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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Jul 12. 2017

상하이에서 경성 가는 기차 2부

#21. 영화 '밀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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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해 1. 이 글에는 영화 '밀정'의 스포일러가 들어있다. 큰 스포일러는 아니나 걱정이 되는 사람은 글을 읽는 것을 삼가기 바란다.

* 양해 2. 혹시 가족 중에 수능 제2외국어를 아랍어로 선택한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즉, 그 수험생의 능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아랍어를 선택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오해 없기 바란다.

▼ 상하이 - 경성 간 전체 여정의 이미지

 - 구간의 특징 및 관리 주체

 ·상하이 - 톈진 (중국 철도) 1,067㎞
 ·톈진 - 산해관 (중국 철도) 300㎞
 ·산해관 - 봉천 (만주철도, 일본) 419.2㎞
 ·봉천 - 안둥 (만주철도, 일본) 260.2㎞
  ※ 안둥과 신의주는 지척에 있다.
 ·신의주 - 평양 (조선총독부 철도 관리부) 223㎞
 ·평양 - 경성 (조선총독부 철도 관리부) 200㎞
 ·총연장거리 2,469.4㎞

 - 기관차 속도 및 소요시간

 · 당시 기관차 속도는 시속 65㎞에서 100㎞ 사이었다고 하니 대충 시속 80㎞로 달렸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단순히 계산을 하면 총연장 거리를 주행하는데 드는 시간만 감안하더라도 약 31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 그렇지만 차간 간격 등을 고려했을 때 톈진, 산해관, 봉천, 안둥, 신의주, 평양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4-5시간 있었을 것을 감안하면 24-30시간의 대기시간이 발생하고, 전체 일정은 55-61시간은 걸렸을 것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 결국 이 시점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여유롭게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중간 역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 정도는 자야만 피곤하지 않게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현재 상황

 · 지금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상하이 - 쉬저우 - 지난 - 텐진 - 셴양 - 단둥의 코스로 신의주 코앞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며 단둥 (예전의 안둥)까지 예상 소요시간은 21세기인 지금도 약 31시간이다.

 - 구체적인 여정의 이미지

 · 우선 상하이에서 현금 50엔을 지급하고 전체 일정의 기차표를 구매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문이 있다. 왜냐면 상하이 - 톈진 구간은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구간이었고, 톈진 - 셴양 - 안둥 - 신의주 - 경성 구간은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하이 - 톈진 구간도 1939년에는 만주철도의 자회사인 화중교통이 관리하게 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만주철도는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면 상하이역에 가서 현금 20엔을 지급하고, 상하이 - 톈진 구간 티켓을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고, 아마도 톈진 - 셴양 - 안둥 - 신의주 - 경성 구간의 티켓은 현지에 나와 있는 만주철도의 지사와 같은 곳에 가서 예약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주철도 입장에서는 이제 곧 중국 본토에 까지고 진출하겠다는 야심이 있었을 테니 상하이역에 작은 지사 하나 두는 것이 뭐 그리 큰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제 열차를 타고, 상하이를 떠나 톈진을 향한다. 한편 중국의 교통관리과 내지는 철도국은 지금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고 톈진으로 떠나는 여객들 중 톈진에서 봉천을 거쳐 안둥을 지나 신의주로 갈 승객이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그 승객 명단을 '봉산선 (봉천 - 산해관)', '안봉선 (안둥 - 봉천)'을 관리하는 만주철도의 담당부서에 송부하여 이를 각 역에 알려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이 어려워서 할 수 없다면 상하이역에서의 예약은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 만약 상하이역에서의 예약이 의미가 없다면 탑승자는 그저 상하이에서 톈진으로 이동할 뿐이고, 톈진 북부의 산해관역에 가서 봉천까지 가는 티켓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당시의 전신/전화 기술이 이 정도의 정보를 주고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예약 시스템은 가동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 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수익의 주체가 다수라는 점이다.
상하이 - 톈진 구간은 중국 정부의 철도회사가, 톈진 - 안둥 구간은 만주철도가, 안둥 - 신의주 구간도 만주철도가, 신의주 - 경성 구간은 조선총독부 철도 관리부가 수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 따라서 승객은 아무 생각 없이 운임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익은 구간마다 따로 분배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세 구간의 노선은 따로 관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대한항공과 코드 셰어를 하는 외국 항공사가 승객을 같은 비행기를 태우더라도 서로 정산을 해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 지금도 신의주역은 이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1930년대 당시의 신의주 역사 모습은 이랬단다.

▼ 열차에서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

 - 자, 이제 여권도 준비했고, 기차표도 준비하면서 구간별 특성도 파악했다. 이제 기차를 타면서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 우선 상하이역에서는 중국 출입국관리 관원들과 마주쳐야 한다. 조차지여서 다양한 나라의 군 경찰들이 상하이역을 서성거렸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 상하이 - 톈진 - 산해관 구간 (약 1,367㎞)

 ·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이동하는 여행객은 일본국이 발급한 여행과 기차표를 가지고 상하이역에 있는 출입국 관리 관원을 만나면서 열차에 올라서는 열차에 타고 있는 역무원에게 차표를 건넨다. 역무원은 검표를 한다. 상하이역에서 만나는 역무원의 국적은 중국인인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당시에 상하이에서 톈진 구간을 관리했던 주체는 중국 정부였기 때문이다. (중일 전쟁 이후에 잠시 만주철도가 관리주체가 된다.)

 · 그리고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승객은 열차의 정차와 시발을 반복하면서 톈진역까지 갈 수 있다. 이 구간에서는 특별한 위험이 감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들이었을 것이고, 특별히 일본이 검문검색을 할 수 있는 관할구역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때는 중국어나 할 줄 알면 열차 안에서는 장땡이다. 다른 언어를 잘 해야 별로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 보인다.

 - 산해관 - 봉천 - 안둥 구간 (약 979.4㎞)

 · 이 구간에서는 관리주체가 일본의 남만주철도 주식회사 (이하 만주철도)로 바뀐다. 아마도 매우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구간이었을 것이고, 이 구간은 매우 깔끔한 이미지의 구간이었을 것이다.

 · 아직 중국 영토 내에 있기 때문에 출입국 관리와 관련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안둥에 도착해서야 슬슬 출입국 관리와 관련된 사람을 만날 것이다. 이때 마주쳐야만 하는 사람은 만주철도의 철도원인데 이들은 일부 일본 본국, 조선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일부 중국 현지에서 조달한 인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 구간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해야 힘을 좀 쓰는 그런 구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영화를 보면 한 열차가 상하이에서 경성까지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 열차가 쉬지 않고, 풀코스를 전부 운행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열차가 그렇게 오래 달릴 수 있었을까 하는 것과 구간마다 관리주체가 다른데 한 열차가 운행되었을 때 수익의 배분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기 때문에 끊어서 운행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 열차가 안둥에 가까워지면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약간 긴장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중국 영토에서 벗어나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도착할 때가 다 됐기 때문이다.

 - 안둥 - 신의주 구간 (가까움)

 · 그야말로 국경의 이미지가 강한데 이곳에는 일본의 군/경찰이 밀집되어 있었을 것이고, 출입국 관리 관원들도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수하물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을 것이다.


 - 신의주 - 평양 - 경성 구간 (423㎞)

 · 일단 세관을 지나 신의주로 오게 되면 그곳부터 철도는 조선총독부의 관리 영역이다. 따라서 신의주에서 경성까지의 구간에 배치돼 있던 철도원은 주로 조선인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일부 일본에서 주재를 나온 주재원이었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구간에는 일본 검경의 불심검문을 받을 수 있고, 이때 통용되는 언어는 일본어 및 조선어다.

 ·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일단 안둥에서 신의주로 물건이 넘어왔고, 내가 의열단원이었다면 위험물을 경성까지 운반할 것이라는 객기는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신의주에 70% 내리고, 평양에 20%, 경성에 10%를 내려 각 지점에서 경성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하여 검거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다만 당시 여타 운송기관을 활용해서 신의주나 평양에 있는 위험물을 경성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 아주 아주 간략하게나마 아마추어적인 입장에서 상하이에서 경성에 이르는 기차 여행을 하면서 생각해야 하는 몇 가지를 생각해서 확인해 봤다.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몇 가지 느끼고 생각한 점은

1. 우리 조상들은 저렇게 험한 길을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했구나 하는 점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당시의 식민지답게 당시의 자료는 거의 하나도 없구나 하는 점
3.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과연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한 것과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가 하는 점

등이다.

▼ 그저 상하이에서 경성에 오는 데에만도 저만큼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 구간을 관리 감독해야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고, 만약 그 관리 감독을 뚫고 위험물을 반입해야 한다면 더욱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위업을 달성해야 할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일본어도 중국어도 조선어도 영어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해야 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때 사용해야 하는 외국어의 수준이란 괄호 안에 정답을 넣으면 맞다고 해주는 달콤한 시험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발음 하나 잘못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을 만큼의 절체절명의 상황이란 말이다.

▼ 상하이에서 경성에 이르는 기찻길을 둘러보면서 앞으로 비슷한 일이 우리 민족에 닥쳤을 때

1. 쪼잔하게 몇 점 더 받거나 더 높은 등급을 받으려고 프랑스어도 독일어도 스페인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아닌 아랍어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밀어붙이는 교육 정책밖에 펼치지 못하는 이런 나라에서 자란 아이들이

2. 상하이 - 경성 구간을 오는데도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 그에 걸맞은 외국어를 구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3. 과연 제대로 활약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됐고,

4. 만약 내가 의열단원을 선발해야 하는 입장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라도 결코 그 아이들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씁쓸했다.

▼ 과거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더 당당하게 대륙으로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개를 키우는데 힘을 쓰지 않는다면 저런 문제가 만약 다시 생겼을 때 우리는 무력하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봤다.

그리고 저런 상황 속에서도 내 나라를 찾겠다는 뜨거운 마음 하나로 그 시절을 살던 수많은 애국 청년/숙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저 그분들께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긴 연휴가 끝나고 내일이면 다시 각자의 일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깔끔하게 마무리 잘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일하자.

By 켄 in 상하이 - 톈진 - 셴양 - 단둥 - 신의주 - 평양 - 경성 
('16년 9월 17일)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밀정' (제작사 영화사 그림, 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에 있으며 이미지의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https://youtu.be/G7xUXRlRS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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