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일차.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다행히도 튀니지 에어는 비행 출발시간을 변경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유롭게 오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편을 탈 수 있었다. 오전에 우리는 한동안 비울 집 정리를 하고, 짐을 다시 한번 챙기고,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깨끗하게 처리했다.
튀니지에어는 기내수하물 인당 8kg, 기내식 캐리어 1개와 적당히 작은 크기의 가방 1개를 인정해준다. 사실 이것도 아내가 확인해서 얻은 정보였다. 우리가 받은 여행 안내서에는 인당 5kg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가방 무게를 빼면 3.5kg 정도. 아내는 말도 안 된다면서 곧바로 여행사 상담 전화를 찾았고, 인당 8kg임을 확인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배운 교훈은, 쓰여져 있다 하더라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위탁수하물을 추가로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짐 싸면서 꽤나 고생을 했다. 몇 번 탔었던 볼로티 항공이 7kg이었는지 8kg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여튼 8kg은 다소 애매한 무게임이 분명하다. 캐리어 가방 무게를 빼면 더 줄어드는데… 그래서 나와 아내가 각자 챙긴 숄더백에도 최대한 무게를 옮겨 담았다.
스트라스부르에는 엔자임 공항이 있다. 공항과 시내 사이에 거리가 좀 되는데, TER 기차를 타면 금방이다. 대충 10분이면 공항역에 도착한다. 참고로 TER 기차는 무료로 탔다. 방법은, 시내에 있는 CTS Agence에 가면 있는 기계에 교통카드를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한 달간 공항을 왔다 갔다 하는 TER 기차를 무료로 탈 수 있다.
오랜만에 온 엔자임 공항은 더웠다.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창구가 열리길 기다렸다. 비행기 출발 3시간 전부터 열린다더니, 정말 칼 같이 열렸다. (칼 같이 여는 건 프랑스에서는 드문 일이다. 물론 닫는 건 칼같이 한다.) 창구에 가서 서류와 여권을 제시하니 우리가 탈 비행기표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가방 무게도 재고, 위탁수하물 없고. 우리는 미리 탑승층으로 이동해서 거기서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이동했다. 물품 검사를 마치고 들어갔는데, 전에 이용하던 곳과는 다른 탑승층이었다. 알고 보니 비 유럽연합 국가를 갈 때는 따로 출국 검사소를 들렀다 가야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권과 체류증을 제시했고, 검사소의 직원은 우리에게 별다른 내용을 묻진 않았다.
엔자임 공항은 작아서 이렇다할 면세점이 없다. 다만 우리는 무게랑 부피 때문에 충분히 챙겨오지 못했던 선크림과 로션을 사기 위해 작은 면세점에 갔다. 그리고 선크림은 못 사고 햇볕에 탄 피부를 진정시킬 로션을 하나 샀다. 코달리 Caudalie에서 나온 Après soleil 제품인데, 할인가도 비싸긴 했지만, 이놈이 나중에 튀니지에서 제값 이상으로 톡톡히 제 몫을 다했다.
뭐 당연하겠지만 비행기는 1시간가량 지연됐다. 유럽에서 1시간은 지연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라 나와 아내는 차분히 기다렸다가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륙하자마자 기내식이 제공됐다는 것! 우리가 받은 여행 서류에는 기내식의 ‘기’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기대도 안 했던 일이라 그런지 너무 고맙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튀니지는 프랑스보다 1시간 늦어서, 우리는 도착했을 때 1시간 득을 봤다. 아직 해가 다 지기 전 도착한 튀니스 공항 대합실은 스트라스부르 공항보다 훨씬 더웠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 줄 여행사 직원을 빨리 만날 수 있었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작은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타고 있었다. 버스는 곧바로 출발해 함마메트 Hammamet로 향했다. 함마메트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지중해에 맞닿은 도시이다. 휴양지로서 역사가 오래되었고, 북-함마메트가 전통적으로 오래된 곳이고,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남-함마메트는 비교적 새로 만들어진 곳이다. 우리는 남-함마메트에 있는 호텔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우리는 2시간을 달려 남-함마메트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묵을 플로라 파크 Flora park 호텔은 시내 입구에서 가까웠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관광객들로 가득 찬 그 버스에서 나와 아내 둘만 내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다 함께 여행하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Voyamar가 중개하는 여행사들이 엄청 많았다. 아마 이곳 저곳 호텔 옮겨다니며 내렸을 것이다.
호텔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에 도착을 했는데도 리셉션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기본적인 사항을 전달받고 우리는 1층 방을 배정받았다. 놀랍게도 늦게 도착한 손님을 위해 식당이 저녁식사를 챙겨뒀다고 해서, 체크인이 끝나면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튀니지의 시티 택스 City tax는 저렴했다. 1일에 3 튀니지 디나르도 안했던 것 같다. 3 튀니지 디나르면 1유로 약간 안 되는 돈이다.
호텔 직원이 방을 안내해줬다. 짐까지 직접 챙겨줬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2 튀니지 디나르의 팁을 줬다. 방은 예상보다 컸으나 꿉꿉하고 하수구 냄새가 났으며, 생각만큼 깨끗하게 정돈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청소를 하고 시간이 좀 지났다고 해야 할까? 청소는 했는데 결과물이 아주 깨끗하지는 않은. 튀니지 여행오기 전에, 한국 여행 유튜버들이 튀니지 여행한 것을 찾아봤는데, 거기서 나온 의견들이 떠올랐다. 냄새, 꿉꿉함, 여기서의 4성은 실제로 3성급이다 뭐 이런 의견들.
그리고 슬슬 짐을 풀기 전 방을 둘러보던 중,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 위로 남자 손가락 두 개는 족히 합쳐도 될 만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벽에 붙어 있었다. 유럽 살면서 어지간한 벌레는 잡는 데 익숙해져 있던 나조차도 순간 경직이 될 정도의 크기였다! 논의할 것도 없이, 이건 내가 못 잡겠다, 리셉션에서 직원을 부르자고 방 전화기를 들었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지켜보고, 아내가 뛰어가서 직원을 부르기로 했다.
바퀴벌레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조금의 미동도 없이 벽에 붙어 있었다. 둘만의 초조한 대치가 몇 분이 흘렀을까, 그 놈이 먼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가는 문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직원과 아내가 들어왔다. 직원은 눈앞에 놓인 그 놈을 곧바로 발견했고, 바퀴벌레는 위기를 직감했는지 문 옆 화장실로 냅다 빠르게 도망쳤으나 직원 분은 아주 능숙하게 들고 있던 빗자루로 순식간에 놈을 죽여 쓰레받기에 담았다.
사건이 일단락이 되자 비로소 직원 얼굴이 보였다. 아까 팁을 준 그 직원이었다. 친절하게도 그 직원은 방을 쭉 둘러보며 벌레가 더 있는지 확인을 해 줬다. 침대와 소파 밑, 커튼, 창문, 벽에 걸린 액자(액자 뒤에 숨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등등. 그 후 직원은 아마 1층이라 밖에서 들어왔을 거고, 더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 말해줬다.
물론 나와 아내는 그 말을 믿지는 못했다. 직원이 간 이후에도 우리는 방을 돌아다니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확인을 했다. 그리고 짐은 풀지 않고, 다음 날 방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식당으로 가 호텔이 마련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간단한 샐러드와 치즈, 햄, 빵, 물 등이 있었다. 조식 부페를 위해 미리 준비해둔 것의 일부를 따로 빼 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우리는 피곤했기에 얼른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에어컨을 켜고 나갔음에도 여전히 시트와 얇은 이불, 베게는 꿉꿉했다. 누워서도 과연 방금 겪은 일은 이 여행의 불행을 암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벼운 액땜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온갖 잡생각이 들었으나, 피곤해서인지 잠은 일찍 찾아왔다. 그렇게 첫날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