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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Mar 20. 2021

우리 속에 스미던 그 햇살과 물기

언젠가 너희들이 <미나리>를 꼭 보았으면 해


'미나리'가 무엇인지 아냐고 물어봤을 때 섬이와 콩이 너희 둘 다 고개를 갸웃하며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더랬지. 맞아, 생각해보니 너희는 미나리를 제대로 알고 먹어본 적이 없을 거야. 아일랜드에서 지냈던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미나리를 먹지 못했고, 한국에 있을 때는 너희가 너무 어려서 아마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거야.


아쉽게도 아일랜드에서는 미나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 섬나라인데도 해산물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아서 한국에서처럼 푸짐하게 해물탕 같은 것을 보글보글 끓여먹을 수도 없었고, 언젠가 아빠가 시내 중국 마켓에서 꽃게랑 매우 비슷한 블루크랩을 구해온 날에 엄마는 신이 나서 구할 수 있는 온갖 야채와 양념을 넣어 꽃게탕을 끓였더랬지. 하지만 국물을 떠먹으면서도 뭔가 아쉬워서 입맛을 쩝쩝 다셨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래, 미나리. 묘한 향이 맴도는 미나리 한 줌이 들어갔더라면, 한국에서 우리 엄마가 해주던 그 맛에 더 닿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내내 남았더랬지.


미나리라는 채소가 그렇거든. 굳이 음식에 넣지 않고도 요리할 수 있지만, 미나리가 들어간 음식을 한 번이라도 먹어봤다면 그 차이를 모를 수는 없어. 독보적인 그 향과 맛은 어떤 음식이든 자신의 영역 안에 넣어버리는 강한 힘이 있다고 해야 할까.

아 맞다. 몇 주 전 우리 가족이 목포로 여행을 갔을 때 생전 처음 알탕을 먹어본 너희는 너무 맛있다며 밥상을 두드렸었지. 그 알탕에도 사실 미나리가 들어가 있었단다. 미나리 덕분에 더 향긋한 맛이 나던 국물을 연신 떠먹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너희들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갑자기 엄마가 왜 미나리 타령일까 궁금하지.

한국에서 돌아온 지 어느새 석 달이 지났어. 춘삼월 봄기운을 따라 너희가 드디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엄마와 아빠가 제일 먼저 무엇을 했는지 아니? 너희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이른 아침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단다. 너무나 그립고 고팠던 한국의 극장. 5년 만에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처음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미나리>였어.


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대강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내 마음을 건드릴지는 솔직히 예측할 수 없었단다. 오히려 너무 기대하면 실망도 클까 봐 마음을 편히 내려놓았지.

하지만 스크린에 불이 들어온 후 하늘의 여백 사이로 초록 이파리들이 채워지고 그 틈을 걷고 뛰는 남매가 화면에 나타나자 내 심장은 이미 콩닥콩닥 요동치고 있더라. 불과 얼마전까지 우리가 밟고있던 아일랜드의 푹신한 흙과 잔디가 떠올라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어. 새파란 하늘을 등에 지고 그 아래를 뛰어다니던 너희들의 모습이 내내 겹쳐지곤 했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원하는 아빠의 꿈을 따라 미국의 '아칸소'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온 앤과 데이비드 남매.


살다 보면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때가 있어. 어른이건 어린이건 삶의 자리가 바뀐다는 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 가족은 모두 경험했잖아. 그 시간을 잘 보내고 돌아와 다시 새로운 환경에 발을 디디려 하는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우린 참 큰 복을 받았던 것 같아.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니? 그들 중에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서 땅 속 깊이 강건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아이리쉬들도 있었고, 이름도 낯선 먼 나라에서 아일랜드로 날아와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애를 쓰는 이민자들도 있었지. 잠시 스쳐 지나듯 아일랜드를 돌아보고 떠나는 여행객들도 많았는가 하면 이민자도 아니고 여행객도 아니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그곳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와 같은 유학생 가족들도 있었어.

우리는 마치 연못 위에 내려앉은 수초 같았어.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상태지만 크고 작은 파장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려고 작은 뿌리로 애써 물기를 부여잡던 작은 물풀들 말이야.

 

그 아슬아슬한 경계의 삶을 조금이라도 경험했기 때문일까. 나는 영화 속의 가족들을 바라볼 때마다 무언지 모를 걱정에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어. 데이빗의 컨테이터 집에 폭풍이 몰아치고 정전이 되고 집 안 곳곳에 물이 뚝뚝 떨어질 때면 아일랜드에서 우리가 숱하게 맞아왔던 비와 콩이를 날아가게 했던 억센 바람과 그 폭풍에 맥없이 무너지던 뒷마당의 울타리가 떠오르기도 했지.


무엇보다도 영화 속 그 햇살을 잊을 수가 없어. 살랑거리는 바람에 춤을 추는 푸른 이파리들 사이로, 엄마인 모니카의 싱그런 미소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아빠의 이마와 나란히 그네를 타는 앤과 데이빗의 작은 어깨 위로 반짝반짝 햇살이 내려앉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환한 빛보다 그 아래로 드리우는 그늘에 더 눈이 가더라.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싶은 이방인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알고 있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과 행복 사이를 오가는 그 아찔한 햇살이 때로는 얼마나 따사롭게 그들을 감싸주고 때로는 얼마나 따갑게 목덜미를 쪼아대는지 내 피부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지.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겪고 나서 나중에 돌아보면 그 결과가 바뀌기도 하고, 전화위복(轉禍爲福), 고진감래(苦盡甘來)처럼 힘들었던 일들이 훗날 좋은 열매를 맺기도 한다는 위안의 말들도 있지만, 사실 그 순간을 사는 동안에는 도무지 어떻게 삶이 이어지고 마무리될지 알 수가 없단다. 그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삶에 놓여진 데이빗의 가족도, 그것을 스크린 밖에서 지켜보는 나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


데이빗의 외할머니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개울을 찾아 그 옆에 미나리를 잔뜩 심었다.


언젠가 섬이에게 얘기해준 적이 있을 거야. 너의 진짜 이름에는 숲과 물과 지혜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아빠와 함께 그 이름을 지을 때 우리는 시냇가에 심겨진 싱그런 나무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단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은 가지와 잎들은 햇살과 바람 속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더라도 뿌리는 맑은 물기에 닿아 있어야 살 수 있는 식물들처럼, 삶이 메말라간다고 느낄 때면 나 역시도 본능적으로 물기어린 누군가의 곁을 찾게 되더라. 타지에서의 삶에 지쳐 서서히 삶의 윤기를 잃어가고 있는 데이빗의 엄마 아빠에게 찾아와준 할머니가 바로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


심한 가뭄 때문에 더블린의 잔디과 나무들이 누렇게 변해가던 2018년 여름을 기억하니? 그해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에 찾아왔었지. 엄마, 아빠의 오랜 친구들부터 외할머니와 이모, 너희들의 사촌형이자 오빠까지. 조금씩 고개를 드는 향수병이 나를 지치게 하던 그 시기에 고마운 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촉촉한 물기를 전해주고 갔었어.

그중에서도 너희 외할머니는 데이빗과 앤의 할머니처럼 고춧가루와 멸치, 오징어 젓갈을 잔뜩 싸맨 보따리와 손수 뜨개질한 옷들을 가져와서는 내내 우리를 먹이고 입혀주셨지. 발목에 금이 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아프다는 내색 한 번 안 하시던 내 엄마가 영화 속 모니카의 엄마와 자꾸만 겹쳐져서 어두운 극장 안에서 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연신 훔쳐댔어.


<미나리>를 보면서 그런 은근한 생명력과 지혜를 지닌 존재들이 떠올랐어. 풀밭을 적시는 이슬 같고, 채소 위에 내리는 가랑비 같은 그런 사람들. 늘 씩씩해 보이셨던 나의 엄마와 작고 연약했던 할머니도 그런 분이셨단다. 그리고 한없이 여린 이름을 가진 너희들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도를 늘 드리고 있지.


마냥 아프고 슬프지만은 않은 담담하고 자전적인 영화인데도 정작 나는 이러저런 생각과 감정들이 얽혀서 울고 웃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영화는 끝나가고 있었어.

‘Rain Song'이라는 노래와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 깨달았어. 묵직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든든한 닻이 되어 영화를 보는 내 속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이 영화는 눈과 귀와 마음을 활짝 열수록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학교에 가 있을 너희들 생각이 아주 많이 났어. 다시 또 시작된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첫 학교에서 너희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한 번쯤 낯선 곳에서 그 여린 뿌리를 내려봤으니, 이번에는 좀 더 수월하려나, 싶다가도 또다시 햇살 아래의 그늘을 보며 맘을 졸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지. 나에게도 <미나리>의 음악과 같은 그런 든든한 닻이 필요한 것 같아.


너희들에게 <미나리>라는 영화 얘기를 시작한 이유는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야.

이다음에 어른이 된 후에, 너희가 기억하는 유년은 무슨 장르이고 어떤 이야기일까. 그리고 그 안의 엄마, 아빠는 어떤 인물로 그려질까. 너희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의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와 손짓 하나하나가 어떤 모습, 어떤 의미였을지, 언젠가는 꼭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저 순간순간을 열심히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나중에 너희들에게  어떤 변화와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지 아직은  수가 없겠지. 하지만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려야 하는 때가 다시 찾아올거야. 아무리 더듬어봐도 메마른 흙더미만 손에 잡히는  같고, 촉촉한 물기와 반가운 단비가 한없이 그리워질 , 나뭇가지를 들고 수맥을 찾기 위해 애썼던 그들처럼, 너희도  영화를 찾아봤으면 .  

그리고 시냇가에 잘 자리를 잡은 미나리처럼 너만의 향기를 품고 끈질기게 살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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