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에세이 #1
눈을 뜨니 바닷가다. 왜 내가 이곳에 있지,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꽤 오래 이곳에 있던 것 같은 익숙함이 느껴지는 게 이상하다.
문득 나를 느껴본다. 전에 알던 내가 아니다. 언제부터 이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변한 나는 속이 비고 가시가 제거된 둥근 조약돌 모양의 성게껍질이다. 위아래로 도넛처럼 구멍이 뚫리고 속은 텅 비어있다. 성게일 때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던 장기와 가시들이 모두 사라진 몸. 나의 껍질은 매우 얇고 건조하다. 손대면 가장자리부터 또각또각 다각형의 면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를 날카롭고 위험하게 보이게 했던 시커먼 색의 가시가 사라지자 동그랗고 작은, 가볍고 얇은 존재가 남았다.
움직이지 못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가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나의 질량은 만 분의 일 정도이고, 내가 느끼는 중력도 그만큼 아주 가볍다. 가벼우니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아니, (눈이 없기 때문에)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고 그게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바다는 바다의 질량으로 그곳에서 출렁이고 나는 나의 질량으로 모래 위에 살포시 얹어져 있다. 너무 가벼워서 깊은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쉽지 않다. 밀려오는 파도나 사람들의 발자국 같은 외부의 힘으로 이따금 모래 속으로 가라앉게 되어도 아주 쉽게 다시 모래 위로 올라서 있게 된다.
움직인다는 건 질량을 가졌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지금처럼 얇고 가벼운 나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인 게 더 자연스럽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질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질량이 클수록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은 더욱더 또렷해진다. 10톤 거구의 티라노사우스르가 대지를 밟는 순간을, 1g의 무게가 되어 상상해 본다. 티라노사우스르는 자기의 존재를, 움직임을, 얼만큼 커다란 감각으로 느꼈을까.
나의 정신 활동도, 나의 몸처럼 아주 파삭하고 얇은 센베나 크림 브륄레 위의 슈거 코팅, 머랭 쿠키처럼 단순하고 가벼운 결로 진행된다. 나의 생각은 무척 가볍고 바삭하다. 인간이었을 땐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다. 이를테면 여기엔 아무런 감정이랄 게 없다. 영원한 고요함과 단순함 그리고 바삭함만으로 이루어진 생각이다.
어제까지는 인간이었고, 여러 감정을 느끼는 일도 있었다. 내가 알리지도 않았지만 알아주지 않으니 혼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대하면 실망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 감추었음에도 귀신같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건가? 하루종일 가능성 없는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비논리적이라고 느낌에도 그 기다림의 마음을 멈출 순 없었다.
그런데 이 몸을 하니 그 모든 게 아주 바삭하고 가벼운 일로 느껴진다.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기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개념과 비현실적인 생각도. 두려움과 회피하는 마음도. 나약하고 어린 마음, 모순과 실망도. 모든 게 그저 아주 가볍고 바삭한 머랭 쿠키에 지나지 않다. 모든 건 똑같이 일정하게 파삭! 소리를 내는 존재들일뿐이다. 그것들은 그저 존재하고 아무런 죄도 책임도 의무도 없다.
다시 그냥 바다를 느껴본다. 인간임을 경험하고 이 몸을 경험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이었을 때 내게 눈과 코와 입과 몸이 있었기에 내겐 시각 후각 미각 촉각이 당연하고 그 세상에는 그렇게 정의된 감각의 개념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인간이 삼차원 세상만을 인지하고 사차원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이상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다만 주어진 감각 기관에 의해 한정된 감각 속에서 살아왔을 따름이다.
만약 감각의 정의를 어떤 한 존재가 자기 밖의 외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이 우주에는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감각들이 존재하거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존재에게 오감이 없다고 해도, 그 존재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외부와 소통하고 있다. 존재는 바깥 속에 있고, 바깥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 경계, 그 맞닿음 없는 존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인간일 때의 감각 중 그 어떠한 것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모래와 바다를 느낀다.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어본 이후에야 세상을 경험하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은 바삭한 존재이므로, 받아들이는 세상은 얼마간 바삭하게 느껴진다.
몸이라는 도구를 빌려서 세상을 경험하는 이 순간. 이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때로 내가 느끼는 것이 전부는 아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감각을 매개로만 삶을 경험해 나갈 수 있음을. 이 두 생각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나는 무엇인가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