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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Aug 25. 2021

조조영화

휴직 17주 차

8월 19일까지인 무료 영화 관람권 한 장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한 장인데 굳이 가야 하나 싶다가, 그래도 가서 볼까 싶다가, 요즘 별 영화 없는데 그냥 버리는 셈 쳐야겠다 하다, 아깝긴 한데 아쉬우니 좀 가볼까 싶다가... 맘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8월 18일 저녁이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사실상 영화 보러 갈 마음을 접었고, 심지어 영화표가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에서 지워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갑자기 큰애가 말한다.

"엄마 영화 보러 안가? 영화표 내일 까지라며"

"응? 그냥, 안 보려고. "

"아깝잖아. 가서 보고 와. "


정작 나도 아니고, 아이가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아무튼 아이가 얘기하니 한 번 알아나 볼까 싶어 상영 중인 영화를 뒤적여본다. 당장 밤에 가서 볼 수 있는 건 두세 개 밖에 없고, 다 어두운 내용이라 내키지 않는다. 내일 영화들도 보니 아이들 챙겨야 될 거 생각하면 시간대가 마땅치 않고, 메이저 영화도 없는 것 같다. 흐음... 딱히 마음에 쏙 들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으니, 가족들이 재촉한다.


"내일 조조로 보고 오면 되지 않아? "

"엄마 혼자 아침에 보고 오면 되잖아. 영화 보고와~"


오, 조조를 보면 시간이 되긴 하겠구나 싶어서 또 뒤적뒤적한다. 어쩜, 8/19일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몇 개 있다. 개봉일에 조조로 영화를 본다. 괜찮은데? 그중에 마음에 드는 영화를 하나 골라서 예매를 마쳤다. 예매한 사람이 10명도 안 되는 것 같다. 하기사, 아침 8시 반부터 영화 보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다음날 아침, 여느 아침과 같지만 다른 아침이다. 왜냐, 나는 영화를 보러 갈 것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집안일과 먹을 것을 챙겨놓고 아이들이 잠든 틈에 집을 나선다. 쇼핑몰 문도 아직 닫혀있고 어둑어둑하다. 사람이 별로 없이 한갓진 아침의 영화관,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영화관, 아이들이나 남편 하고는 같이 보기 어려운 담담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 정작 와보니 기분이 슬금슬금 좋아진다. 한껏 여유롭게 영화표 출력해서 영화관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관람객은 딱 네 명. 다 혼영 하러 온 사람들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독립영화 보겠다고 혼영 하러 온 나머지 세 사람들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숏버스:감성행'이었다. 독립영화 세 편을 묶어서 낸 거였는데, 제목처럼 몽글몽글한 이야기들이 감성을 돋아준다. 내 현실과는 멀고 먼 이야기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잔잔하게 예쁘고 살짝은 가슴 저미는 이야기들. 특히 여주인공들이 매력 있고 재주 넘치는 사람들이라 다 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개봉날이라고 굿즈를 준다. 심지어 굿즈 구성도 꽤나 알차다. 마음에 드는구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감과 동시에, 나는 현실로 복귀해야 한다. 부지런히 돌아가서 아이들 아침 챙겨야지. 두 시간 동안 차올랐던 감성이 급격히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한동안 또 현실에 치여 살아야겠지만, 잊지 않으려 한다. 기분 좋은 기억이 또 일상을 이어나갈 힘을 줄 것이니. 잔잔한 여운이 제법 남는 영화 자체도 좋았고, 영화를 볼 수 있게 등 떠밀어준 가족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영화를 알아볼 떼의 설렘과, 두어 시간 동안 느낀 자유로움은 더 좋았다.


감성 터지는 아침을 보낼 수 있게 서포트해준 가족에게, 특히 큰애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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