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인생 2막의 과제: 확신
최근 회사 일이 무척이나 바쁘고 힘들어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정신을 챙기고 휴식을 위해 이래저래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승마이다. 지난 한 달간 친구가 일하는 승마장에서 열심히 말똥도 치우고 빗질도 해주며 말들과 교감했고, 말멍도 때리고, 말도 탔다.
말은 보내는 것 부터가 훈련이다.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영 아니다 싶으면 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제대로된 신호를 주지 못하면, 코치들의 도움 없이 말들은 한 발자국도 떼지 않는다.
말을 처음 타게 되면 '박차'라는 걸 배운다. 박차는 말의 옆구리를 자극해 말들이 걷거나 달릴 수 있도록 신호를 주는 것을 말하는데, 내가 짧다면 짧은 이 인생을 살며 누군가의 옆구리를 차 본적이 있기는 하겠는가, 처음부터 박차를 잘 하기는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하물며 '옆구리를 찬다'는 어감 자체가 굉장히 누군가를 해한다는 느낌이 다분하니, 힘주어 말들의 옆구리를 차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멜로우라는 친구와 함께 하고 있는데, 멜로우는 뭐랄까 사람으로 치자면 인심 좋은 대기업 과장님 같은 스타일이다. 감각에 무디고 느릿느릿 하지만, 그만큼 합이 잘 맞으면 함께하기 너무도 편한 그런 친구랄까. 하지만 나는 아직 멜로우와 많은 교감을 하진 못했고, 완전 잘 맞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그만큼 멜로우와 함께할 때면 박차에도 무디고, 평보에서 속보로 가는 과정도 꽤나 더디다.
작은 원형 연습장에서 나는 오른손에 작은 승마 채찍을 들고 멜로우와 함께 좌속보와 경속보를 연습하고 있었다. 자꾸만 느려지는 그녀의 발걸음을 어떻게 해서든 맞추어 나가야 했는데, 친구의 어머님이 연습장 밖에서 나를 지켜보시며 코칭을 해주셨다.
"오케이, 세 바퀴 안 쉬고 달려보자"
"오케이, 한 바퀴 더 네 바퀴 안 쉬고 달려보기. 너가 얘를 컨트롤 할 줄 알아야해"
"느려질 것 같으면 채찍으로 툭툭 쳐주고, 박차해."
"좋아, 그렇게 계속 용기를 주는거야. '그거 맞아, 달리는 거 맞아 달리면 돼'라고 확신을 주는거야"
누군가를 찬다고 생각만 해봤지, 사실 박차라는 것이 용기를 북돋아주는 신호임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약간의 아하 모먼트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 확신이라는 것이 우리네 인생에 너무도 필요한 거라서,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확신이 필요한 우리네 동물은 초연결 사회 속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며 그 누구로부터도 박차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
너가 하고 있는 것이 옳으니, 그대로 달리면 된다는 그 신호. 세상이 주는 그 신호를 육감적으로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신호를 인간의 언어로 잘 풀어주는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는 것. 마지막으로 그 신호를 스스로도 잘 만들어낼 낼 수 있는 것. 스스로 확신을, 용기를,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내 인생 2막의 첫 과제는 결국 확신을 찾는 여정, 적어도 5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