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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후생 Mar 20. 2020

프랑스 와인을 모으고 철학을 좋아한다는 그 남자

나는 저축하지 않아요





  셰어하우스 생활이 시작된 지 며칠 만에 켄이라는 새로운 사람이 입주했다. 나는 손윗사람을 누구 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형이라 부르는 게 편하다. 그런데 켄 씨는 특별히 더 형이라 부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의 성은 쿠노였다. 쿠노 켄. 일본인은 보통 성을 부른다. 그런데 켄 씨는 특이하게도 쿠노가 아닌 켄이라 불러 달라 했다. 그때 나는 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는 토미키 씨와 나의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 켄 씨가..."


  "켄 씨요? 누구 말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를 하던 중에 켄 씨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토미키 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뿔테 안경을 끼고 몸은 회색, 팔은 더 짙은 회색인 나그랑 긴팔 옷을 입은 그의 눈이 커졌다.


  "아, 쿠노 켄 씨요"


  "아~ 쿠노 씨 네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전부 그를 쿠노라고 부르는 듯했다. 나는 직감했다.


  '아싸다'


외톨이에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주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 그런 냄새가 났다. 그와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켄 씨는 식당에서 일한다. 식당의 장점은 밥을 준다는 것이란다.


  "요즘은 거의 살기 위해 먹어요"

  "음식점에서 일해도 먹는 즐거움이라는 게 없죠"


  "그래요? 가장 좋아하는 건 뭐예요?"


  "프랑스 와인"


  "오오 콜렉트? 코루레쿠숀(컬렉션)?"


  "도쿄는 아니고 시골집이 있어요"

  "지금은 돈이 없어서  조금씩 조금씩 사서 모아요"

  "그렇다고 돈을 저축하는 건 아니지만"


  "에? 왜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까"


  "와... 멋져요"


분명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삶은 아니다. 보통은 미래를 걱정해야 하니까. 병원비나, 노후 자금 같은 것. 나는 켄 씨에게 철학자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철학자라는 단어가 뭔지 몰랐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번역기"


  "아 응"


哲学者 (철학자)


  "테츠..카쿠샤 같네요 멋져요"


나는 엄지를 세우고 그를 치켜세웠다.


  "아 그래요 철학을 좋아해요"


나는 그와 공감대를 형성할까 싶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칸트? 니체? 헤겔? 하나만 걸려라.


  "토마베치 히데토"


  "???"

  "누구예요 그 사람?"


  "아마 모를 거예요"


나는 다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핸드폰의 힘을 빌려 찾아보니 뇌과학자인 것 같다.


  '돈을 안 모으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그는 특이했다. 그가 저축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번뜩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 의 '조르바'였다. 조르바는 도자기 만들던 사람이었다. 돌림판을 돌리면 진흙 덩어리가 항아리도 되고 접시도 되고 램프가 됐다. 그는 흙을 빚는 동안 자유로웠다. 어느 날 그는 돌림판을 돌리는데 손가락이 거치적거린다고 느꼈다. 그 순간 그는 손도끼를 들어 검지 손가락을 잘라내었다. 부자유스러운 감각 때문이었다.


  "다음 주 일요일에 시간 있어요?"


  "어 네"

  "딱히 일이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럼 그때 식당에 같이 갈래요?"


  "좋죠"


  나는 그가 일하는 식당에서 대접하겠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당일이 되자 켄 씨가 나 말고도 셰어하우스 사람들을 모으더니 다 같이 나가자고 했다. 아스카 씨, 다카츠카 씨, 쿠니타 빼고는 시간이 됐다. 바쿠는 일이 조금 늦게 끝난다고 '먼저 가 있으라' 했다.   


  "자 갈까"


우리는 킨시초 역 백화점으로 갔다. 전에 다나카 씨를 만났던 '파르코'다. 음식점만 있는 층에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켄 씨는 가게 하나를 지날 때마다 우릴 향해 물었다.


  "여기 어때요?"


  "좋은 것 같아요"


그런 식의 짧은 대화가 몇 군데서나 반복됐다.


  '음... 이것이 일본인의 의사결정 구조...'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 집단지성은 스테이크 가게로 결정했다.




내가 시키고 켄 씨가 사준 스테이크


세트 하나가 천 엔이 넘었다. 맥주도 한 잔씩 사주었다. 나는 돈이 풍족하지 않아서 켄 씨에게 신세지는 것이 상당히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이런 식사를 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자 음식을 먹고 나서였다. 내가 무쇠 팬 위에 양파껍질 남긴 것을 보고 토미키 씨가 말했다.


  "아 저거 껍질이었구나"

  "나는 뭔지도 모르고 먹어버렸어"


일동이 한바탕 웃었다. 나는 웃음 포인트를 놓칠세라 말했다.


  "토미키 씨 내 거 먹을래요?"


  "아니 더는 괜찮아"


또 한바탕 웃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몇 번을 얘기해도 부족했다. 슬슬 일어서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갔다. 켄 씨가 나에게 일본술을 마셔본 적 있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치면 소주 같은 맑은 술이다.


  "없어요"


  그럼 마시러 가자.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여러 주점이 보였다. 어떤 이상한 아저씨 둘은 호객을 하고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에로'한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역시 대낮부터 성진국?'


  켄 씨는 주점 유리 미닫이 안쪽을 보고 와서 말했다. 2시부터 여니까 흩어졌다가 시간 되면 여기 앞에서 보자. 각자 백화점 안을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딱히 구경하고 싶은 게 없는데. 일본인들은 아이쇼핑을 좋아하나? 나는 혼자 전자제품 코너를 보러 갔다. 피부에 문지르는 미용 기계가 있었다. 신기해서 보는데 갑자기 점원이 다가와서 친절히도 설명해주었다.


  "느낌이 약한데요?"


  "그러세요? 더 강한 것을 소개해드릴게요"


그녀는 옆에 면도기처럼 생긴 도구를 써보라고 했다.


  "여기"


그녀는 최강 모드로 바꾸더니 내 살에 도구를 댔다.


  "악!"


  전기고문! 나는 놀라서 손을 떼버렸다. 나는 어쨌든 감사하다고 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 층에는 무려 천만 원 정도 하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범블비가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멋지게 변신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와인을 모으고 철학을 좋아한다는 그 남자」 나는 저축하지 않아요  20.03.20.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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