내에서의 아편 유통은 합법이었음), 청 왕조는 아편 유통을 강하게 금지하면서 1840년 아편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중국은 넓은 땅과 많은 군사수를 가지고 있었지만 증기선 등 기술을 앞세운 열강의 침략에 번번이 패배하며 쇠퇴의 길을 걷는다. 


앞서 소개한 명과 국민당이 통치권의 부패와 의무소홀로 안에서의 붕괴를 자초했다면, 청나라의 왕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 왕조는 통치권자로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쇄국정책을 쓰고 기술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던 잘못된 '방향성' 의 문제로 몰락하게 된다. 


통치자들은 한번에 하나의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은데, 옹정제 역시 중부지방의 조세와 행정 문제에만 심혈을 기울일 수는 없었다 (111쪽)


위 문장에는 통치자가 직면하는 현실이 비교적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한 번에 하나의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을만큼 한가롭지 않다' 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역사를 보면 어느 한순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시대가 없다. 내부가 안정적이면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고, 국경을 넓히다 보면 경제문제가 발생한다. 발생하는 문제들마다 성실하게 대처를 함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큰 방향성을 잘못 잡으면 그 또한 망국의 길로 이어진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구절처럼 몰락한 정권에는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다. 이제 곧 사업을 시작하는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나부터 끊임없이 내/외부의 문제 상황을 찾으려 노력하고, 우리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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