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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May 17. 2021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신다면

휴직 3주 차

지인이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냈어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아침부터 시간을 쪼개가며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했는데, 열심히 하루를 살아낸 것이 분명한데, 오늘 뭐 했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인 일주일을 돌아봐도,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게 없다.


좀 더 생각해보자. 분명 무언가를 했으니까.

적어도 주 5회는 집 정리 후 청소기를 돌렸고, 거의 매일 빨래를 해서 널고 정리했고, 어떻게든 삼시 세 끼를 책임지긴 했다. 배달해먹든, 반찬을 사 오든, 얻어먹든, 직접 해 먹든 간에 말이다.


그 와중에 시간을 잘 써보겠다고 주 3회는 운동을 갔고, 8주짜리 30분 달리기 프로그램도 시작해서 두 번 뛰었다. 아직은 30분 중 대부분의 시간을 걷기만 하고 있긴 하지만.


아침마다 영어 프로그램 라디오를 20분 듣고 낭송하고 문제풀이를 하고 있고, 짬짬이 추가로 20분 어제 것 재방송을 또 들으며 복습도 한다. 여러 번 듣는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치를 나중에 돌아보면 80%는 까먹고 있어서 과연 이게 공부가 되긴 하는 건가 싶은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게 문제이지만.


뭐랄까, 이것저것 하고는 있는데, 다 이게 제대로 하고는 있는 건가 싶다.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살이 빠지거나 근육이 빡 붙은 것도 아니고, 애들을 챙기긴 한다는데 세 끼 밥 중 두 끼는 배달이나 레토르트다 보니 이게 챙기는 건가 싶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긴 했는데 영 뭔가 쌓이거나 실력이 느는 느낌이 안 들고, 아, 운전연수도 해서 운전을 슬슬 시작은 했는데 아직까지 주차가 어설퍼서 차를 끌고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집안일도 하긴 하는데 반짝반짝 윤나게는 절대 못하고 있고 말이다.


"나 요즘 이거 하고 있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 소위 생산성 있는 일들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헛헛한 마음을 '취미'생활로 풀고 있는데, 첫 번째 취미는 보석 십자수이다. 좀 큰 사이즈를 하나 해보고 싶어서 30*40cm짜리 그림을 주문해서 하루에 할 일을 다 하면 나에게 보상하는 기분으로 하고 있는데, 어제 드디어 완성했다. 이런 류의 취미는 건강에도 좋을 게 없고 (어깨랑 눈이 너무너무 아프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은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백해무익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으니까 하긴 하지만, 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는 않달까.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해야만 할 일이 얼추 마무리되어야 시작하곤 한다.

꼬박 일주일 매달려서 완성한 작품(?). 신랑과 가족들의 왜 그러고 있냐는 비난을 뒤로하며 한 땀 한 땀 붙인... 나만 아는 수고가 담겨있는 그림이다. 하하


그리고 요즘 그림도 그린다. 한 시간여 온라인 수업 들어가면서 그림 하나를 완성해내면 꽤 그럴듯하고 뿌듯하다. 스케치하고 채색하는 과정도 힐링이 되고 좋다. 어느덧 수업과정이 끝나서 이번 주에는 혼자서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혼자 해봤는데, 진정한 내 첫 작품을 보고 깨달았다.

아, 나는 그냥 혼자 보는 취미로 그림을 그려야겠구나.

보고 따라 그리는 건 해도 창작은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누가 보면 아이들 그림 수준이다. 하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전문가가 되는 거는 포기하더라도 그림 그리면 기분이 좋으니까 혼자서 끼적 끼적은 짬날 때마다 할 생각이다. 이 또한 돈이 되거나 생산성을 높여주는 건 아니겠지만.


취미생활도 하긴 했는데 내놓고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에잇.

성과가 수치나 눈으로 보여야 좀 더 신나는데. 자꾸 회사에서 KPI 따지던 습성이 남아있어서 그런 건지...

하고 싶은 것 하며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거라고, 마음을 바꿔먹어 봐야겠다.

오늘도, 운동하고 집안일하고 글도 쓰고 있잖아?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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