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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Jul 02. 2023

초보운전자가 터득한 육아 개똥철학

우리의 건강한 독립을 위하여!


아침마다 마음을 경건히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지하 2층 주차장에 내려 조심스레 차로 걸어가 운전석을 연다.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조절하고 블랙박스를 꼼꼼히 살피는 등의 준비의식이 끝나면 뒷좌석에 탄 아이들을 향해 말한다.

“자, 이제 기도하자!"


나는 초보운전자다.

생각해 보니 운전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겁이 나서 뒷 유리에 붙은 ‘초보운전입니다, 양보운전 감사합니다’ 스티커를 떼지 못했다.

매일 아침마다 좋은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아이들을 축복하며 드리는 기도가, 실은 서울 한 복판을 오갈 때마다 아직도 두렵고 떨리는 내 맘을 다잡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부디 오늘은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 많지 않기를, 차선을 바꿀 일이 적기를, 사거리를 지나기 전 갑자기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서 급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되도록 없기를, 나를 향해 클랙슨을 울려대는 차가 많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절실한 소망들을 기도로 읊어본다.

길에서 종종 마추치는 반가운 초보운전자 동기들


20년이 지난 장롱 면허를 다시 꺼낼 용기를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복잡한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상, 운전은 필수였다. 학교에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고 복잡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운전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 오래전 면허를 땄을 때도 운전대를 잡아본 경험은 손에 꼽으니, 실상은 초보운전자보다도 더 심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모든 감각과 능력들을 다시 깨워야 했다.


첫 번째 운전 선생님은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여성이었다. 면허만 있을 뿐 운전에 대해 거의 백지상태인 데다가 자존감마저 밑바닥인 나를 자상하게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동성의 선생님을 찾았다.

이제 막 운전면허를 딴 것도 아니고, 20년 만에 처음 운전대를 잡아보니 모든 것이 생경했다. 거리감도 차폭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덜덜 떨며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주차장을 몇 바퀴 도는 내 실력을 확인한 그녀는 흠칫 놀란 듯했다. 생각보다 상태가 엉망인 것을 확인하고는 이미 나보다도 더 떨리고 후회가 밀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불안한 심리상태는 다음 날 집 근처 도로로 나가면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발 운전대 잡은 손에 힘 좀 빼세요. 천천히 천천히, 안 돼요, 안 돼요, 그만 그만.”

겁이 질린 그녀는 다그치듯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니, 그녀는 온갖 부정적인 말들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신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비록 내 실력이 엉망이긴 하지만, 그래서 선생님이 필요했던 건데, 저렇게까지 힘들어하면 나를 제대로 인도해 줄 수 있을까. 어느새 불신과 두려움으로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운전 연습을 하기로 약속을 잡은 날이면 이상하게도 배가 스르르 아프고 몸이 쑤셔왔다. 피차 괴로운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힘든 속내를 차마 직접 꺼내지는 못한 채 그저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를 예민하게 의식하며 위태로운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차선을 바꾸던 내가 아슬아슬하게 택시와 부딪힐 뻔한 어느 날, 마침내 그녀는 이성을 잃은 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멘털붕괴에 빠진 나는 “일단 집으로 갈게요” 하며 차를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바로 사과를 했지만, 나는 엄마에게 엄청 혼난 아이처럼 의기소침해져서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이 상했다 해도 한 번 남은 강습을 취소할 순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른 채,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열심히 주차 방법을 배우고 최대한 기분 좋게 그녀와 작별했다.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내내 분통을 터트리는 나에게 딸아이는 “엄마! 여기서만 이러지 말고 가서 할 말을 속시원히 해야지!” 하고 따끔하게 조언했다. 그러나 나의 운전 선생님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말과 행동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불안한 그녀에게서 나는 몇 년 전의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첫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결정을 해야 했을 때. 무엇이 정답인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했을 때, 녀석들이 뭔가 잘못하는 것만 같으면 나도 모르게 겁에 질려 혼도 내고 화도 냈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나처럼 그녀도 그저 겁이 났던 것이다. 비록 운전 강습자로서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미숙한 아이가 서툴게 돌려대는 운전대 옆에서 그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하자, 그다음으로 밀려오는 감정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불안한 엄마 옆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의 두려움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퍼붓곤 했으니, 중심을 잡지 못한 엄마 옆에서 처음 운전대를 잡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했던 아이들은 그저 다 내려놓고 울고만 싶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 후로 운전대를 내려놓은 나는 한 달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직 미성숙한 스스로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고, 다른 선생님을 찾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패배자처럼 움츠리고 있을 때,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운전을 시작한 친구가 자신의 선생님을 만나면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만난 운전 선생님은 전의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지만 포스가 조금 남달랐다. 전화로 약속을 정할 때부터 목소리에서 뭔가 씩씩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운전석에 앉아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내게 그녀가 건넨 첫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저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저를 믿으시고 열심히 하시면 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 청승맞게 엉엉 울고만 싶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저 심해까지 가라앉아 버린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괜찮아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라는 담백한 한 마디였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다른 자아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복잡해서 엄두도 못 내던 강남 한 복판을 든든한 그녀와 함께 하루에 두 번씩 오가다 보니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기는 늘 막히는데, 이쪽 차선으로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어느새 능동적으로 갈 길을 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럼요! 그럼요!”

한껏 긍정의 메시지를 퍼부어주는 그녀 옆에서 나는 또다시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그저 말뿐이라 해도,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더 많이 말해 줄 걸. 무섭고 힘들어도 씩씩한 미소를 한 번 더 지어줬더라면 아이들도 춤추는 고래처럼 신이 났을 텐데.

두 명의 너무 다른 운전 선생님을 경험하고 나니, 사춘기를 지나는 섬이와 콩이를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너무나 명확하게 알 것 같았다. 이미 지나버린 설익었던 육아기를 찐하게 반성하며 드디어 두 번째 운전연수도 무사히 끝이 났다.


두 번이나 연수를 받았다고 갑자기 운전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다채로운 사건 사고들은 있었다. 좁은 길의 전봇대나 다른 차의 백미러와 내 차의 백미러가 이따금씩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복잡한 주차장에서 30여분을 옴짝달싹 못하고 옷이 땀으로 다 젖도록 생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운전을 포기해야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길을 나선 초짜에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초보주제에 어디 머리를 들이미냐며 절대 곁을 내주지 않거나, 겁을 주려고 미리부터 빵빵거리는 인정머리 없는 차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럴 때면 “당신들은 초보 아니었냐”는 기백으로 쉽게 기죽지 않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중무장을 하곤 한다.

어쩌다 차선을 잘못 들어선 날에는 제발 끼어들게 해 달라고 깜빡이를 연신 켜면서 차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어림없다며 곁을 내주지 않는 차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씩 그 용기가 기특하다고 너른 품을 내어주는 차들을 만날 때면 내 마음도 넉넉해진다. 갑자기 앞으로 휙 끼어든 차 뒤에서 당황하고 있는 내게, “미안, 고마워” 하며 비상등을 두 번만 깜빡여줘도 초보 운전자의 마음은 금세 누그러지는 것이다.


매일 펼쳐지는 길 위를 달리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펼쳐지겠지. 누군가는 큰 소리를 치며 제대로 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겠지만, 온화하게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는 넉넉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오늘 아침도 빠짐없이 아이들과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너희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과 감사의 언어와 긍정의 몸짓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괜찮다고, 잘했다고 서로를 다독여줄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너희가 어떤 일을 겪을 때 이제는 화내거나 도망가지 않고 곁에 있어줄게. 너희가 각자의 운전대를 잡고 당당히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나도 내 운전대를 잡고 최선을 다해볼게.

겁보다는 조금씩 깡이 생기는 것을 보니, 어느덧 초보운전자를 지나 운전 사춘기쯤으로 넘어가고 있나 보다.


슬슬 초보운전 스티커를 뗄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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