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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May 10. 2021

경주 여행 다녀오다

휴직 2주 차

5/3,4일이 아이들 학교 자율휴업일이라고 하고, 신랑 회사도 휴가를 권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4박 5일간의 제법 긴 일정과 아이들 학업을 고려하여 경주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 와중에, 휴직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일정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좋다 싶으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이번에는 운치 있게 경주 서악 마을의 기와집에서 묵기로 했다. 대부분의 집들이 단층이고 기와를 얹어 마을에서 보는 정경이 탁 트여있고 예쁘고 여유로운 동네였다. 늘 아파트 숲에서 살았는데, 잘 관리된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동네 구경하다가 마침 근방 공터에서 진행 중인 성악, 국악 공연이 있어 첫날부터 귀호강을 한다. 비대면 시대 유튜브나 화상회의 등으로 많은 것이 대체되고 있어 잠시 고 있었다. 공연은 역시, 현장에서 봐야 한다. 오랜만에, 소리가 가슴 깊은 곳까지 퍼지는 느낌을 느껴본다.




4일간, 경주에서 봐야 하는 신라의 주요 유적지를 돌았다. 석굴암 부처님을 보며 마음이 경건해지기도 했고, 여전히 헷갈리는 다보탑과 석가탑도 다시 보았다. 의외로 10원짜리에 새겨진 다보탑은 굉장히 단순화된 형태였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화려하고 크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불국사는 과도한 보수나 재건을 하지 않은 느낌이어서, 전체적으로 세월의 낡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오래전에 역사스페셜에서 본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어 가보았는데, 그대로 남아있었다면야 멋있었겠지만 정말 지금 상상하는 그런 높이와 그런 모양의 탑이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몽골이 불태웠다고 하지만 이전에 이미 벼락을 5번이나 맞았다 하니, 전쟁이 아니었어도 목탑은 남아있기 힘들지 않았을까. 꼭 몽골 탓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연애할 때 가봤던 문무대왕릉, 다시 가본 그곳에선 여전히 굿당을 차려놓고 기도드리는 분들이 많다. 무속신앙의 세계는 잘 모르다 보니 하염없이 북을 치고, 종을 울리고, 방생하고 하는 그런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아이들은 쓸려오는 파도를 피해 뛰어다니면 놀기 바쁘다. 역사공부는 무슨, 바닷가에선 노는 거지 ㅎㅎ



경주에서 꼭 가야 하는 곳, 대릉원의 천마총은 고분 중 실내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오픈해 둔 곳이다. 보는 내내 마음이 썩 좋지 않다. 누군가의 무덤일 텐데, 샅샅이 다 파헤쳐두고 열어두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해 놓곤 고인에 대한 예를 지키라고 안내가 붙어있으면 뭐하나 싶달까. 무덤 속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관광기회와 고인의 존엄성을 맞바꾼 곳이라,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곳이었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답게 아직도 여기저기서 고분을 발굴하고 있는데, 관람이 가능한 쪽샘 유적지 발굴 현장을 보았다. 한 땀 한 땀 흙을 파고 체치고 기록하는 지난한 작업, 직접 보니 여러 사람들의 오랜 기간 노력의 결과물을 너무 손쉽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발굴 담당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아이의 기억에 조금은 더 인상 깊게 남길 바라본다.


동궁과 월지의 연못도 그렇고, 불국사 앞에도 물이 흐르고, 감은사 앞에도 바다까지 연결하는 수로가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신라 사람들은 물을 좋아했나 보다. 포석정도 물을 활용한 곳이고 말이다. 옛 모습을 상상하며 보면 엄청나게 화려했을 것 같다. 금으로 된 각종 장신구를 두르고 연회를 하고, 앞에는 연못이 보이고 못에는 각종 동식물이 있고... 고려나 조선 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함이 신라의 매력인 것 같다.


마지막 날에는 아직도 옛 기와집, 초가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양동마을을 둘러봤다. 집의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옛 마을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좀 실감이 난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계속 이 집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 마을분들은 꽤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텐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늘 그렇지만, 아이들의 역사공부를 위한 여행이라는 말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 실현되기는 어렵다. 사전에 아이들에게 직접 계획도 짜보라 하고 책도 보라 하며 '공부'하도록 애쓰긴 했지만 강제로 시키는 건 아이들이 기가 막히게 느끼고 잘 안 한다. 어쩌겠나. 물가에 데려다주는 것까지가 부모 몫이고 물을 먹든, 다른 걸 느끼든 그건 아이들의 몫인 거지.

어쨌든 덕분에 정작 나는 경주를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공부해가며 느껴가며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 같다. 정말 '제대로' 보려면 다시 또 와야 할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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