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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후생 Mar 20. 2020

킨시초 셰어하우스 친구들

잘 부탁해




  내가 입주한 셰어하우스는 방이 세 개였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샤워실이 있고, 우측에 가장 비싼 방이 있었다. 정원은 3명이었다. 비싸서 그런지 한 명만 있었다. 1인실인 셈. 샤워실과 방을 지나 문을 열면 거실이 나왔다. 열자마자 보이는 거실 끝에 방 두 개가 더 있었다. 오른쪽 방은 가장 싼 방이다. 2층 침대가 두 개고 나까지 4명이 살았다. 왼쪽 방은 정원이 3명인데 두 명이 지냈다. 


  나랑 같은 4인실을 쓰는 사람은 바쿠, 쿠니타, 슈토였다. 다들 나보다 어렸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기 때문에 이름 뒤에 씨(さん[상])를 붙였다.


  두 번째 방에는 아스카 씨, 토미키 씨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 연상이었다. 


  가장 비싼 첫 번째 방에는 다카츠카 씨가 있었다. 중년은 아니었지만 나이 차이가 났다.


  초기에 적응을 도와준 것은 바쿠였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 모두 한국인이다. 태국에서 태어나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랐다. 일본에는 워홀 비자로 왔다. 바쿠는 영어, 일본어, 태국어, 한국어까지 4개국어를 할 줄 알았다. 



방 구조


  나는 방 안쪽 이층 침대 1층을 썼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사이사이 실크 커튼이 쳐져 있었다. 매트리스는 본인이 마련해야 했다. 바쿠가 알려준 곳에서 싸게 샀다. 혼자 가져오기 무거울 거라며 상점까지 같이 가주었다.


  다음 월세를 아껴둬야 해서 생활비로 쓸 돈이 얼마 없었다. 바쿠도 나처럼 돈을 아꼈다. 바쿠는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통장에 삼백만 원이 넘게 있다고 했다. 그는 워홀 1년 장기 목표로 천만 원을 벌고 싶어 했다. 어딜 가면 달걀이 싸고 어딜 가면 세제가 싸다면서 집 주변 요소요소를 소개해줬다.


  저녁이 되면 바쿠와 식료품점 '라이프(ライフ)'에 가기도 했다. 도시락 매대 앞에 죽치고 있으면 직원이 와서 제품에 할인 스티커를 붙였다. 10%, 20%, 30% 그중에서도 반값 할인이 '럭키'였다. 바쿠는 이런 식으로 저녁을 때운다고 했다. 돈을 모으기엔 최적의 방법이다. 나는 그마저도 돈이 충분치 않았다. 몇 번 만에, 바쿠를 따라 라이프 가는 것은 그만두었다. 종종 밥이 질릴 때만 199엔짜리 콘푸로스트와 99엔짜리 무지방 우유를 샀다. 지방이 없다는 이 우유는 투명한 흰 물감 같았다.


  다른 셰어생인 쿠니타는 자기 말로는 귀족 집안이라고 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일까?


  '일본에도 귀족이 있나?'


  알 수 없지만 그는 평일에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 호텔 프런트 알바를 한다.


  슈토는 아이슬란드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냉장고에 정체 모를 맵고 빨간 소스를 넣어두고 밥반찬으로 먹는다.


  아스카 씨는 여기 사는 셰어생이라는 것도 몰랐다. 청소하신다는 분이 아스카 씨였다. 갑자기 여자분이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아스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유명한 어떤 분이 떠올랐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토미키 씨는 굉장히 털털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후쿠오카 출신이라고 했다. 지금은 도쿄에 와서 돈을 벌고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몇백만 엔을 빠칭코로 날렸다고 한다. 덕분에 돈을 많이 주는 육체노동을 하고 있단다. 애니메이션에 박학다식해서 같이 TV를 볼 때면 항상 설명해주었다. 가끔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다고 툭툭 던지듯 얘기한다. 짠한 형이다.


  다카츠카 씨는 말수가 적었다. 그는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거실에서 자주 볼 수 없었지만 가끔 새벽에 혼자 나와 있었다. 그럴 때면 으레 예능을 보면서 삿포로를 마셨다.



























「킨시초 셰어하우스 친구들」 잘 부탁해  20.03.19.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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