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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May 14. 2020

완전고용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 타운홀 미팅 참여 후기

노동 시장이 유연해지며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지원책 마련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책 컨트롤 타워를 자처하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는 그렇게 설립됐다. 


코로나19로 불안정한 노동 시장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바이러스가 불러온 국가 재난 상황에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은 다름 아닌 불안정 고용 상태로 노동하는 노동자였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을수도 없었다.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프리랜서의 생계는 크게 위협 받았다. 행사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사설 교육기관은 물론 문화센터와 같은 공공 시설도 문을 닫으며 강연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프리랜서는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정규직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였으나 코로나19가 불러온 경기침체는 개인 노동자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희망 퇴직을 받기 시작했고, 신규 고용도 축소됐다. 기업 공채가 취소되고 공무원 시험 등 공공기관 취업 절차도 일시 중단 됐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노동하는 개인은 속수무책없이 흔들리고 노동 시장에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일자리 위원회 타운홀 미팅은 코로나19로 프리랜서와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불안정한 노동 계층의 문제를 인지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취업준비생과 특수고용노동자(라이더, 학습지 교사),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본부장, 지역 로컬푸드협동조합 조합장, 대구병원 병원장, 정부의 고용정책 혜택을 받고 공기관에 입사한 신용보증기금 근로자, 현대자동차 1차 하청 기업 대표, 코로나 진단 키트를 생산하는 분자진단 전문기업 씨젠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 참여자가 일자리 타운홀 미팅에 시민으로 참여했다. 



일자리 위원회 타운홀 미팅에 프리랜서로 참여했다.


처음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 타운홀 미팅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참여 의사를 밝혔다. 노동 관련 의제를 다루는 자리에서 프리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일자리’ 위원회라는 이름이 ‘고용’노동부처럼 프리랜서에게 선을 긋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말이다. 


타운홀 미팅 주관사 실무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타운홀 미팅 참여를 위해 프로필과 정책 제안을 정해진 서식에 맞게 정리해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서식 파일을 열자 참가자 프로필을 적는 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현직, 사진, 성명과 연령, 학력과 경력을 입력하는 칸이 있었다. 타운홀 미팅 참여에 사진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했지만, 최근 찍은 여권사진을 소중하게 넣었다. 왜 사진을 넣어야 했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이어 정책제안을 적었다. 주요 내용은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산정 시 과거 수익을 고정 수익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프리랜서가 번 수익이 1회성이라는 것을 해촉증명서를 제출해 직접 증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여기에 ‘고용’을 기준으로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것이 현대 노동시장에서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고용’노동부가 아닌 ‘노동부’로 이름을 바꾸고 ‘고용’ 형태가 아닌 다양한 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조사해 그에 맞는 노동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적었다.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한 이유는 ‘고용’노동부로 존재하는 이상 노동자를 바라볼 때 ‘고용’ 형태여야 한다는 프레임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이 참여한다고 들어 어떤 답을 듣게 될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시민 참여자로 타운홀 미팅에 참여하지만, 현장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었던 터라 일자리 위원회 타운홀 미팅은 화상으로 진행됐다. 주요 부처 담당자와 사회자, 실무자 및 관계자를 제외하고 시민 참여자는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각자 집이나 사무실에서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타운홀 미팅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 할 때 담당자는 계속 주요 부처와 기관 관계자를 VIP라고 칭했는데, 관습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보다 시민 참여자가 VIP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화상회의로 회의를 진행하려니 리허설이 필요했다. 6일 회의에 앞서 4일과 5일에 화상 회의 리허설이 참여자 별로 진행됐다. 


충실한 배경화면으로 타운홀 미팅에 잘 참여했다.


리허설을 위해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안내해준대로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가 진행 되는 홀에 담당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사운드와 화면을 체크한 후 담당자는 내게 화상회의에 참여하지만 발언권이 없다고 했다. 타운홀 미팅 하루 전이었다. 시민 참여자 스무 명 모두에게 발언권을 주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왜 이 미팅에 참여해야 하는지 묻자 그래도 타운홀 미팅에 참여해 일자리 정책 관련해 어떤 논의가 이뤄지는 지 보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완전고용' 신화는 계속 된다. 


일자리 위원회 타운홀 미팅에 참여한 후기는 여전히 우리는 ‘완전고용’ 신화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타운홀 미팅 중 발언권의 기회를 얻은 시민 참여자의 정책 제안과 그에 대한 관계자의 답변은 철저히 ‘고용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민간 고용 시장을 안정화하고 공공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 고용 상태가 아닌 사람이 고용이 될 때까지 안정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한 시간 여의 일자리 타운홀 미팅에서 나온 핵심 내용이었다. 프리랜서에게 도움이 될 법한 내용은 전국민 고용 보험 제도 도입에 대한 이야기 정도였다. 물론, 전국민 고용 보험 제도 도입을 위해 사회적 합의와 해결할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와 예술인에서 시작해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용 보험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가 꺼진 채로 배경화면으로 열심히 자리를 지키던 나는 답답함이 밀려 왔다. 물론, 내가 모든 프리랜서 계층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수년 간 프리랜서로 일하며,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프리랜서를 만나며 알게 된 것은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노동 시장을 이분화하고 완전 고용을 위해 사회적 제도를 뒷받침하는 시절은 이제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 기술, 서비스, 문화 등 다양한 산업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노동 시장에서 고용 형태로만 노동력을 주고 받는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은 모두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콘텐츠 업계는 정규직 기반으로 사업이 운영되는 분야가 아니다.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드는 시장의 수요는 노동의 필요도 유연하게 만들었다. 제조업에 비해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운 콘텐츠업은 제조업으로 치면 생산능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래서 프리랜서와 협업할 때가 많다. 예측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수요가 올라가면 그때 그때 전문성 있는 프리랜서와 협업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완전 고용은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자 입장에서도 비효율적인 방식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 입장에서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창작 직군 중심의 콘텐츠 업계에서 고용 상태로 일하게 될 경우 콘텐츠 생산물 수요가 낮아질 때 창작이 아닌 부수적인 일을 해야하므로 업에 있어 주객전도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일자리’위원회라는 이름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고용과 일자리를 중심으로 지금의 노동 시장을 바라보면 소외되는 노동 계층이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은 높은 효율을 자랑하며 기술집약적 산업 사회에서 불필요한 노동자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하이패스 도입으로 톨게이트 노동자가 감소한 것이 대표적 예다. 외식업에서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키오스크 도입으로 두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야 했던 것을 한 명으로 줄이는 것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일이 점차 사라져 소멸점에 도달하는 바로 이 시점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의 장점에 대해서만 몰두하고 있다. “완전 고용"은 오늘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당의 목표가 되었지만 이는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하게 되었다.’ - 노 모어 워크, 제임스 리빙스턴 (내인생의 책 출판)


콘텐츠 산업의 발전과 문화 예술,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이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시대, 기술의 발달로 적은 수의 노동자로 높은 생산량을 뽑아낼 수 있는 시대에 완전고용은 그야말로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난 5월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가 한국형 실업부조인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안’(구직자취업촉진법 제정안)을 합의했다. 또한, 예술인을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합의했다. 이번 고용보험범 개정안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고용 보험 적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 7월부터 ‘국민취업제도’가 시행된다. 국민취업제도는 고용보험제도 밖 취약계층에게 월 50만 원씩 최대 300만 원의 구직 촉진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만 18세부터 64세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구직자이자 신청일 기준 2년 내 취업 경험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만 18세부터 34세까지는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까지 해당된다. 다만, 취업 알선, 직업 훈련 등 구직활동의무를 거부할 경우 수당 지급이 중단된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저소득 계층에게 실업급여와 유사한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고용 보험 대상 확대와 국민취업제도 모두 정책에서 소외된 노동자를 위해 신설된 정책으로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고용’과 ‘취업’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고용을 버리고 노동이라는 단어를 취하면 어떨까? 


정규직 고용 형태이든 계약직 고용 형태이든 특수 고용 형태이든 ‘고용’ 형태에 관계 없이 노동하는 사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를 위해 정책을 다듬어 가는 것이 급변하는 노동 시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노동자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 아닐까? 


전국민 고용보험제도는 애프터 코로나 시대에 최소한으로 노동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어줄 수 있다. 그 외에 또 어떤 제도가 실효성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노동자성을 취하고 있지만, 행정상 노동자가 아닌 사람이 너무 많다. 플랫폼 노동자로 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콜센터 직원, 계약직 강사 등 근로계약서 유무 만으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용과 일자리라는 단어를 버리고 일 하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측면에서 노동자성을 부여하거나 고용과 일자리의 정의를 확대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근로계약서를 주고 받고 4대보험에 가입하는 형태로의 ‘고용’, ‘일자리’의 정의는 그만큼 실질적 노동자를 배제하는 시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포괄적으로 일과 노동을 정의하고 그들의 삶을 뜯어 봐야 한다. 사회 구조를, 산업 구조를 미시적으로 관찰해 산업과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수적이지만, 가려진 노동의 존재를 발견해야 한다.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말하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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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는 일과 여성,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입니다. 매거진 <딴짓> 박초롱과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이다혜가 공동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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