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
#나를 찾아가는 기록들 1
스물세 살, 처음으로 떠난 교환 학생을 시작으로 나는 진정한 외향인(극'E')이 되었다. 해외에서 꾸준히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는데,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내가 평소에 되고 싶어 하던 모습의 사람인 척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그 환경은 내가, 새로운 나로서의 모습을 연습할 수 있는 도화지였고, 또 종종 멋진 사람들을 만날 때면, 배우고 싶은 모습의 조각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연습을 해나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의 나로서 나를 새롭게 그려 나갔다. 세상을 여행하면서 나는 높고 깊고 넓어졌다.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게이지를 키워나갔다. 폭풍 성장 시기였다.
살아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덜했던 대학생 시절에 비해, 그럴듯한 자리를 잡아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을 받는 나이가 될 때 즈음부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정신없었던 성장 곡선을 지나면서 슬슬 정체기가 따라왔다. 가라앉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는, 나를 기분 좋고 특별해 보이게 만드는 '높은 경험'에 크게 의존했다. 그 덕에 살아오면서 나는 '재미있고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코멘트를 적지 않게 들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경험은 나를 높이 이끄는 데 성공했지만 깊거나 넓게 이끌지는 못했다.
한창 이직을 고민하던 그 시절, 친구와 대화를 하며 던진 말이 있었다.
'너무 공허한 것 같아. 돈도 나쁘지 않게 벌고 워라밸도 너무 좋아.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데 너무 공허해.'
밀도 있는 삶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결국 이직을 한 것은, 팔랑귀에 겁쟁이인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함이었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편안함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조금 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도전하고, 위기에 맞서고, 고난을 인내하는,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는 젊음이라는 축복스러운 환경을 격렬하게 누려야 한다는 고민의 결론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분야는 내가 경험했던 것들 중, 나의 성격에 가장 잘 맞고 내가 취하고 싶은 키워드나 키워나가고 싶은 역량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분야였다.
편안함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인생에 나는 나를 내던졌다. 그리고 오늘은 이직한 지 딱 5개월 되는 날이다. 내게 연구원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부여해 준 이 회사는 우선 일이 많다. 그만큼 내게 다양한 넓이와 깊이의 옵션이 주어진다. 내게 주어진 기회들로부터 배움을 얼마나 챙겨갈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바쁜 와중에 경험을 소화하는 것도 나의 몫이고, 나만의 전환의 시간을 챙겨가는 것도 내게 주어진 과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기록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나는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꾸준히 배움과 성장을 기록해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밀도를 채워 나가는 중이고, 가끔은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 생활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