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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후생 Mar 22. 2020

프랑스 와인을 모으고 철학을 좋아한다는 그 남자 下

나는 저축하지 않아요




어느새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슬슬 모여들었다. 2차로 술집에 왔다. 화장품 병 같아 보이는 것이 사케다. 소주잔에 두 잔이면 끝난다. 평균 300엔 정도. 



켄 씨는 남자다운 기세로 안주를 마구마구 시켰다.




  "스고이!"


서서히 걱정됐다. 켄 씨 주머니 사정이. 사케를 10병 넘게 마셨다. 사케는 쌀의 원산지에 따라, 양조회사가 어디냐에 따라, 쌀 도정에 따라, 도수에 따라 맛이 다르다. 술의 단맛과 쓴맛과 특성이 게임 캐릭터 능력치처럼 상세히 나와 있었다. 가지 수가 다양하고 메뉴판이 복잡했다. 일본은 이런 맛이 있다. 뭐든 모으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게 하는 매력. 포켓몬스터 띠브띠브 씰이나 지역별 킷캣 같은. 그런 다양성이 술에도 있다. 선택지 앞에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탓에 남들 시키는 대로 먹기도 하고. 이름이랑 생김새에 끌리는 대로 고르기도 했다. 중간에 바쿠도 일을 끝내고 합세했다.




도부로쿠라 부르는 술. 막걸리랑 비슷하다. 이쪽이 알갱이가 더 씹힌다.




  켄 씨가 갑자기 나에게 장래에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교사가 되는 것이라 말했다. 역으로 켄 씨의 꿈을 물어봤다. 켄 씨는 자기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혼자서 와인을 공부한다. 켄 씨는 일이 끝나면 거실 소파에 앉아 대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와인 책을 읽는다. 켄 씨는 곧 있을 소믈리에 시험을 준비할 거라 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는 일 끝나고 가끔 혼자서 노래방에 가곤 한다고. 그는 분명 멋진 가게의 멋진 사장이 될 것 같다.


  만찬이 끝나고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두 명이 우산을 챙겨왔다. 한 우산에 세 명 한 우산에 두 명이 쏙 들어갔다. 머리만.




일요일은 내가 수박화채 요리사~♪




  만찬을 대접해준 켄 씨에게 정말 감사했다. 작게나마 보답하기 위해 수박을 사서 화채를 만들었다. 내가 수박에 사이다를 따르는 모습을 보고 셰어하우스 사람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건 아마 한국의 문화겠지. 나와 슈토는 거실 테이블에서. 토미키 씨는 작은 소파에서. 켄 씨와 바쿠는 큰 소파에서. 그릇을 손에 들고 화채를 먹었다. 식사에서 후식으로 이어지는 포식이었다.


  슈토는 내가 그릇에 화채를 떠주자마자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뒤적거렸다.


  "뭐 찾아요?"


  "쇼"


  "쇼?"


'뭔지 볼래?' 하는 듯한 제스처에 가까이 가니 그건 소금이었다.


  "수박에 소금을?"


  "에?"

  "한국인은 소금을 찍어 먹지 않는 거야?"


  "당연하죠. 소금이라니"


  "에 거짓말!"


  "거짓말 아니에요"

  "우린 그냥 먹어요"


프랑스 와인을 모으고 철학을 좋아한다는 그 남자. 자기 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그 남자. 나에게 꿈을 물어본 그 남자. 그의 장래를 응원한다.

























프랑스 와인을 모으고 철학을 좋아한다는 그 남자 下  나는 저축하지 않아요 20.03.21.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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