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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Dec 17. 2022

어머니와 김장김치

나는 내일 아침에는 보쌈과 겉절이를 먹을 수 있네~

“엄마가 김장하신다는데 가보려고”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는 왜 살림꾼인 언니에게만 연락을 하고, 내게는 굳이 알리지 않으셨을까. 김장이란 자고로 그런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요리 풋내기가 접근하기엔 너무 높고 숭고한 경지랄까.


꽤 오래 전, 엄마가 김장을 한다고 부르신 적이 있었다. 매번 돕던 언니가 마침 바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하게 되자, 아쉬운 대로 일 못하는 둘째 딸을 찾으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전날 다 만들어 놓은 속을 그저 배추 안에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뒤적뒤적 애쓰는 내 어설픈 손놀림을 보시던 엄마는 뭔가 못마땅하신 듯 옅은 한숨을 내쉬시더니 그 일은 그만두고 통에 김치를 담으라고 하셨다. 김치를 담고 있는 어정쩡한 모양새를 보시다가는 이내 풉 헛웃음이 터지고 마셨다. 함께 도우러 오신 이웃분들에게 조금 민망했던지, "하이고 너는 뭘 해도 참 어설프구나"하면서 나중에 뒷설거지나 해라, 하셨다. 그렇게 일 잘하는 언니의 빈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머금고 고춧가루 잔뜩 묻은 커다란 다라이들만 헹구었던 서글픈 추억이 있다.


비록 김장에 대한 그런 아픔이 있었다 한들,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나선 언니를 홀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술이 없으면 힘으로나마 할 역할이 있을까 싶어 전날 밤부터 채비를 했다. 실은, 조금 거드는 시늉이라도 하고 얻어올 김치 생각에 미리 들떠서는 어느새 찬장 깊숙이 넣어둔 커다란 김치통을 꺼내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언니와 교대로 운전을 하며 북쪽으로 향했다.

1년 전 엄마는 개성보다도 위도가 높은 '연천'이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하셨다. 몇 번 가본 그곳은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사람 없는 한적한 것이 딱 나의 취향이었지만, 멀어도 너무 멀다는 것이 흠이었다. 주말에 서울에서 오가려면 새벽밥을 먹고 일찌감치 출발해서 늦은 오후가 되기 전에 돌아와야 엄청난 교통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친정에 도착하니 겨우 아침 8시. 벌써부터 할 일이 있을까 싶어 언니와 커피 한 잔으로 한숨을 돌리려는데 누군가 드르륵 문을 여신다. 김치 빛깔보다도 화려한 몸빼바지에 커다란 앞치마, 다리에 딱 붙는 장화까지. 보통 포스가 아닌 이웃의 아주머니께서 내 집처럼 익숙하게 들어서신다. 엉거주춤 인사를 드리는데, 곧이어 톤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채도의 옷을 입으신 아주머니들이 한 분, 또 한 분. 그렇게 여섯 분이 줄지어 들어오셨다.


엄마가 이 먼 곳으로 이사를 오신 이유가 이분들 때문이라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끈끈한 친구로 지내오신 일곱 분은 십여 년 전 이곳에 일곱 채의 똑같은 집을 쪼르르 지으셨다. 텃밭도 가꾸고 오순도순 노년을 보내자는 마음으로 나름 타운을 만드시고 한 분, 두 분 이사를 하셨지만, 여러모로 걸린 일들이 많았던 엄마는 쉬이 건너오지 못하셨다.

속절없이 연로해지시는 사이 도대체 언제 올 거냐는 친구분들의 성화는 점점 거세어졌고, 이제는 좀 한적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신 엄마는 1년 전에 마침내 이사를 결정하셨다. 말씀은 한적하게 지내고 싶다 하셨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 평생 한시도 쉬신 적이 없는 엄마에게 도시보다도 바쁜 삶들이 펼쳐졌다.


각자의 집 앞마당에 놓인 작은 텃밭이 화근(?)이었다. 몇 번 따라왔을 때 슬쩍 보긴 했지만 엄마의 친구분들은 그렇게 크지 않은 저마다의 밭을 가꾸느라 농사꾼이 다 되어 계셨다. 부지런하신 엄마가 그 가열한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잘 지내고 계신지 이따금씩 통화를 할 때면, 요즘은 감자를 심느라 바쁘다, 곧 배추와 고추도 심고, 내일은 새벽부터 잡초를 뽑아야 한다는 등 하루 일과가 빽빽하셨다.


몸 구부리고 하는 밭일이 역시나 큰 무리가 되셨는지, 원래도 안 좋으시던 무릎에 더 큰 문제가 생겨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한 달이나 쉬셔야 했지만, 우리 집에서 재활을 하시는 중에도 온통 마음은 밭에 가 계셨다. 계속 자라는 상추와 잡초도 뽑아야 하고 다른 집들 작물은 무럭무럭 자라는 사이 엄마의 밭은 엉망이 되어버릴까 봐 걱정이 태산이셨다. 굳이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친구분들끼리 은근히 경쟁이 붙었는지, 누가 무얼 심었다고 하면 그다음 날은 더 바쁘게 새로운 일들을 벌이시는 것도 같았다.


그 작은 앞마당에서 뭐가 그리 나올까 싶었지만, 엄마의 텃밭은 마치 화수분 같았다. 이사하신 지 몇 달 후 감자며 호박, 상추 등이 담긴 정성스러운 택배 상자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 후로도 오가실 때마다 오이며 파와 같은 싱싱한 야채들을 던져놓고 가신 덕에 며칠 마트에 가지 않아도 냉장고는 나름 풍성해졌다.

어찌 보면 이번 김장도 엄마가 심어놓은 배추가 60포기나 열린 데다가, 이미 수확한 고추들을 잘 말려서 빻아놓은 고춧가루가 익히 준비되었기에 가능해진 이벤트였다. 내 팔뚝보다도 두꺼운 무와 파릇파릇한 대파들은 그저 덤이었다.




어느새 다 모이신 친구분들은 엄마의 집 거실에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마치 시작종을 울리듯 누군가 "커피나 마시고 시작할까?" 하시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 언니와 나는 물을 올리고 인스턴트커피를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알고 보니 김장은 벌써 사흘 째 진행 중이시라고 했다. 저마다 수확한 배추들을 가지고 김장을 할 준비들을 마치신 우리의 어머님들은 순번을 정해 한창 품앗이 중이셨다. 그렇게 일주일을 내내 이 집 저 집을 돌며 김장 순례를 다니셔야 하니, 70, 80이 넘으신 연세에 얼마나 고단하실까 싶었지만, 새벽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앞다투어 오신 얼굴에는 이글이글 열정들이 가득했다.


전날부터 모여서 썰어놓으신 무와 갓, 파 그리고 양념들은 마침내 하나로 버무려졌다.

커다란 돗자리(?) 같은 것을 가운데에 깔아놓고 전날 미리 썰어놓은 무와 파, 갓 등을 좌르르 펼치면서 드디어 속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어제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을 쏟아 넣자, 재료들을 버무리는 저마다의 손들이 바빠졌다. 그때부터 마치 랩처럼 어머님들의 주문도 함께 쏟아졌다.


양념 이제 다야?

색이 너무 허옇지 않아? 고춧가루 더 가져와봐

그럼 또 싱거워지잖아? 소금이랑 젓갈도 가져와

아니, 그럼 너무 짜지지 않겠어? 갓이랑 무 더 넣어봐

여기 마늘이랑 생강도 좀 더 가져오고!

아냐 아냐 속이 너무 빨간 게 맵겠네, 재채기가 다 나오잖어. 이제 그만 넣으라구!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지시는 사이 언니와 나는 정신없이 가져오라는 것들을 줄지어 대령하고, 이만큼 넣을까요? 더 넣을까요?를 연신 물으며 안색을 살피기 바빴다. 분명 우리 엄마네 김장인데, 사공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살아오신 세월만큼 담그신 김치가 각자 몇 포기며,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인 노하우들은 얼마나 또 견고하실까. 또 지역마다 집안마다 맛과 스타일도 다 다를 테니, 주문들도 제각각이셨다.

행여 저러다 말싸움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슬쩍 맛들을 보시고는 또 저마다 짜다, 싱겁다, 맵다를 연발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나 매운 거 못 먹는데 왜 이리 고춧가루 많이 넣었어. 무 조금 더 넣고 이제 마무리해야겠네!"


기 센 어머님들 사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엄마의 쨍한 멘트에 속 만들기는 다행히 끝이 났다. 이제는 절인 배추에 속을 넣을 차례였다. 이번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나도 조금 거들까, 하며 엉거주춤 틈을 비집고 앉으려는데

“아냐 아냐. 딸들까지 할 필요 없어. 김치통이나 대령하면 돼.” 하며 말리신다.

머쓱한 표정으로 둘러보니, 감히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엄마를 포함하여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신 세 분은 제각각 무릎을 쫙 펴신 채로 명당자리를 차지하셨고, 허리가 안 좋으신 분들은 소파와 벽에 허리를 기대어 가장 안정된 자세로 준비를 마치신 후였다.

그제야, “너희들은 와서 그냥 밥이나 하면 돼.”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김장의 고수들이 일곱이나 계신데, 굳이 하수의 손길이 필요할 리 없었다. 더군다나 엄마가 든든해하는 살림꾼 언니도 잔심부름이나 하고 있는데 아일랜드에서 중국산 배추 세 포기로 맛김치만 조몰락거리던 경력인 전부인 내가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


아휴 매워도 맛있다!

그러게 김장 잘됐네.

간이 적당한지 이 집 식구들이 맛 좀 봐봐.


김장이 거의 끝나가자, 어머님들 목소리도 세상 나긋해지신다. 어찌 됐든 마무리가 아름다우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언니와 나는 연신 맛있어요! 맛있어요! 를 외치며 비어있던 김치통을 하나둘씩 채워갔다. 남은 배추들을 쓱쓱 찢어 겉절이까지 무치고, 직접 수확한 파들로 파김치까지 담그고 나자 끝이 보였다.

마무리는 우리 무수리들에게 맡기시고 어머님들은 또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일어나 집을 나서신다. 언니와 내가 마무리와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내일 김장하실 집에 가서 무 썰기를 도와주신단다. 참으로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시는 법이 없으신 고수들이다.

일곱분들의 정성이 모여 완성된 김치는 그렇게 커다란 통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고춧가루 범벅인 바닥을 깨끗이 닦고, 언니를 도와 보쌈을 삶고 해물탕을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생굴도 놓고 겉절이도 놓고 보니 한상 가득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무 썰기를 마치시고 다시 도착한 어머님들은 세상 환한 표정으로 앉아서 맛있게 점심을 드셨다. 식사가 끝나자 옆에서 내내 시중을 들던 언니와 나는 어제부터 미리 준비했던 대추 쌍화차와 피로 회복제를 따끈하게 데워서 내오고, 홍삼 절편과 다과를 예쁘게 담아 디저트까지 대령해드렸다. 그리고 북쪽 지역에서 지내느라 추우실까 봐 준비한 수면양말세트를 하나씩 선물해드렸다. '


"아이고 역시 딸이 있어야 돼! 이 집 딸들이 아주 효녀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갑자기 박수가 쏟아졌고 덩달아 엄마의 어깨도 살짝 올라가는 듯했다.


"저희는 이렇게 김치 얻어먹어서 좋긴 한대요, 다들 너무 고생스러우시니 내년부터는 배추 심지 마세요. 요즘은 다 준비된 재료를 팔기도 하고, 사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유기농 재료도 많고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년에는 쉬시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휘저으신다.


"유기농 그거 다 믿지 마! 누가 어떻게 키우는지 어떻게 알아. 내가 내 손으로 이렇게 키워서 좋은 재료로 만드는 게 제일 맛있는 법이야!"


아무렴, 내 부탁이 씨알도 안 먹히리란 걸 예상은 했다. 그래도 내년이면 다들 건강이 어떠실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김치통을 트렁크에 싣고 나니 차 뒤편이 제법 묵직해졌다. 엄마의 두 무릎을 비롯하여 어머님들의 다양한 지병들과 맞바꾼 귀한 김치라고 생각하니 돌아가는 마음이 비장해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야 긴장이 풀린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 내년에도 올 거야?

글쎄, 아무래도 오게 되지 않을까?

하하... 그렇지? 그렇겠지?


다음 김장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내일이면 가족들과 맛있는 보쌈을 삶아 겉절이와 함께 먹을 생각에 그저 기쁘기만 하다.

춥고 조용한 낯선 동네에 자리를 잡으실 때만 해도 외롭고 힘들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모든 것은 기우였다.

어디에 어떻게 자리를 잡으시더라도 금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시고 기어코 귀한 열매를 수확해내시는 끈질긴 생명력. 화수분처럼 퍼주고 퍼주어도 계속 나누어주시는 어머님들의 그 넉넉함을 어떻게 닮아갈 수 있을까.


매콤한 김치를 먹을 때마다 왠지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짠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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