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인대 파열 수술 극복기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란 게 이런 걸까.
다치고 양쪽 무릎 수술한 지 2년 차, 이제야 조금 살만해져 당시의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
나는 외식업을 운영하고 있다. 홍연우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클릭. 오래 서있는 직업인지라 밤만 되면 다리가 쑤시고 발이 아프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 모두가 겪는 고통이겠지만 유독 나는 더 빨리 지치는 것 같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나는 태어난 지 두 돌이 다 되어가는데도 걸음마를 못 떼었다고 한다. 큰 병원에서 조차 검사를 받아보자고 할 정도였단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열리는 날을 가장 싫어했다. 달리기 계주는커녕 손등에 1, 2, 3등 도장 한번 찍어본 적 없고, 상품으로 주는 공책 한 권 받아본 적 없다. 친구들과 놀이동산 갈 때면 나만 늦게까지 놀지 못할 만큼 다리가 약했던 것 같다.
때는 이천이십 년 칠월,
하루하루 다리의 피로는 쌓여가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아가던 때 한순간에 무릎을 다쳤다. 힘든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어디 부딪힌 것도 아니고 고작 다리를 살짝 틀어서 신발을 신었을 뿐인데 무릎이 탈구되고 인대가 파열되었다. 순간 뼈가 엇갈리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억 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발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기에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다음날 땅에 발을 못디딜정도로 아프고 제대로 힘을 실어 걷지도 못한다. 고장 난 무릎을 고쳐주실 선생님을 찾아 돌고 돌다 나와 맞는 서울의 한 정형외과를 찾았다. 내 병명은 슬개골 탈구로 인한 인대 파열이고 인대를 다시 재건해 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인대가 유연하기에 쉽게 다칠 수 있다고 한다. 수술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수술 날짜를 잡았고 일주일 후에 입원하게 되었다.
수술 당일 척추마취를 하고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소독약을 바르고 잠에 들었다 깼는데 어느 순간부터 누가 내 다리를 잡고 흔들고 있더라(이때부터 내 다리는 원장님 것이었다.) 수술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걸렸다. 병실로 돌아오고 6시간 지났을 무렵 첫 소변을 봐야 된다며 휠체어에 앉아보라고 하셨다. 일어서려고 살짝 움직여보니 무릎이 찢어지게 아프더라. 연결된 무통 주사 한번 더 눌러주고 곧장 화장실행. 그런데 아무리 앉아있어도 소변보는 법을 잊어버린 듯 아무 반응이 없다. 소변줄 꼽기 싫은 마음에 온 정신을 집중하니 드디어 나오더라. 병실로 돌아와 선생님께 성공 소식을 알렸더니 다들 축하해 주셨다. 이리 많은 사람들이 내 소변 안부를 궁금해할 줄이야.
다음날, 수술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와 mri를 찍고 염증 확인을 위해 피검사를 했다. 아니 근데 또 한 가지 억울한 건 난 왜 혈관이 잘 안 보이는가. 피 뽑는 선생님이 주사 가장 잘 놓은 선생님이라고 하시는데 다들 한 번에 성공 못 하시더라. 나 닮아서 어지간히 말을 안 듣나 보다(역시 내 몸뚱이야) 그 이후 도수치료받고, 항생제 주사 맞고, 얼음찜질 하고, 밥 세끼 다 꼬박꼬박 먹다 보니 저녁 회진 시간이다. 수술사진 보여주시며 인대가 짱짱하게 잘 이어졌다고 다시 설명해 주셨고, 내 슬개골 뼈가 너무 각이 져있어서 조금 힘들었다고 하셨다(뼈까지 어지간히 말을 안 듣나 보다)
일주일 후부터는 정식적인 재활에 들어가는데 이제 지옥 시작을 알린다. 물리치료사 선생님께서 마사지로 다리 전체를 풀어주고 엎드린 자세에서 다리를 접는 일명 각도내기라는 것을 하는데 70도부터 시작하여 매일 10도씩 올린다. 수술 이후에는 유착이 심하고 근육이 빠지고 굳어가기 때문에 각도 내는 재활은 필수다. 담당 재활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mpfl(슬개대퇴인대) 수술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해. 아프면 울어도 돼,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 울더라" 대망의 첫날, 선생님께서 다리를 잡고 꺾으시는데 난 정말 지옥에서 저승이를 만나고 왔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각도연습을 이유 없이 하루라도 거르는 날에는 다음날 다 같이 폭탄을 맞을 거라며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지옥에서의 3주 후 퇴원을 했지만 집에서도 외래에서도 각도연습은 계속 이어졌다. 5주쯤 지났을까. 도수치료실에서 목발을 띠고 두 발로 서던 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다쳐봐야 소중한 걸 알지"라고 말하는 재활샘의 어투에 모든 게 담겨있더라. 두 발로 걷는 것, 뛰는 것, 앉는 것 등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기쁨도 잠시 다리에 전혀 힘이 안 들어가더라. 아니 힘주는 법을 잊었다. 걸음마부터 다시 배웠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시간과 노력이 쌓일수록 점점 회복되어 갈 무렵, 반대쪽 무릎을 다쳤고 같은 증상 같은 병명 같은 수술이 필요했다.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지옥의 시간들을 한번 더 반복해야만 했다.
두 번째라 그런지 과정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더 겁이 났지만 조금이라도 즐거운 병원 생활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있기에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재활 샘들이 말씀하신다. "이제 좀 사람다워지네" 이제 졸업하자!
두 번의 수술과 네 번의 입원, 셀 수도 없는 외래와 재활까지 정말 힘들었다. 치료받을 때는 각도기만 봐도 던져버리고 싶었고, 병원 엘리에이터가 고장 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하게 가르치는 선생님들 덕분에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고 한편으론 의지할 수 있었다. 다시 걷고 운동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 힘들면서도 즐거웠다. 각도 낼 때의 기절할 듯한 고통과 처음 자전거 한 바퀴 돌아갔을 때의 희열은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제 두 다리 아껴 쓰겠습니다.
약 2년간 마치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지만 오늘에서야 간호사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멀리 보고 가야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부득이 내 일의 속도가 안 나고 잠시 뒤처지기도 했지만 마음 급하지 않게 조금은 천천히 그러나 묵묵히 제 속도를 즐기겠습니다.
썩 괜찮은 마땅한 방법으로 재밌게 살아보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추억으로, 앞으로의 삶은 모험으로 감히 글을 써보려 합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를 제일 모릅니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처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