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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May 27. 2018

상하이에서 경성 가는 기차 1부

#21. 영화 '밀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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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해 1. 이 글에는 영화 '밀정'의 스포일러가 들어있다. 큰 스포일러는 아니나 걱정이 되는 사람은 글을 읽는 것을 삼가기 바란다.

* 양해 2. 혹시 가족 중에 수능 제2외국어를 아랍어로 선택한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즉, 그 수험생의 능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아랍어를 선택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오해 없기 바란다.

*******************************************************

신문을 보니 '17학년도 수능시험 제2외국어 선택과목 중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이 약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순간 에이~ 7%겠지 싶어 기사를 확인했는데.. 70% 맞다. ㅡㅡ

▼ 엊그제 영화 '밀정'을 봤다. 
은밀하게 적의 심장부에 잠입하는 밀정과도 같이 이 영화는 은밀하게 혼자 보고 싶었다.

(...라고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이리저리 수소문했지만 결국 아무도 보겠다는 사람이 없어 혼자 보러 간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참 괴로웠다. 그것은 오히려 당시 사회상에 대한 광범위한 의문이었다. 

사실 밀정이라는 콘텐츠가 우리에게 무에 그리 대단한가? 지난 40여 년간 보고 또 본 레퍼토리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건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 아나키스트 ('00년작)에서, 놈놈놈 ('08년작), 암살 ('15년작)에서 수도 없이 이런 장면들을 봤다. 당시 독립운동가와 일제 앞잡이의 차이가 뭔지, 당시 일제가 얼마나 잔혹한 짓을 했는지 등등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그래서 굳이 그 부분에 대해 설정이 안이하다든지 그건 말도 안 된다든지 등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라를 잃은 국민이 사분오열하여 뜻을 모으지 못하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이 생겨나고 그들이 싸움에 싸움을 거듭한 슬프고도 비참한 당시 우리의 현실은 이미 들을 만큼 들었고,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 김지운 감독님께서는 역사의 고증보다는 극의 충실도에 더 신경을 썼다는 코멘트를 하셨지만 김지운 감독님의 생각이 어떻건 관객으로서 1920년대 당시 상하이에서 경성에 이르는 길은 과연 어떤 길이었는가가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말이 '상하이에서 경성까지'지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면 경성에서 띡!!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퉁 치듯 상하이에서 폭탄을 제조하여 기차로 경성으로 운반한다는 계획을 관객에게 제시하지만 과연 상하이에서 경성에 이르는 여로 (旅路)는 어떤 것이었을까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기차 여행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 무엇이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봤다. 

▼ 여권

- 당시 조선은 이미 일제의 식민지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조선 국민은 모두 일본 국민이 된 상태여서 만일 여권을 발급받는다고 하더라도 일본국의 여권이었을 것이다.  

- 아래는 대정 8년 (1919년)에 한 조선인 여인에게 발급된 여권이다. 여권의 상세는 아래와 같다. 

   성명: 김백구
   족적: 조선 경상남도 부산부 범일동 1258번지
   호주: 김치명 씨의 처
   연령: 30세
   신장: 150 ㎝ 가량
   특징: 얼굴이 길고 색이 검고 눈이 큰 여인이다.

   일본제국의 외무대신은 남편의 부름에 의하여
   미국령 하와이로 가는 전기의 자에 대해 
   연로고장* 없이 자유롭게 통행하게 해주시고,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보호 원조해 줄 것을
   문무 관헌에게 청구합니다.

   1919년 4월 1일

   일본제국 외무대신 정3위훈 1등 자작 우치다 고사이


* 연로고장 (沿路故障) 없이: '가는 길에 지장 없이'라는 뜻으로 파악됨

- 같은 해 경기도에 사는 김아기라는 여인에게 발급된 여권은 블라디보스토크 (浦朝斯德)행 여권이었다.

- 만일 제대로 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 내에 외무부가 지정하는 일정 기관으로 가서 여권 발급 신청 후 여권을 받아야 했을 테고, 만일 상하이에서 여권을 발급받으려고 한다면 (여권을 분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본제국의 당시 상하이 소재 대사관 혹은 영사관을 방문하여 여권 신청을 해야 이 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다. 

- 간단하게 위조를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여권들에는 모두 목적지가 쓰여 있는 듯했다. 따라서 여권을 신청한 사람들의 목적지가 외무부 레벨에서 관리가 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면 위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리스크를 키우는 꼴이 될 것이다. 

- 아직 창씨개명이 시작되기 전의 일이기 때문에 영문명은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은 대로 표기되어 있다. 아직은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은 우리 이름을 지닌 국민들이었던 것이다. 

▼ 기차표 

- 기차를 타야 하니 당연히 기차표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열차의 여정'에서 더 자세히 다룰 부분이지만 기차표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 것은 비용 때문이다.

- 우선 1940년대 초 5일간 통용되는 경성 - 안동 (여기에서의 안동은 현재의 중국 단둥인 안둥을 의미함) 간의 1등석 열차표의 가격은 23엔 80전이었다. 20년대에서 물가가 약 30% 오른 것을 감안하면 20년대의 경성 - 안동 간 열차표 가격은 약 18엔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 1921년 당시의 물가를 보면 백미 10 ㎏은 2엔, 대졸 초임이 50엔이다. 영화관 입장료는 30전이었고, 커피 한잔은 10전, 제국호텔 (데이코쿠 호텔)에서 두 사람이 1박을 하는데 14엔이 들었다. 18엔이면 백미 90 ㎏ (한 가마니가 80 ㎏)을 살 수 있는 돈이었고, 커피는 180잔을 마실 수 있었다. 

- 정확히 추산될 수는 없지만 대졸 초임 월급의 약 40% 정도인 셈이고 요즘 대졸자들의 초임 월급을 200만 원이라고 한다면 약 80만 원을 써야 경성 - 중국 안둥 간 열차의 1등 칸에 탈 수 있었다는 계산이 된다.

- 그렇지만 지금 가야 하는 노선은 상하이 - 쉬저우 - 지난 - 텐진 - 셴양 (옛 이름 봉천/펑티엔) - 단둥 (옛 이름 안둥)- 신의주 - 평양 - 경성에 이르는 여정이다. 결국 단둥 - 경성 구간의 1등석 열차표의 가격이 약 18엔이라고 한다면 상하이에서 단둥에 이르는 열차의 거리는 단둥 - 경성의 3배가 넘는다.

- 일제는 1905년 이미 '만주철도 (정식 명칭: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1911년에는 안둥과 봉천 (현재의 셴양, 우리말로는 심양)을 잇는 '안봉선 (安奉線)'의 철도를 표준궤로 바꿨다. 당시 중국 동북지방 (현재의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열차 서비스는 거의 만주철도가 이행했고, 가격 수준이 일본 본토나 조선과 다를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 따라서 톈진 - 경성 구간은 거의 일제의 손아귀에 있었다고 본다면 그 구간의 가격은 일본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구간을 약 30엔 정도로 계산하고, 나머지 중국노선을 약간 싸게 생각해서 약 20엔 정도로 계산하면 상하이에서 경성까지의 기차 편도 1등 칸의 전 구간 가격은 못해도 약 50엔은 됐을 것이다.  

- 참고로 경성 비행장 1929년에 개장했기 때문에 비행기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당시 일본항공수송 주식회사 (JAL의 전신)은 경성 - 평양 간을 1시간 10분에 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1929년의 일이어서 당시에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 참고로 당시 경성 공항은 현재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 1920년 당시 배편은 '일본 우선 (니혼 유센)'이라는 회사가 3척의 배를 운영하며 일본 욧카이치 - 고베 - 인천 - 대련 (중국의 다이렌)을 잇는 항로에서 영업 중이었는데 요코하마에서 대련까지의 당시 1등석 운임은 39엔이었고, 3등석 운임은 15엔이었다. 

- 결국 위의 다양한 비교 분석을 통해 열차가 가장 좋다는 판단을 내려야 열차에 오르는 것이다. 상하이 - 경성의 전체 1등석 운임을 50엔이라고 생각했을 때 2등석 운임은 30엔 정도로 생각할 수 있고, 이 정도 가격이라면 흔들거리면서 뱃멀미를 해야 하는 뱃길보다는 안전하고 나름 쾌적한 육로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리 나쁜 선택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By 켄 in 상하이 - 톈진 - 셴양 - 단둥 - 신의주 - 평양 - 경성 ('16년 9월 17일)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밀정' (제작사 영화사 그림, 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에 있으며 이미지의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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