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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19. 2024

세종시의 비교적 높은 출산율에 대한 생각

세종시는 2022년 합계출산율 1.12명으로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유일하게 1명을 웃돌았다. (물론 작년에 0.97명으로 깨짐) 반면 서울은 2022년 0.59명, 2023년 0.55명으로 처참한 기록을 보여줬다. 두 사실만 놓고 보면 출산율은 서울 및 수도권인지 여부와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2023년에 낸 보고서에서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인적자본 투자 때문에 출산이 지연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니까, 꼭 수도권이 문제라기보다는 인구가 한쪽에 몰린 상황이 이 사달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 출산율이 낮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세종 출산율이 높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 한다. 세종의 인구밀도는 2022년 기준 823명/km^2으로 15,551명/km^2인 서울의 5% 수준에 불과하긴 하다. 그러나 강원(91명), 충북(221명), 충남(264명) 등 세종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곳은 수두룩한데 유독 세종만 출산율이 높다. 혹자는 인구밀도와 출산율 사이의 역U자형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인구밀도가 너무 낮으면 인프라가 없고, 너무 높으면 경쟁이 많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최적 인구밀도가 있을 법하고 세종이 그나마 가까워보이는 것도 맞다. 살다보니 생각보다 있을 건 다 있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단단한 사실 이외의 요인,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요인을 짚어야 한다고 본다.


세종은 전무후무한 공무원들의 도시다. 서울, 경기 접근성이 좋았던 탓인지 과천도 이만큼 공무원들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국책연구기관들까지 내려와 있으니 공공기관 밀집도는 어느 도시보다도 높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크나큰 혜택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육아 관련 제도이다. 공무원들은 모성보호시간,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탄탄한 육아 제도의 보장을 받고 있고 이것을 계산적으로 이용해 실근무시간을 최소화하는 사람들도 숱하다. 이렇듯 세종시는 - 엄밀히 말하면 세종시에 사는 공무원들은 아이를 가지는 것이 이득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체감한다.


이렇게 출산과 육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높은 출산율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또래들이 당장 결혼하거나 출산하지는 않더라도, 가까운 직장 선배들이 아이를 갖고 휴직하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결혼 출산을 인생 계획에 집어넣고, 언제 휴직해서 언제 복직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복직을 늦추기 위해 아이를 더 갖게 되등등의 연쇄가 종종 일어난다. 공무원이 워낙 안정적이라서 상대를 구하기 어렵지 않다는 점도 한몫하겠지마는, 평생소득 차원에서 생각했을 때 민간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은 수입인데도 결혼 출산에 이른다는 것은 제도에서 비롯된 문화적 영향이 한몫한다고 본다.


저출산의 문화적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사실 SNS의 빽빽한 자기자랑들이 사람들을 좌절케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긴 하다. 이 정도도 달성하지 못 하면 연애 결혼 출산 등은 꿈도 꾸지 못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쉽게 공유된다. 최근 자산격차의 심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수많은 젊은 세대가 경제적으로 뒤처져 그 달성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기도 했고. 하지만 적어도 세종시에서는 가족을 삶의 큰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문화적 흐름을 반전시킬 수 없다면 결국 제도라도 파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갖 제도를 통해 아이 가지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감정으로 호소하기 어렵다면 시간과 돈이라도 주어야 한다. 자리 비우고 아이와 노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 갖고 싶은 마음이 전염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회사들이 이것을 용인해줄 만큼 부드럽고 온화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있는 휴가들도 제대로 쓰지 못 하는 판에 육아휴직은 무슨. 훗날 나라가 망하고 저출산의 귀책을 따질 때, 누군가는 꼭 손 들고 조직문화를 외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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