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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Aug 08. 2021

요트 타보고 싶어

휴직 14주 차

우연히 카약 무료체험을 발견한 게 시작이었다. 신랑한테 아이들 데리고 이거 해보자고 보내줬더니, 이런 것도 있는데? 하며 무료 요트 체험이 있다는 거다. 요트는 구경밖에 못해봤는데, 가만히 서있는 요트 들어가 보는 것까지밖에 못해봤는데, 게다가 무료 체험이라니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방에 사는 지인에게 말하니 반차를 낼 수 있다며 같이 가자 한다. 오예!


월요일 10시, 업무시간이 되자마자 무료체험 신청받는 곳에 전화를 했다. 무뚝뚝하게 전화받은 사람은 단칼에 마감되었다며 끊는다. 아... 어쩐다지. 지인도 너무나 아쉬워한다. 기왕 약속도 잡은 거 제 돈 내고라도 타보자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찾다 보니, 한 시간 요트 투어도 있고, 이벤트처럼 연회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요즘은 정원 열 명 짜리 요트도 6시 전엔 4명, 6시 이후엔 2명까지만 승선한다고 한다. 오호,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더 좋은 조건이다.


지인과 다음 주로 날을 잡고 예약한 후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운전이 서투른 나로선 서해 바다까지 가는 것만 해도 큰 도전이다. 그래서 신랑을 옆에 태우고 한 시간 넘는 거리 운전 연습을 따로 했다. (운전하는 내내 어찌나 뭐라고 하던지 ㅠㅠ 상황이 이러니까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가족 간의 운전연수는 추천하지 못하겠다.) 지인은 영종도의 맛집과 카페를 알아보고 예약해줬다. 아직 그저 '계획'일뿐인데도, 육아와 일에 쩌든 엄마들 마음은 둥실둥실하다.


탈 것에 관심이 많은 신랑이 질투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회사에서 버스 한 번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며 아쉬워하고, 내가 차 못 쓰게 차 가지고 출근해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귀엽고, 정 하고프면 휴가 내고 오라니까 그건 또 안될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쯧쯧.


대망의 요트투어 전날 오후, 엄마들은 마지막으로 예약을 확인하고 준비할 것을 챙기느라 바쁘다. 가끔은 실제 여행보다 여행 직전의 이런 설렘을 느끼려고 여행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트 타기 전의 두근대는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추진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갑자기, 신랑한테 연락이 왔다. 내일과 모레 휴가를 냈다고 한다.

응?? 뭐라고??

요트 타고 싶으면 진즉 말을 하지. 신랑이 요트에 관심 있는 걸 아는데, 휴가도 냈다는데, 신랑도 데리고 가고 싶어 진다. 지인과도 다 같이 아는 사이라 양해를 구하고 예약을 변경해가면서 다시 일정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챙겨 먹으라 일러두고 우리 부부는 서해로 떠났고, 지인을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그간 못한 수다를 떨어대고, 맛난 카페에 가서 또 수다를 떨어댔다. 수다에는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힘이 있다. 그리고 셋이 있다 보니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는 말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다. 둘이 얘기할 땐 모르던 신랑의 속마음을 이런 대화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어서 더 재미있었다. 한참을 먹고 마시며 떠들다 보니 어느덧 승선할 시간. 대기실이란 곳으로 들어갔는데, 으리으리하다. 역시, 요트는 고급진 취미인가 보다.


딱 우리 셋, 세일요트를 타고 잔잔한 바다로 나간다.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수평선 아래의 바다와 수평선 위의 하늘과 구름뿐이다. 한가로운 이 기분을 누리려고 요트를 타는구나.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럭셔리한 배 내부도 구경하고 바람도 느껴보는 한 시간이었다. 함께해준 사람들이 있어 더 좋았다.

요트를 탄 한 시간도 좋았고, 소중한 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알아보고 준비하며 설레었던 며칠이 있어 더 좋았다. 이런 경험이 또 열심히 일상을 이어 나갈 활력소가 되어준다. 이제 이 기억과 기분을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집에 돌아와 문을 여니 아이들이 인사한다.


"엄마 아빠 재밌었어?"

"그럼, 정말 좋았지. 너희들도 나중에 돈 벌어서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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