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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an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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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Oct 04. 2023

원본

"내가 진짜야!"


"아니야, 내가 진짜야!"


겉보기에 전혀 다르지 않은 둘이 핏대를 세우고 싸운다. 꽤나 단순한 싸움이라서 모든 문장이 [1인칭 주어 + 주격 조사 + "진짜" + 어미]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 것들은 무심한 듯 지나치치만 외지인인 나로서는 궁금함을 참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왜 그렇게 싸우시는 거예요?"


제3자의 등장에 잠깐 놀란 낌새이나 금방 전열을 가다듬고 목청을 높인다.


"얘가, 사실은 나인데, 아까부터 자꾸 자기가 진짜라잖아."


"무슨 소리야. 네가 나인데, 아까부터 네가 진짜라는 거잖아."


"진짜 너무한다. 누가 봐도 네가 나잖아!"


"너무하는 건 너지. 네가 나라는 걸 인정해!"


말장난에 정신이 아득해질 찰나 한쪽이 기어코 주먹을 꺼내든다.


"말로는 안 되겠네.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주겠어!"


그의 주먹은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하였고 두 객체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었다.


"으아악!"


"으아악!"


"이 새끼야, 뭐 하는 거야! 내 얼굴이 망가졌잖아!"


"너도 뭐하는 짓이야! 내 얼굴을 망가뜨렸잖아!"


이제는 아예 치고받고 싸운다. 그러나 어째 공격하는 것 이상으로, 추측건대 2배쯤 서로 고통스러워 한다. 결국 아픔을 이기지 못 하고 싸움을 멈춘다. 둘 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똑같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어쩜 이렇게 잔인한 일이... 나는 곧장 깨닫고 고개를 떨궜다. 나의 행동을 읽었는지 자문을 구해온다.


"당신,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있지?"


"네놈이 분명 이유를 알고 있을 거야."


나는 이 세계의 이세계인. 똑바로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그들과 똑 닮은 객체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이런 멍청이들..."


"이 자식들 때문에..."


"머리가 나쁜 것도 정도껏이지..."


온 광장이 똑같은 것들의 신음으로 가득 찬다. 자칭 원본 둘은 도리어 당황하는 처지가 됐다. 고통을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굳은 결심으로 그들 앞에 선다.


"당신들은... 복사되었어요."


"복사되었다고?"


"복사? 우리가?"


"예, 그것도... 얕게."


"얕게? 얕다고?"


"얕아? 얕은?"


아아 - 깨달음의 탄식은 이내 아악 - 한 서린 비명으로 변한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동일한 주소를 통해 다른 객체들에도 생중계되었으며, 자신들 의도 이상의 집적된 피해를 야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copy()를 쓰라고 누누히 이야기하였거늘... 객체도 사람도 펑펑 울고 말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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