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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Feb 09. 2019

심해로 떨어지는 DC <아쿠아맨>


<아쿠아맨>은 개봉 전 부터 언론 시사회 등에서 위기의 DC를 구원할 구원투수라 평가받은 기대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아쿠아맨>이 정말 DC를 구원할 영화라면 이제 DC 영화를 챙겨 볼 일은 없을 것이다.


2013년 <맨 오브 스틸>을 시작으로 DCU 영화는 총 6편이 개봉됐는데 지난 5년간 꾸준히 이 영화들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개연성이나 스토리를 지적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는 플롯 보다 화면과 연출을 활용한 다양한 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취향일 뿐, 후자 요소들의 비중을 줄이고 플롯에 집중하는 영화들도 많다. <아쿠아맨>은 당연히 플롯에 집중하는 영화다.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의 캐릭터 구축은 최우선 과제이고 <아쿠아맨>처럼 후속편이나 다른 영화들과의 콜라보가 기정사실화된 영화에선 절대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진부하고 얕은 서사, 중구난방의 개연성으로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없다. <아쿠아맨>은 매력을 떠나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에서 괴리감이 느껴지고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공감하기도 힘들다. 그냥 영화 전체가 아무 맥락도 없는 거대한 서커스처럼 다가온다.
 


극초반 아틀란티스의 여왕은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을 멋지게 제압한다. 이 시퀀스는 영화의 첫 전투씬이자 비쥬얼적으로도 잘 짜여진 꽤 볼만한 액션이다. 하지만 이 씬 바로 뒤에서 여왕은 아들과 남편을 지키기 위해 아틀란티스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자신을 아틀란티스로 데려가기 위해 온 병사들을 전부 제압 해놓고는 1분도 안 지나 자기 발로 투항하겠다는 여왕의 변덕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결국 앞선 전투씬은 그저 액션을 위한 서비스이자 빈 껍데기였다는 말이다. 아버지와 술을 마시던 아쿠아맨에게 시비를 걸던 패거리가 사실 사진 촬영을 부탁하려는 것이었다는 술집 씬 역시 같은 맥락의 서비스씬이다. 재밌고 멋지기 보다 '저게 뭐야'라는 한탄이 먼저 튀어나오는 변덕스러움과 빈껍데기 서비스씬의 연속이 <아쿠아맨> 플롯 진행의 동력이다.

<아쿠아맨>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왕과 평민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후에 정통성 문제로 권력 다툼에 휘말리며 왕으로서, 영웅으로서의 자격이 시험받게 된다. 이 시험을 통과한 주인공은 전설의 무기를 얻게 되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쿠아맨>은 이 전형적인 틀 안에서 큰 변주 없이 스토리를 진행한다. 왕으로서의 자격시험 통과가 정의에 대한 각성이 아닌 '물고기와 말이 통하는 인간' 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한탄이 나오는 반전이다.

혹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는 스토리 보다 비쥬얼이 더 중요하다고. 나도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플롯의 비중을 줄이고 비쥬얼로 모든 승부를 보는 영화들 중에도 좋은 영화들이 꽤 있다. 파괴지왕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12>, <투모로우>. 독창적 비쥬얼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가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그럼 <아쿠아맨>은 얕고 진부한 플롯을 만회할 만큼 훌륭한 비쥬얼을 보여주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좋은 비쥬얼 보단 좋은 때깔의 영화다. 이는 <아쿠아맨> 뿐만 아니라 다른 DCU 영화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DCU 영화들은 절제를 모른다. 아무리 비쥬얼이 뛰어난 영상을 만들었다 한들 그런 화려한 영상을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반복하면 질리다 못해 피로감마저 쌓이게된다. 뛰어난 비쥬얼의 영상들이 마치 백색소음처럼 소비되는 것이다. 이 영화 속 액션 시퀀스를 러닝타임 2시간이 아니라 따로 떼서 2~3분만 보여준다면 감탄하며 비쥬얼을 칭찬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 때문에 DC 영화는 예고편만 보면 기대하게 되는 것이고 좋은 비쥬얼 보단 좋은 때깔의 영화라는 것이다.



<아쿠아맨>의 비쥬얼 문제점은 연속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반복성에도 있다. 독창적이지도 않고 비슷한 비쥬얼의 반복이기 때문에 피로감이 배로 쌓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트랜스포머> 1편은 비록 개연성이나 스토리는 날림이었지만 변신 로봇의 실사화는 그 자체로 비쥬얼 쇼크였으며 당시 그 정도로 정교한 CG 기술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허나 시리즈를 이어 갈수록 유사한 구조의 액션 시퀀스(실제로 액션 연출을 통째로 자기 표절함)를 보여주자 관객들은 화려한 CG에도 질리기 시작했고 결국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멍청한 영화'라는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아쿠아맨>의 액션은 거의 모든 씬이 느닷없는 폭발로  시작된다. 영화의 첫 번째 액션씬은 아쿠아맨의 집 벽 한 면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아쿠아맨의 해적 퇴치도 잠수함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시작되고 액션씬 돌입도 잠수함 입구를 부수면서 시작된다. 벌코와 메라의 비밀 아지트에선 병사들이 문을 폭발 시키며 등장한다. 메라와 아쿠아맨이 삼지창의 위치를 알아내는 순간엔 악당이 메라에게 폭격을 퍼부우며 액션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폭격과 함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액션 영화의 오랜 클리셰라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한 영화 안에서 집요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씬을 구성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제임스 완 감독에게 묻고 싶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비쥬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건 화면 연출이 아니라 배우들의 육체다. 제이슨 모아모, 엠버 허드, 니콜키드먼에게 몸매가 부각되는 괴상한 타이즈를 입혀놓은 건 비쥬얼 사수를 위한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아쿠아맨>은 평작이라고 보기 힘든 졸작이다. <원더우먼>이라는 평작에 걸작 수식어를 붙이며 억지 부활을 선언했던 DC는 이제 아틀란티스 보다 더 깊은 심해로 떨어지고 있다. 이제 DC가 MCU를 따라잡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MCU가 같은 수준으로 침몰하길 기다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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