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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Nov 05. 2020

비극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삶과 죽음, 그 얇은 경계 사이에서


할로윈을 앞두고 주어진 지난 일주일의 방학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었다. 최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숫자가 천 명 이상으로 계속 급증하자, 아일랜드 정부에서는 가장 제재가 강한 레벨 5로 단계를 강화했고,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모두 5km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조용한 할로윈을 보낼 것을 권고했다.


일주일 전 우리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이번 할로윈은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노약자들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의 방문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올해는 아이들이 초콜릿을 얻으러 집집마다 돌아다니지 않도록 배려하고, 그 대신 서로의 집을 밖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멋지게 꾸며보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내 친구 티아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매년 입을 할로윈 드레스를 이미 정해놨대."

불과 여름까지만 해도 이런 얘기를 떠들며 자신은 무슨 코스튬으로 꾸밀까 고민을 하던 딸아이도 올해는 그런 마음을 접아야 했다.

1년 동안 먹어도 남을 만큼의 초콜릿과 사탕을 수확하기 위해 매년 이 날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이었지만, 올 한 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이미 많은 변화를 경험했기에 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소박한 평화를 깨트린 것은 갑자기 핸드폰에 뜬 브레이킹 뉴스였다. 더블린의 어느 가정집에서 한 엄마와 고작 열한 살, 여섯 살의 남매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참담한 소식이었다. 며칠 동안 그 집의 가족들이 왕래도 없이 너무 조용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아일랜드는 한국에 비해 워낙 인구도 적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시시각각 알려주는 포털사이트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아이들까지 희생된 이런 비극적인 뉴스는 제법 큰 이슈였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더 충격적인 소식이 학부모들의 그룹 채팅방에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상을 떠난 두 남매가 나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누나는 6학년, 동생은 1학년. 둘 다 올해 초에 전학을 온 새로운 학생이었고, 5학년인 나의 딸과 올해 6월에 졸업을 한 아들과는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고 가며 학교 운동장과 교실에서 몇 번쯤은 스쳤을 터였다.


사건 당일 저녁에는 희생자들의 사인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연관된 워낙 비극적이고 민감한 사안인지라, 그들이 각자의 침실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과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던 남편이자 아버지를 찾아 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뉴스에서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셜 네트워크에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하지 않는 내용이나 억측을 올리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가 기사 말미에 고지되어 있었다.


그 아이들이 'Our children'이었다는 소식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엄마와 아빠들은 그 밤 내내 슬픔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아들보다 한 살 어린 6학년 친구는 자신의 반 아이에게 그런 사실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했다. 시간이 흐르면 학교 아이 대부분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든 알게 될 상황인지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나 조차도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꽤 긴 내용의 편지에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스태프들도 우리 학교의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굉장히 비통해하고 있으며, 집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알려주고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매우 유용하고도 상세한 정보가 정리되어 있었다.


1. NEPS(National Education Psychological Service), 즉 공교육에서 지원하는 심리 서비스 프로그램에 따라 심리학자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교직원들을 미리 만나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해줄 것이다.

2. 그전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연령에 맞는 방식으로 이 사건에 대해 먼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굳이 완곡한 표현으로 돌려 말하지 말고, 되도록 솔직하고 사실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아이들이 미디어나 소셜 네트워크에 떠도는 왜곡된 정보에 의존하지 않도록,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부모'가 정확한 정보를 먼저 전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가까운 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다. 이에 따라 나타나는 아이들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알아둬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이 사건에 대해 드러내는 생각과 말, 행동, 감정 변화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오히려 그것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나 운동, 편지 등의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라. 희생자들이 운이 없거나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혹시나 그들과 알고 지낸 아이들이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살피는 작업도 필요하다.


명료하게 정리된 메일 덕분에 아이들보다 부모인 나부터 죽은 이들에 대한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혹여 내 생각이나 말 한마디를 더 보태어서 아이에게 잘못된 이미지나 정보가 전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하고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이전까지는 정색하고 해 본 적이 없는 노력과 작업이었다.

한국의 포털사이트에 매일 올라오는 수많은 뉴스들 중에는 끔찍한 살인 사건,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 등이 적지 않다. 아이들이 너무나 쉽게 자극적인 뉴스 제목들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버젓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그것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너무 끔찍한 소식들은 그저 쉬쉬 하며 모른 척하거나, 알아서 걸러내겠지, 하는 마음으로 안일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가끔씩 아들 녀석이 유튜브에 올라온 잘못된 정보를 마치 사실처럼 식탁 위에서 나열하면, '그런 것들 너무 믿지 마' '그럴 시간에 책을 읽어' 하면서 핀잔을 준 적도 많았다. 미디어가 가진 위험요소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걸러야 할지 이제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때가 온 것 같았다.


 

다음날이 되자, 더블린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추가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동네였고, 몇 년 전 인도에서 아일랜드로 건너온 이 가족은 올해 1월에 지금의 그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우리 학교로 2월에 전학을 왔지만, 코로나 때문에 다니지 못하다가 학교가 다시 문을  연 9월부터 새 학년을 시작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목을 졸려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누군가가 집안의 수돗물을 틀어놓아서 발견했을 때는 온 집안 가득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사건의 증거들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뉴스에는 비통한 마음에 촛불을 들고 아이들의 집 근처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을 인터뷰한 동영상이 링크되어 있었다. 예년 같으면 유령 분장을 한 아이들이 사탕바구니를 들고 즐겁게 뛰어다녔을 더블린의 한 작은 마을이 슬픔과 애환에 잠겨 있었다.


할로윈으로 인해 주어졌던 1주일의 방학이 끝나고 다시 교실에 모인 아이들과 선생님은 지난 휴일 동안 같은 학교의 친구들에게 일어난 슬픈 사건에 대해 나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수업 중 오고 간 이야기들을 상세하게 정리하여 부모들에게 공유해 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 이미 부모로부터 상세한 소식을 전해 들은 학생 중 몇몇은 뉴스에서 언급된 'choke' and 'strangled'(목을 조르다, 질식시키다)와 같은 단어들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였다. 분명 선생님 입장에서도 무척 난감하고 힘든 대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되도록 정직하게 알고 있는 모든 사안을 얘기해주었고,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낸 편지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이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슬픔, 충격, 두려움, 분노를 비롯해 무감각과 부정, 침묵까지도 말이다. 슬픔에도 나름 단계가 있는데, 연령과 상태에 따라 그것을 드러내는 시기와 양상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울거나 화를 내며 격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만, 누군가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회피하거나 억누르고 감추기도 한다.

저마다 다르게 일상 속에 파고든 충격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여러 징후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을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실제로 아들 녀석의 친구 중 한 명은 죽은 반 친구를 걱정하느라 며칠 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몽을 꾸기도 해서 부모를 걱정하게 했다.

학교에서는 원하는 아이들에 한해서 희생자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그림이나 시, 편지 등으로 표현하게 하고 학교 마당의 커다란 나무 앞에 그것들을 모아두었다. 학부모들도 하나둘씩 꽃다발을 가져와 그 옆에 두고 며칠 내내 한마음으로 그들을 추모하였다.

아이들을 위한 선생님들의 체계적이고도 섬세한 배려에 나는 무척 감동을 받았다. 돌아보면, 지금껏 살면서 나의 친구나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요동치곤 했던가. 하지만 나에게도, 함께 슬픔을 겪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그것을 잘 끄집어내어 어루만져주는 시간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다른 세상, 저 너머의 일처럼 애써 흘려보내기도 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조용히 묻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나조차 몰랐던 고통과 아픔들이 문득문득 찾아와 당황시키던 기억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오늘 죽은 사람이 어제까지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던 사람이라는 진실은 달라지지 않는데, 왜 '죽은'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여기는 걸까. 함께였던 이들의 존재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 그리고 죽은 후에도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선의 예우를 갖춰 '안녕'을 고하고, 제대로 이별하는 작업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아이들의 학교 근처에는 오래된 작은 성당 하나가 있는데, 성당의 뒷마당에는 수많은 무덤들이 놓여 있다. 처음에는 주택가 인근에 그런 무덤들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트램을 타고 갈 때나 걸어서 그 곁을 오고 갈 때마다 보이는 숱한 무덤과 비석들이 아무렇지 않다. 삶과 죽음이 그저 한 찰나이듯, 둘이 우리의 세상 속에 섞여 있는 모습 같아서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삶과 죽음의 공존'은 할로윈의 진짜 의미이기도 하다. 할로윈의 아주 오랜 근원을 따라가 보면 2000년 전부터 아일랜드에 살고 있었던 고대 켈트족들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때는 '할로윈'이라는 이름이 아닌 'Samhain 축제'라 불리었던 이 행사는 켈트족들이 따르던 '드루이드'라는 종교의 제사와도 같았다.

당시 1년을 10개월로 여겼던 켈트족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에 추수한 농작물을 차려놓고 성직자 드루이드의 인도에 따라 죽은 이들의 영혼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새해 전날 밤은, 인간들이 살아있는 현실의 세계와 죽은 이들이 존재하는 죽음의 세계 사이에 놓인 경계가 가장 얇아지는 시기이다. 그들은 그 경계가 가장 투명해졌을 때 죽은 영혼들이 잠시 인간 세상에 들를 수 있다고 믿었다. 

켈트족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신의 곁을 떠난 가족이나 이웃들을 추모하고 새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저마다 동물의 가죽과 뼈로 위장을 하였다. 행여나 죽은 영혼들 사이로 따라온 악령들이 자신들을 악령으로 착각하여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할로윈의 귀신 분장의 기원 역시 이러한 풍습에서 기인되었을 것이다.



며칠 전 한국에서도 한 연예인이 그녀의 엄마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맑은 에너지에 정감이 가던 그녀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기 때문에 꽤 마음이 얼얼했다. 얼마 전까지도 나를 웃게 했고, 지금도 동영상 속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그녀에게 무슨 아픔이 있었던 걸까, 인간적으로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그냥 핸드폰을 놓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얼마 전까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현실에 존재했던 사람이었고, 그녀를 좋아했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살다 보면, 내 곁을 먼저 떠난 가족과 친구, 이웃처럼 그녀 또한 이따금씩 삶과 죽음의 얇은 경계를 넘어 우리의 마음 곁에 오고 갈 것이다. 더 이상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우리의 아이들'도 아일랜드에서 보냈던 할로윈을 추억할 때마다 우리 가족의 기억 속으로 찾아올 것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다시 떠올릴 때, 떠난 이들도 남은 우리도 너무 아프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예의를 갖춰 그들을 추모하고 최선을 다해 이별하는 것이 우리의 할 몫이다.


이곳의 삶도, 저곳의 죽음도 모두 건강하고 안녕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할로윈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와 내용이 궁금하다면 예전의 글을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sumkong/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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