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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후생 Jun 16. 2020

떠나온 새 증후군

나는 대견하다. 이제는 다 크고도 너무 자란 나머지 화장실 배수구가 막히면 고무장갑부터 낀다. 거름망에 겹겹이 엉키고 쌓여 하나의 면처럼 되어버린 엄청난 양의 회색 머리카락을 떼어내면서 나는 조금의 역함도 느끼지 않았다. 베이킹 소다를 흩뿌리고 식초를 쳐서 청소를 마무리한다.

얼마 전 아파트 복도에서 바퀴벌레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기겁하기보다 다이소에 가서  문 틈새 막는 판을 사 온다. 새로 이사 온 집에 가구들은 모두 중고거래
앱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흥정해서 샀다. 무료로 들였으나 맛이 가버린 세탁기는 전동 드라이버로 분해해서 살펴봤다. 중고 에어컨 냉각핀을 청소하기 위해 나사를 풀고 본체를 연다. 마스크를 쓰고 세정제를 뿌린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동안은 유독할지 몰라 친구네 집에서 새벽까지 뻐기다 집에 들어간다.


이제는 이런 집안일도 간단하다. 그럴 때면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해준다.


 은근 멋있는데?

 은근  잘하는데?


그러다 가끔 너무 대견해져서 마음이 쓸쓸해진다. 릴 적엔 이런 일은 혼자서 절대 못할  같았는데. 이상한 상에 빠진다. 어린 시절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가끔 궁금하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더 필요 없어서? 이것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끼셨을 빈 둥지 증후군의 반대말이라도 필요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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