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어린이 잡지 광고로 엿보는 5060세대의 유년 시절
옛 어린이 잡지를 뒤적이니 그 시절이 들여다 보이는 듯하다. 표지 모델의 옷과 머리는 당시의 유행을 짐작하게 하고 만화와 동화 등 반공 콘텐츠는 날이 선 남북관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광고는 그때 어린이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십여 년간의 잡지들을 살펴보니 꾸준히 보이는 광고가 있었다. 해외펜팔 광고와 카메라와 망원경 광고가 그렇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나는 인상 깊은 식품 광고도 있었다.
바깥세상을 열어준 해외펜팔
펜팔(Pen-pal)의 사전적 의미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귀는 벗”을 뜻한다. 그러니 해외펜팔은 편지를 주고받는 외국인 친구를 의미한다. 지금은 유학이나 해외 근무 혹은 SNS 등을 통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통로가 크게 열려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해외에 나가려면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런 시절 바깥세상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창구는 몇 없었다. 팝송이나 외국 도서 등이 그 역할을 맡았고 어느 정도는 해외펜팔이 감당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로 보관하는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와 새소년이 발행한 1970년부터 1982년까지의 월간 호들을 보면 거의 매월 ‘메아리펜팔협회’의 광고를 볼 수 있다.
해외펜팔을 연결하는 회사로 보이는 이 단체의 10여 년간 광고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광고 상단에 외국인들 사진을 나열한 것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이 사실 미국 중학생이라는 설명도 1970년대 초반이나 1980년대 초반이나 똑같다.
해외펜팔은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 메아리펜팔협회 광고는 해외펜팔의 장점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외국어, 특히 영어를 학습할 수 있고, 해외 우표 등을 수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외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라고도 강조한다.
50대 커뮤니티에 물어보니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절 미국 학생과 펜팔을 경험한 이들이 꽤 있었다. 중학생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니 그렇다 치고 당시 초등학생은 지금과 달리 영어와 친숙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외펜팔을 할 수 있었을까.
답은 메아리펜팔협회 광고에 나와 있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영어편지 예문집’을 회원들에게 실비로 제공했다.
중학생이 되면 까까머리나 단발머리를 해야 했던 시절 해외펜팔 광고에 나온 자유로운 모습의 외국 햑생들 사진은 자신이 우물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해외 소식을 미디어에서, 그나마 제한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시절 해외펜팔은 바깥세상과 연결해 주고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준 창구가 아니었을까.
만화를 도구로 한 광고 등장
여러 커뮤니티에 옛 어린이 잡지에서 어떤 콘텐츠가 기억나냐 물어보면 많은 이가 만화를 꼽는다. 지금처럼 오락 활동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잡지에서 연재하는 만화는 그다음 달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알까 만화를 도구로 한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위 그림을 얼핏 보면 만화 작품이다. 하지만 뜯어 보면 광고다. 1970년대 도시락 반찬의 제왕으로 등극한 소시지 광고로 신동우 화백이 그린 <진주와 마미>다.
매회 다른 내용을 그렸지만 메시지는 단순하다. 소시지에 영양소가 풍부해 건강과 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는 거다. 심지어 두뇌 활동에 도움을 줘 학업 능력 향상도 일으킨다는 내용도 있다.
위 그림은 1972년 3월에 나온 <진주와 마미> 첫 회 광고인데 소시지를 먹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건강하게 상급학교에 진학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자극받은 어른도 소시지를 먹게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광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소시지는 많은 어린이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1970년대에 도시락 반찬으로 소시지를 싸 온 어린이들은 부러움을 샀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빨간 소시지를 보면 추억에 잠기는 5060이 많을 것이다. 이들을 겨냥해 달걀을 입힌 빨간 소시지가 안주로 나오는 주점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소시지는 햄에 도시락 반찬의 제위를 빼앗긴다. 이후 소시지는 어육 함량이 높은 어묵에 가깝다는 평가도 얻는다. 시절이 흘러 지금은 햄과 소시지에 염분 함량이 높아 건강에 해로운 가공식품으로 찍혀 있다.
세상을 담고 보는 카메라와 망원경
어린이 잡지의 광고는 대부분 어린이가 주력 소비자인 상품을 소개한다. 전과나 동화 등 도서류가 그렇고 과자류나 장난감류가 그렇다. 그런데 조금은 의외인 상품들도 어린이 잡지에서 광고했다.
위 이미지는 1977년에 어린이 잡지에 실린 광고들이다. 이미지에 나오듯 카메라나 망원경을, 비슷한 다른 광고에서는 현미경, 무전기, 전자시계 등도 소개한다. 이런 종류의 광고들은 1970년대 초반부터 나오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많이 볼 수 있다.
새소년의 경우 1972년 2곳의 업체, 1977년에 5곳의 업체, 1982년에는 10곳 이상의 업체가 카메라나 망원경, 혹은 과학기기나 전자기기 등을 광고한다.
이들 업체는 매장에서 직접 판매하기도 했지만 주로 통신판매로 상품을 거래했다. 먼저 소비자가 전화나 편지로 주문하고 소액환을 보내면 소포로 제품을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소액환은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우편환증서다. 은행을 통한 계좌 이체가 없던 시절의 송금수단이었다.
이 시절 어린이들에게 카메라와 망원경은 어떤 의미였을까.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자의식이 발달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픈 마음이 든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현상을 담는 매체인 카메라와 외부를 보는 렌즈인 망원경 광고로 소유욕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가와 문화 활동에 지출을 늘려가던 사회 분위기를 겨냥한 광고이기도 할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졸라 지갑을 열게 만드는.
그래서 고가가 아닌 보급형 장비를 구하려는 소비자층을 타겟으로 삼은 광고인 듯하다. 1977년 광고를 보니 ‘미콘 카메라(Mikon Camera)’가 5,800원, 코니 카메라(Konih Camera)가 14,000원이다.
같은 해 어린이 잡지는 550원이었고, 서울 시내 버스비는 성인이 40원, 학생이 30원이었다.
세상 분위기를 보여주는 그 시절 광고들
한편, 어린이 잡지에 현미경, 무전기, 전자시계, 그리고 라디오 만들기 세트와 과학 실험 세트 등을 광고한 업체도 많았다. 과학이나 신기술에 관심을 쏟게 하는 제품들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과학입국’과 ‘기술보국’을 내세웠다. 이를 뒷받침하듯 당시 어린이 잡지도 과학기술과 잡학지식을 반복적으로 다뤘다. 광고도 그 추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어린이 잡지에 실린 광고는 다양하다. 다만 현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서는 볼 수 없는 품목들을 이번에 다뤘다. 그런 광고와 상품들을 접하며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의 5060 세대가 됐다.
물론 그것들이 5060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과학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5060 세대에게 유대감을 갖게 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확실하지 않을까. 5060 세대에게 어린이 잡지는 같은 경험과 오랜 기억이 담긴 손때 묻은 서랍일 지도 모른다.
뉴스포스트(http://www.newspost.kr)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