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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 Sep 21. 2022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면

대기업 프로 용병기



이 회사에 들어온지는 일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경력직이지만 다양한 업무도 마다하지 않았고 비공식적 직책도 꺼리지 않고 하다보니 다행히 기존 회사에서만큼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도 그럭저럭 어렵지 않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회사에 많은 경력직 동료가 있다는게 상대적으로 불안감 적게, 마음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더. 그래서인지 매일 퇴근길도 피곤함 보다는 보람찬 마음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퇴근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마음입니다.  오늘은 회사에서 상사와 업무 관련 다툼이 있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상사나 동료와 갈등도 생기고 어려움도 있고 그게 어쩌면 당연하지만 당사자가 되면 훌훌 털어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그 일이 크게, 무겁게, 평소보다는 훨씬 더 심각하게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평소 밝은 성격인 저는 특히 회사에서는 더욱더 긍정 에너지 옷을 입는 편입니다. 안그러면 버티기가 어려울것 같아서. 그래서 오늘처럼 기분 다운된 상황에서는 더욱 업된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나 처럼 퇴근길을 함께 해준 동료가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다, 오늘도 하루 밥벌이를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라고.



그럼에도 오늘은 나아지지 않고 어쩐지 계속 우울 모드.



사실 오늘은 새로 합격한 회사에 최종으로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날입니다. 직장인으로 갑의 입장에서 거절의 의사를 회사에 전달하는 인생에 몇번 없을 특별한(?)날. 합격한 곳은 심지어 유명 컨설팅 회사. 꼭 해보고 싶은 포지션이었고 그래서 지원해서 임원 면접을 보았고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쉽지만은 않은 도전적인 업무라 예상되는 가시 밭길과 그리 높아지지 않은 연봉으로 무리하게 이동은 하지 않기로 그대로 이 회사에 잔류하기로 어렵게 결정했고 오늘 그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날. 아쉽다면 아쉬운 기한의 날입니다.


그래서 일까.


선택이 가능할때는 의기양양했는데. 이 회사 아니라도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할 땐 구름처럼 가벼운 기분이더니. 이제 당분간 이곳 뿐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퇴근길 직장인을 누릅니다. 어쩌면 이리 분명하게도 대조적인 기분인지. 선택을 고민하며 허울 좋은 그곳보다는 적당히 워라벨이 있는 이곳이 은근 아늑하고 좋다고 생각했던 내가 원망스럽고 미련하게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것에 대해 벌을 받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선택을 할 수 있을때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이엏급니다. 그 선택의 패를 버리자 마자 불안감이 차오릅니다.


고인물은 썩고, 그럼 새 물을 갈아야 하는 뻔한 이치를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선택할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잠깐 의기양양 했는데. 막상 나에게 하루도 고인물의 평온함이 허용되지 않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연차가 조금 많은 용병입니다. 고인물이 되면 안되는 포지션. 고여봤자 위로 흐르지 못하고 아래로만 흘러 가는 게 자연스런 물 처럼. 그저 오늘 하루 대기업의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종일 일하며 충분히 돈벌이를 했고 내일도 당연히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 정도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대감댁 프로 용병입니다.


홈경기는 이미 끝났고 공채 출신으로 누리던 성골 진골의 승진기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다음으로 들어 갈수 있는 회사를 품지않고는 견디기 힘든 하루의 과업. 잠깐 홈경기라고 착각했지만 다시 현실감각을 바로 세우려고 랍니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더이상 안주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경력직 직장인의 현실입니다.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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