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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머치드러거 May 02. 2018

[숲 속의 작은 집]이 특별한 이유_2

[본론]

[서론]에 이어 계속됩니다.



 나PD가 또 다른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왔다. 프로그램 제목은 ‘숲 속의 작은 집’. 프로그램 스스로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예능계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와 엔터테인먼트

(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다큐테인먼트(Docutainment)가 지배하고 있다. 다큐테인먼트란, 극적인 허구성 없이 있는 실제 사건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오락프로그램인 예능이 결합된 TV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기존의 다큐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살펴보았을 때 다큐멘터리와 예능의 비율은 대충 반반이거나 예능 쪽이 더 높은 편이다. 아무래도 예능을 근간으로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첨가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숲 속의 작은 집’은 이름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 건지, 정말 숲 속의 작은 집과 출연자 2명, 그리고 주변의 자연풍경만 계속해서 담아낸다. ‘숲 속의 작은 집’은 다큐멘터리를 근간으로 예능의 요소를 첨가한 것에 가깝다. 


 프로그램은 도시의 바쁘면서도 단조로운 일상을 보여주며 ‘우리는 바쁩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끝내도 끝내도 또 생기는 일, 계속 쌓여만 가는 연락들을 강조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해보셨나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프레임을 다시 한번 스스로 벗어던지는 자막이 깔린다. 


‘이 프로그램은 행복에 관한 실험 보고서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을 정의할 수 있을까? 그중 어느 사람이 자신이 뭘 할 때 행복해지는지 알고 있을까? 사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지 잘 모르겠다.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풍족한 부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적당히 먹고 살만큼만 벌자니, 이 나라는 ‘적당한’ 사람들에게 가혹하다. 물질적인 것은 모두 논외에 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자니, 물질적인 것을 논외에 두고서는 도저히 행복할 자신이 없다. 완전한 행복이란 없다. 한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고, 둘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프로그램의 포맷은 다음과 같다. 출연자는 전부 2명, 박신혜와 소지섭이다. 분명 예능에서 보기 쉬운 얼굴들은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배우들에게, 제작진은 각각 피실험자 A, B라는 명칭을 붙인다. 피실험자들은 제주도 외딴 숲 속의 집에서 2박 3일 혹은 1박 2일간 머무른다. 여기서 전부 2명이라는 건 말 그대로 프로그램 내내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2명밖에 없다는 뜻이다. 


 숲 속의 작은 집 근처에는 ‘삼시세끼’처럼 동네 주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태프들이 카메라에 비치지도 않는다. 여기서 나영석의 전작, ‘신혼일기’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숲 속의 작은 집’은 한술 더 뜬다. 출연자는 각각 다른 시간, 공간에 있다. 즉, 출연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스태프들의 개입은 온라인 메신저를 통한 미션 전달과 가끔 나오는 인터뷰를 제외하면 없다. 심지어 출연자들이 셀프캠으로 직접 찍은 장면들이 적지 않게 프로그램에 나온다. 이쯤 되면 이게 정말 방송 프로그램인지 사회 실험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생활하는 집이 좀 특이하다. 박신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집은 공공의 가스나 수도,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가스는 버너, 생활용수와 식수는 제한된 양이 구비되어 있고 장작을 때우는 난로를 통해 난방을 하며 전기는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다. 이러한 집을 ‘오프 그리드(off grid)’라고 한다. 오프 그리드 하우스에서 산다는 건 에너지로부터 독립된 집에 산다는 뜻이다. 문명이 주는 혜택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이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는 수식어는 멋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숲 속의 작은 집’의 전개 방식은 이렇다. 피실험자들은 각자 짐을 싸와 오프 그리드 하우스에 입주한다. 그리고 자칭 ‘행복추진위원회’라는 제작진에게 메신저로 미션을 받는다. 그 미션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행동 지령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보세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보세요.’, ‘해와 함께 눈 떠보세요.’, ‘한 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해보세요.’ 등 평소에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피실험자들에게 해보기를 권유한다. 이런 일을 했을 때 과연 피실험자들이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정리하자면 ‘숲 속의 작은 집’은 도시와 문명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실험하고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시작으로 제작진은 피실험자들에게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제시한다. 미니멀 라이프란, 말 그대로 단순한 삶의 양식을 일컫는다. 제작진은 피실험자들이 입주하자마자 가지고 온 물건 중 꼭 필요한 물건을 제외하고 반납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쓰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첫 발걸음이다.


 피실험자들은 다소 생소한 미션을 받아들였을 때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수행을 하며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카메라는 그런 그들의 감정을 꾸밈없이 담아낸다. 그리고 제작진은 굳이 그들에게 행복이라는 답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제작진이 권유한 ‘미니멀 라이프’가 피실험자에게 솔직하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묻는다.


 대충 훑어보면 ‘숲 속의 작은 집’은 굉장히 심심한 프로그램이다. 두 출연자가 나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제작진이 준 미션을 수행하거나 밥 짓는 것 밖에 없다. 미션도 생소하다 뿐이지, 시청자에게 웃음을 유발한다거나 스릴을 느끼게 하는 류의 것은 아니다. 출연자들도 전문 예능인이 아닌, 배우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예능적인 재미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나마 박신혜는 시종일관 통통 튀는 매력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지만, 소지섭은 인터뷰를 할 때가 아니면 정말 말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숲 속의 작은 집’은 자극적인 요소로 점철된 ‘요즘 예능’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택했다. 그래서 최근 주 5일제가 정착하면서 가장 뜨거운 시간대로 떠오르고 있는 금요일 밤 10시를 ‘숲 속의 작은 집’에 편성한 tvN의 판단이 더욱 놀랍다. 연달아 성공을 거두고 있는 나영석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걸까. 다큐멘터리에 더 큰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속 내용과는 대비적으로, 기획부터 편성까지 모험과 도전, 과감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매력이 있긴 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음식에 비유하자면 평양냉면과 같다. 처음에는 이 아무 맛도 없는 음식이 뭔가 싶지만, 돌아서면 묘하게 생각나고 다시 찾게 된다. ‘숲 속의 작은 집’도 그렇다. 파면 팔수록 곳곳에 매력이 숨어있다.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 자연을 멀리서 조망하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가까이 담아내는 영상은 절로 탄성이 나온다. 특히 음향적 측면에 굉장한 힘을 줬다.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 국 끓는 소리, 계곡의 물이 흐르는 소리 등,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는 소리들을 남김없이 잡아내서 극대화시킨다. 프로그램 내에서도 직접적으로 ASMR을 언급하기도 한다. (ASMR이란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을 일컫는 용어다.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로 바람이 부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이 있다.)


사진에 소리를 못 담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 장면은 정말 굉장했다.


 피실험자로 소지섭, 박신혜를 선택한 것도 결국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영석은 박신혜와 소지섭을 가리켜 각각 미니멀 라이프의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과 이미 스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박신혜가 제작진의 미션에 불평하면서도 점점 미니멀리즘에 적응해나가는 모습은 예능적인 재미를 충족시켜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 재미있는 건 소지섭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소지섭은 인터뷰가 아니면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나영석은 소지섭이 프로그램 섭외 전부터 이미 스님의 삶을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그렇게 보인다. 짐도 캐리어 몇 개를 바리바리 싸들고 온 박신혜와는 달리 백팩 단 하나를 들고 왔다. 반찬 하나만 가지고 밥을 먹으라는 미션에도 박신혜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소지섭은 덤덤했다. 그는 평소에도 다이어트를 위해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만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던 소지섭이 제작진의 미션을 수행해 나가며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은 꽤나 흥미롭다. 




(결말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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