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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재 Aug 05. 2024

결혼, 지상 최대의 난제 3

지난했던 내 혼인 활동, 마지막 시도


마흔을 바라보는 싱글 언니와 간병 보험이 출시되었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너 정도 나이면 한 번 해 보지 그래? 하고 처음 접하게 된 단어, 결정사. (결정사: 결혼정보회사의 줄임말)


결혼정보회사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다. 출근길에 건네어 받은 '만나게 해 O오'의 탁상용 달력, 정보를 입력한 적도 없는데 전화가 걸려와 한 번 만나 보시라던 '바로 O'... 그때는 카피 한 번 참 잘 쓴다 하고 웃어넘겼던 곳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결혼정보회사'라는 키워드에 참 많은 업체가 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결혼에 성공했어요라는 체험기 형식을 띠고 있지만 마무리는 꼭 업체 홈페이지로 가는 링크가 걸려있는 노골적인 블로그 글이 난무했다. 읽다 보면 에이 낚였네 하는... 결혼 상대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까?


열거된 회사 홈페이지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보이고 소개받는 과정에서 내 정보가 너무 노출되지 않을 것 같은 업체를 한 군데 골랐고, 몇 가지 정보를 넣으니 통화 음성상 신뢰감 가는 중년 여성분에게 연락이 와서 만날 약속을 하고 엄마랑 직접 업체에 찾아가 봤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탔는데 그 업체가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르기 뭔가 쑥스러웠다. 엄마와 나는 그 층에 내린 후 서로 미리 정해 두지도 않았는데 그 업체와 반대 방향의 곳으로 가는 것처럼 몸을 돌려 내리곤 둘이 엄청 웃었다. 업체에 들어서자 리셉션과 많은 상담용 방들이 보였고 잠시 대기하다가 그 방들 중 하나로 안내되었다. 


이윽고 전화 상담을 했던 매니저분이 들어와 마실 것을 주고 아이스 브레이킹이 목적이었을 것은 같은데 나와는 관련이 없는 다른 분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결혼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난 어떤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는지와 비용이 궁금했는데 자꾸 다른 여자분들의 상황과 사례에 대한 설명에 슬슬 지쳐갈 무렵, 드디어 어느 정도 나의 신상에 대해 나와 엄마에게 묻더니 차트를 작성하라고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집안 자산에 대해서도 10억 단위로 체크하는 란이 있어 엄마와 눈치코치로 맞춰 적어 완성했다. 나 어릴 적에는 타워팰리스가 10억이었고, 10억만 있으면 노후 걱정할 거 없다고 얘기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10억이 집안 자산의 최소 단위라니라는 격세지감의 심정과 함께, 내가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못한 이유로 남 앞에서 집 자산 정보까지 공개해야 하는 민망한 상황까지 만들어 엄마에게 매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매니저분이 차트를 훑어보면서 몇 가지 추가로 더 질문을 했고, 내가 비용에 대해 궁금해하자 메뉴판을 보여줬다. (정말 중국집 메뉴판처럼 생겼다;; 뭘 먹을까...) 나의 경우에는 동급의 사람이거나 바로 윗 등급까지도 충분히 만나 볼 수 있다고 했다. 마치 설국열차의 1등 칸, 2등 칸, 3등 칸을 보는 듯한 요금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거부감이 들었고, 헬스장처럼 등록해 놓고 후회하는 상황을 만들기 싫어 일단 좀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엄마와 오는 길 내내 설국 열차 같다는 얘기를 하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 그냥 이렇게 알아본 것으로 만족하자 ->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만날 인연이면 꼭 나타날 거야라며 결론 내렸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똑똑한 척 다 해 놓고 다음에 등록하겠다며 신상정보를 고스란히 적은 차트를 그대로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렸다. 대형 업체이니 개인정보를 어떻게 악용하지는 못할 거야 하면서도 등록할 때 가져가면 될 걸 왜 두고 왔나 싶어 다음 날 파쇄를 요청했고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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