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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Nov 05. 2023

딸꾹질

별다른 일이 없는데 갑자기 몸이 딸꾹거린다. 대개 숨을 잘못 삼킨 결과니까 그러겠거니 했는데, 이번 딸꾹질은 많이 수상하다.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도도 들쭉날쭉이라 무슨 랜덤박스를 몸 안에다 심어놓은 것 같다. 물을 수차례 들이켜도 나아지지 않자, 나는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가슴께를 죽어라 패는 것이다. 딸꾹질을 횡격막의 놀람이라 한다면 몸밖의 새로운 놀람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위협하면 온몸이 딸꾹질을 막기 위해 협업할 것이라는 정치적 고려도 있었다.


그래서 딸꾹, 퍽, 딸국, 퍽이 이어지던 와중, 드디어 몸의 대화를 알아들은 덕분인지


딸-꾹?


하고 변주를 주는 것이었다. 끝말의 톤을 올린 것이 하도 이상해서 몇 차례 더 두들겼는데, 이번에는 세상에나


딸꾹-!


하고 입에서 뭔가 튀어나오지 않겠는가. 무어라 묘사할 바가 못 돼서 이하 딸국체라 하겠다.


딸국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딸꾹거렸다. 딸꾹, 딸꾸욱, 따알꾸욱... 그래도 점점 약해지는 것이 물 밖의 물고기마냥 몸 밖에 있으면 제 소리를 내지 못하나 보다. 나는 얌전히 정적을 기다렸다. ㄸ...ㅏ... 소리를 낼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지친 기색으로 드디어 주위를 둘러본다. 약간의 공포 어린 표정이 썩 귀엽다.


왜 이리 딸꾹거리는 거야? 내가 뭐 잘못이라도 했어?


딸꾹체가 내 소리에 반응하더니,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한다. 쉽게 생각나지 않는지 발을 동동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닌다. 제자리에 돌아온 딸꾹체는 몇 가지 후보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부적절한 아침 식사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귀찮아서 설거지를 미루고 있었는데, 때문에 아침 식사에 쓸 숟가락을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오늘 아침은 포크로 대체하였는데, 그로써 한 입의 식사량이 줄어들고 차라리 그릇을 들어 마시는 행동을 자주 취했다. 이로써 몸이 놀라고 말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물 중독에 가까운 습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입이 심심할 때 물을 마시곤 하는데 이게 과해서 하루에 2L 생수통 하나로도 모자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은 유독 목이 말라 벌컥벌컥 들이켜는 일이 잦았다. 이로써 몸이 놀라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편, 불규칙한 딸꾹질은 오로지 본인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딸꾹질을 자주하지 않는 바람에 오랫동안 쉬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횡격막을 움직이려니 본인도 몸이 찌뿌둥하고 어색해서 박자를 잘못 맞췄다는 것이다. 평소에 리듬게임이라도 해두면 좋았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데 그것 또한 귀여운 면모 중 하나였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그쳤으면 그만이므로 나는 딸꾹체의 진입을 허가했다. 다만 주기적인 활동을 통해 예측 가능한 딸꾹질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고 딸꾹체도 이를 약정하였다. 다음 딸꾹질이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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