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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May 07. 2020

때로는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완벽주의 극복하기

나는 완벽주의가 심하다. 완벽주의는 완벽을 지향하는 성향이지 완벽하게 무언가 해내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완벽을 지향하지만 완벽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간극이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완벽주의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달리 정의 되어 왔다. 이를 대략적으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Horney(1950)은 완벽주의를 “당위성의 폭정(the tyranny of the shoulds)”이라고 하였으며,

Hollender(1965)는 “상황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높은 수준의 수행을 자신이나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Burns(1980)은 완벽주의자를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달성하도록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밀어 붙이며, 자신의 가치를 전적으로 생산성과 성취에 기반 하여 평가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Frost 등(1990)은 완벽주의란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가혹하게 비판하는 것”이라고 정의하 였다. 

Obsessive Compulsive Working Group은 완 벽주의를 “모든 문제에 완벽한 해결책이 존재 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성, 즉 무엇인가를 완전무결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며, 작은 실수도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이라 고 정의하였다(OCCWG, 1997). 완벽주의에 대한 이러한 정의 속에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 기준 도달에 대한 경직된 열망, 비판적으로 편향된 자기평가 과정 등과 같은 부적응적인 인지과정이 내포되어 있어, 사실상 완벽주의에 대한 이들의 정의는 부적응적인 혹은 병리적인 완벽주의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최근에 Shafran 등(2002)은 이러한 병리적인 완벽주의를 임상적 완벽주의라 일컫고, 이를 “적어도 하나 이상의 특별한 영역에 서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혐오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추구하며, 그 결과에 따라 자기를 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 김윤희, 서수균(2008)「완벽주의에 대한 고찰: 평가와 치료」, 한국심리학회지 : 상담 및 심리치료 The Korean Journal of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2008, Vol. 20 No. 3, 581-613


완벽주의자가 이렇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혹시라도 있을 실수나 잘못된 경향의 발언이 글에 섞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어떻게든 믿음직한 출처에서 자료를 가져온다. 논문이라고 정답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말이다. 완벽주의에 대한 설명으로 글을 시작하려고 그 정의를 찾다 한국심리학회지에 게재된 논문까지 읽는 내 모습이 과연 완벽주의자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완벽주의 성향은 앞선 자료에 언급된 Frost와 Obsessive Compulsive Working Group의 정의와 유사하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가혹하게 비판하며 작은 실수도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리라 생각한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 기준 도달에 대한 경직된 열망이 있다.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나를 몰아붙이고, 작은 실수도 만들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일하는 태도는 지금까지 나를 성장시킨 근간이다. 회사에 다닐 때도 완벽주의 성향이 드러났지만,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백업해 줄 동료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해진다. 


나에게 완벽주의 성향은 꽤 오래 영향을 주었다. 어릴 때 첫걸음이 매우 늦어서 부모님을 걱정시키다 첫걸음을 일곱 걸음이나 뗐다는 일화가 있는데, 우스갯소리로 막 돌이 지났을 때부터 어설프게 한 걸음 걷고 말기 싫어 완벽하게 자세를 시뮬레이션하다가 첫걸음을 뗀 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학교생활에서 나는 자주 과제를 늦게 내거나 제출하지 않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과제를 해놓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출하지 않았다. 작문이나 그림 과제에서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나타났다. 과학이나 수학 숙제는 명확하게 답이 있는 문제 풀이 과제였으므로 그다지 완벽주의 성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러나 객관적 지표가 없는 작문이나 그림과 같은 창작 과제에서는 완벽주의 성향이 과제 수행에 영향을 주었다. 학생인 주제에 얼마나 훌륭한 글을 쓰고 멋들어진 그림을 그리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높은 이상’에 다다르지 못한 나의 과제는 어김없이 휴지통에 던져졌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완벽주의 성향이 이롭게 작용한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도한 완벽주의 성향은 내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번아웃과 불안증이 그것이다. 클라이언트에게 최종 결과물을 보낼 때 예약 메일로 보낸 적이 있는지?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끝이다. 누를 수 없다. 다시 작업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예약 메일을 걸어두고 내가 아닌 시스템이 강제로 메일을 보내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가 1년에 한 번 나오는 것도 내 완벽주의 성향과 연결되어 있다. 빠르게 추진하면 서너 달이면 충분한 작업이지만, 매 호 주제를 스터디하고 어떤 목소리를 담는 게 그 주제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기획문서를 수십번 고쳐가는 과정이 필요해 결국 기획에만 몇 달을 소진한다. 그러고도 기사를 작성하는 와중에 부족한 부분이 없을지 전전긍긍하며 추가 기사를 더하고 더한다. 그렇게 200페이지가 넘는 프리낫프리가 완성된다. 완성도와 별도로 매거진 한 호를 만들며 이토록 에너지를 넣으니 소진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오늘 작업실에 출근해 큼직한 머그잔에 시원한 냉수를 담아 꿀떡꿀떡 물을 마셨다. 어김없이 입가로 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실 때 어김없이 음식이나 음료를 옷에 묻히거나 흘린다. 그래서 몇년 전까지 나는 밝은 상의를 거의 입지 않았다. 온종일 상의를 깨끗하게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다. 몇 년 전부터 그냥 잘 흘리는 나를 인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밝은 옷도 편하게 입었다. 밝은 옷에 커피를, 물을, 떡볶이 국물을 묻혀도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뭐 어쩌겠어.’ 허허허 웃으며 얼룩진 상의를 입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물을 마시며 흘린 차가운 물방울이 턱을 따라 쇄골로 떨어질 때 문득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프리랜서 지인 C는 꼼꼼하지 못하다. 그래도 괜찮다. 꼼꼼한 파트너들이 있다. 그래서 C는 망하지 않고 잘 산다. 또 다른 지인 P는 돈 계산에 약하다. 그래도 괜찮다. 돈 계산이 꼼꼼한 파트너가 있다. 그래서 그도 망하지 않고 잘 산다. 나는 30년을 넘도록 상의에 커피와 물과 떡볶이 국물을 묻혔지만, 망하지 않고 잘 산다. 세탁기가 있고 세제가 있다. 


어쩌면 완벽주의 때문에 겪는 불안증세는 ‘괜찮지 않을 거야’라는 절망적 상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무엇이든 잘하지 않으면 아주 쉽게 나는 도태되고 잊힐 것이라는 불안. 그 절망을 상상하며 괴롭게 나를 밀어붙이고 평가하며 속을 병들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정말 잘 안 되는 외주가 있었다.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안됐다. 내 능력이 부족했다. 끙끙 싸매고 고민하다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간만 축내다 이도 저도 안되는 것보다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이 이어 완주하도록 여지를 마련해주는 게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 대신에 실무를 할 수 있는 (내 능력치보다 더 훌륭한) 프리랜서를 섭외하고 내가 실무를 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끝맺을 수 있을지 시나리오를 설계해 메일을 보냈다. 


두려웠다. 나는 완벽해야 하는 사람이고, 완벽해야 할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은 상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마치 내 무능력을 전시하는 것 같았다. 클라이언트는 불같이 화를 내고, 나는 다시는 일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꿈도 꿨다. 나를 믿고 일을 준 클라이언트가 화를 내는 꿈을 몇 번이고 꿨다. 그에게 메일이나 메시지가 올 때면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래도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가 못 하는 것이 있다고. 


예상과 다르게 클라이언트는 도리어 나를 위로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어요. 다혜씨 탓이 아니에요.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가 나에게 해줬어야 할 말을 클라이언트가 해주니 부끄럽고 고마웠다. 몇십 년을 애써도 물을 마실 때 물을 흘리는 것처럼, 아무리 애써도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 사람이니까 나는 완벽할 수 없고, 부족할 수 있다. 


때로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나도 못 하는 게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를 괴롭히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선선한 태도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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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는 일과 여성,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입니다. 매거진 <딴짓> 박초롱과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이다혜가 공동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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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erenc Horvat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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