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지와 주지훈의 '그 영상', 다들 한번쯤 봤을걸?
서예지가 세운 하렘이 무엇이길래
찰나의 순간 무심하게 지나치는 엘리베이터 광고를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최근 엘리베이터 전광판 광고를 점령한 CF가 하나 있다. ‘시작은 한 다섯 정도?’로 유명한 광고가 바로 그것. 본인의 남자 후궁이 최소 다섯 명부터 필요하다는 서예지의 담담하고도 다소 뻔뻔한 주장에, 출퇴근 시간 직장인들의 시선이 모두 전광판에 꽂혔다. 이토록 삶에 찌들어 전광판을 거들떠도 안 보던 직장인 소비자를 단번에 사로잡은 엘리베이터 광고가 있었단 말인가! 이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광고의 정체는 ‘네이버 시리즈’에서 게시한 웹소설 CF. 소설 속 분위기에 걸맞은 아름다운 명배우들을 가상 캐스팅해 내용의 일부를 연기하는 것이 전부인 이 영상은 마니아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킴은 물론, 단숨에 신규 유저들까지도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거 어디서 볼 수 있는 건데?” 라는 폭발적 반응과 함께.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버린 여성들
유럽 중세의 판타지풍 풍경, 이국적인 저택과 성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남녀 간의 로맨스. 현재 30대-40대 여성을 중심으로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의 영역은 마니아층 돌풍을 넘어 점차 대중까지 무섭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당장 포털 사이트에 ‘로판(*로맨스 판타지의 준말)’만 검색해봐도 추천글과 영업 글이 실시간으로 줄을 지어 올라오고 있는 추세다. 3040의 전유물이라면 연령대가 너무 높고 소수이지 않느냐고? 보다 더 접근성이 좋은 웹툰 포맷으로 치환한다면 이 장르의 주소비자층은 10대 소녀까지도 내려온다. 네이버 시리즈 CF의 근원, 유명 작가 알파타르트의 ‘재혼황후’ 작품의 경우 누적 다운로드 수 1억 건을, 네이버 웹툰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의 경우 화요웹툰 상위권을 장식하며 10대들 사이 수많은 2차 창작 콘텐츠를 낳았다. 일부러 로맨스 판타지 장르만 찾아다니는 ‘로판 고인물’이라는 신흥 소비자층까지 만들어 낸 이 장르는 포맷을 막론하고 수많은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 로판이 뭐가 다른데? “잘난 남자 주인공, 더 잘난 여자 주인공의 합”
‘로맨스 판타지’라고 하면 고전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가 생각난다. 잘생기고 멋진 왕자님과 어여쁜 성장형 여주인공의 조합은 언제 봐도 재밌기 마련. 그러나, 요즘 로맨스 판타지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더 자극적인 감칠맛(?)이 살아있다. 필자가 근 몇 달간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 보며 정의 내려본 ‘요즘 로맨스 판타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캐릭터는 이래요
주인공은 여성, 그것도 세고+똑똑하고+능력이 출중한 여성 ✏️
잘나고 잘생긴 남주인공…. But 한 두 명이 아닐 수도?! 무수한 남주인공들의 등장
여주인공은 굳이 착하지 않아도 된다. (악녀를 자처해도 된다!) 계략과 투쟁도 O.K.
성격은 나빠도 의리는 있다. 자신을 돕는 여성 캐릭터와 연대하거나, 믿을만한 동료와의 눈물겨운 파트너십. ❤️
‘로맨스 판타지’의 전형적인 신데렐라 공식이 달라졌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캔디형 여성 + 재력형 남자 주인공의 케미가 아닌, 이미 모든 걸 다 갖춘 여성의 ‘더 갖는 여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해버리고, 현실의 10대부터 30대는 그 여성 캐릭터의 일대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환생물*이고, 빙의물*이고 간에 주인공은 이제 똑 부러지고 잘나야만 한다. 남자 주인공을, 한 나라를 쥐락펴락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 독자 버전 무협지가 이런 느낌일까 싶다. (환생물* : 주인공이 새롭게 환생하여 제2의 삶을 사는 극의 형태 / 빙의물* : 주로 악역에 빙의해서 세상을 쥐락펴락 해보는 극의 형태)
#2.독자들은 이래요
작품성? 우리 깐깐한 독자들 아니에요. 고증이 확실치 않아도 좋아요. 중세시대 유럽 배경의 그 어드메, 두루뭉술해도 모두가 묵인해줘요.
맺고 끊는 호흡이 짧게, 가벼울수록 좋아요! 나의 일상 중간에 짬짬이 읽기 좋은 포맷. 소장보다는 대여를. 기존의 두꺼운 종이책이 잘 만든 2시간짜리 영화였다면, 요즘 포맷은 5분짜리 웹드라마를 보는 느낌.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는 장치를 원해요. 멋스러운 복식, 맛있는 음식, 러브라인의 수위, 그 무엇이든.
왜 독자들은 이미 만들어진 완성형 캐릭터에 열광하는가? 고단한 삶에, 더 고단한 주인공의 일대기는 스킵해버리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독자들은 ‘진득히 앉아 콘텐츠를 소비할 시간’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짧은 내용 속 캐릭터가 쿨하고 빠르게 일과 사랑을 쟁취한다면, 독자들은 맛있는 부분만을 덥석 받아 빠르게 빠르게 소비할 수 있다. 짬 내서 스낵 컬쳐를 소비하고 싶은 독자 + 짧은 포맷으로 끊어주는 플랫폼 + 모든 걸 채워주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가 만나 궁극의 삼박자로 ‘요즘 로판’ 장르가 개척된 것.
독자로서 감히 말한다면, 나는 로맨스 판타지의 작품에서 깊고 내밀한 작품성을 원하는 게 아니다. 현실의 갈증을 빠르게 채워줄 탄산음료 같은 카타르시스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 중간중간에, 내 책장을 차지하지 않고 대여시스템으로 말라있는 상상력을 후루룩 채워줄 수 있는 콘텐츠. 그 니즈를 제대로 채워주는 콘텐츠가 바로 지금의 ‘로맨스 판타지’ 장르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붐업의 시작은 평범한 여성들이 모일 때부터.
왜, 지금에서야 로맨스 판타지인가? 2020년 떠오른 로맨스 판타지 트렌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로판과 뗼레야 뗄 수 없는 대표적 포맷, ‘웹소설’ 시장을 돌이켜보자. 사실 ‘웹소설’이라는 포맷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시초엔 플랫폼 ‘조아라’와 ‘문피아’가 주름잡고 있었다고 했던가. 그러나, 선대 채널들에서 소비되던 웹소설들은 소위 ‘마니아층의 전유물’이었다. 아는 사람만 알아요, 읽는 사람만 읽어요. 매력과 잠재력은 어마어마하지만 일반인들은 조금 범접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 세계 안에서 로맨스 판타지가 판을 치든 말든, 영화화가 되거나 드라마화로 표절 시비가 붙기 전까진 일반인의 이슈를 끌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기업의 힘을 등에 업은 로판 웹소설 시장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마니아를 넘어 ‘웹소설이 뭔데?’하던 평범한 여성들까지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준비된 다채로운 로판 웹소설들은, 다듬어진 대기업 플랫폼을 통해, 더 깍둑썰기를 거친 간략한 포맷을 통해 평범한 여성들에게도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대중화는 평범한 여성들이 모일 때부터 시작되는 법. 웹소설의 누적 뷰는 로맨스 판타지라는 자극적인 소재의 옷을 입고 천만 단위를 넘어 억뷰를 넘어가기 시작했고, 음지 문화에 가까웠던 웹소설은 덩달아 메이저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로맨스 판타지의 붐으로 보이는 이 트렌드는 결국 웹소설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덩달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력하고 있는 웹툰 시장에 관한 뉴스를 접해본 적 있는가. 네이버(라인)와 카카오(픽코마)는 현재 일본의 웹툰 시장 지분율을 7할 넘게 차지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종이책 만화의 강국이었던 일본이 차세대 만화 시장에 대한 지분력 약화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몇 수 앞서 웹툰 플랫폼의 다음 타자인 웹소설 플랫폼의 확장을 점치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대중화 전략에 사용되는 첫 타깃 장르는 바로 여성들이 열광하는 ‘로맨스 판타지’인 셈. 여성들 사이의 판타지를 교묘하게 자극하여 대중화를 노리는 웹소설 플랫폼은, 대중문화의 소비 주축인 여성들을 등에 업고 폭발적인 대중화의 시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미 ‘고인물’ 소리를 듣는 헤비유저까지 생겨난 로맨스 판타지 시장, 앞으로 향후 n년간 웹소설 시장을 견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가지공장의 한 줄 평
여성들의 로맨스 판타지가 뜬다! 현실의 부족한 나를 채워주는 합법적 기분전환용 판타지.
당신은 몇 편이나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