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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쫀나 Nov 12. 2023

승무원 #1 관찰 비행

정식 비행 하기 전 하는 관찰 비행의 추억 

캐세이는 그래도 나름 오래된 회사이고 시스템이 어느 정도는 잘 굴러가는 회사다.


물론 회사라는 건 상대적인 거고 나의 경험도 지극히 개인적인 터라 다른 기업과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신생 항공사에 비하면 확실히 캐세이는 이런 저런 시스템 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 한다. 여기서 생각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나 역시 모든 회사의 시스템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한국 대기업을 다닌 경험이 있고 주변 이야기를 들어봐도 시스템이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아는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을 거다. 특히 주변 동료들 중에서 캐세이 시스템이 엉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큰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서 아는 게 없거나 아니면 전 회사가 말도 안 되는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물론 여기도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는 실제로 회사 생활 해보면 크게 느끼는 부분으로 나는 거의 3-4번째 회사였기에 나름 만족하면서 다니기도 했다. 


캐세이는 안전 교육 그리고 서비스 교육을 받으면 관찰 비행이라고 해서 다른 승무원들이 실제로 기내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이하 비행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홍콩 쿠알라룸푸르 구간 비행을 받았고 이 비행은 거의 5시간이나 되는 비행이었으며 왕복으로 하면 10시간이 되는 생각보다는 긴 비행 이었던 걸로 기억 한다.


사실 나도 기억력이 안 좋아서 모든 비행이 기억이 나진 않으나 이 비행 만큼은 긴장도 많이 했고 해서 지금도 꽤나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크루들이 좋았고 처음 기내에 올라와서 일하는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화권에서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던 중이었기에 관련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한국 문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일찍 아시아권을 흔들어 놓고 있긴 했었다. 그렇게 관찰 비행을 잘 마무리하고 내가 놀란 건 바로 승무원들이 비행기 안에 실려 있는 음료수 같은 걸 자기 가방에 챙기는 모습이었다. 


사실 다들 쉬쉬하던 일이긴 하였으나 몇 년 전 회사에서 에어 브릿지 앞에서 대기하다가 하기하는 승무원들의 가방을 열었고 빵이나 요거트 같은 음식물이 나온 승무원들을 잡아서 홍콩에서는 크게 뉴스로 나기도 했다. 회사는 회사 물건을 이렇게 가지고 가면 안 된다는 여론이 나올 줄 알았겠으나 당시 홍콩 여론이나 언론은 월급이 얼마나 낮으면 저렇게 얼마 가서 썩어질 것들을 승무원들이 굳이 가지고 가느냐고 동정 여론이 많았다. 


실제로 회사의 vip 몇몇 분은 비행기를 타면서 승무원들 먹으라고 고급 스시를 사가지고 오기도 했다. 다들 알지만 공항의 스시는 시중에 파는 스시보다 고급이고 가격도 두 배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그렇게 사왔다는 이야기를 다른 승무원을 통해서 들었다. 


사실 홍콩의 삶은 팍팍하지만 나는 외국인이고 당시에는 집값 보조금을 받고 있어서 그리고 귀찮기도 해서 음식물 같은 걸 가지고 내린 적은 없다. 게다가 나는 한식 위주로 먹는 사람이라서 기내에 실리는 음식은 먹을 것도 없다. 


그런데 비행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여러 가지를 챙기는 승무원들을 마주했으니 나는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애써 못 본 척 했다. 그들이 나에게도 가지고 가라고 해서 제로 콜라 음료 한 캔을 가지고 온 것으로 기억 하는데 잘 마시지도 않지만 무언가 내가 안 가지고 가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어서 억지로 웃으면서 챙기긴 했다. 


처음 비행에서 회사에서 그 동안 이야기 하지 않던 면을 볼 수 있어서 충격 반 호기심 반이었는데 다른 외국 항공사 크루에게 물어 보니 회사마다 조금 차이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다른 항공사 친구들도 샴페인 같은 걸 몰래 가지고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무슨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홍콩의 척박한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쿠알라 비행은 승무원들 일부가 기내 안의 물건을 챙기는 기억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몇 년 전에 비행기 물건을 가지고 내리다가 걸린 승무원들 중 한 두 명은 제 발로 회사를 나갔다고 하며 나머지는 그 이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녔다고 들었다. 


사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빵과 요거트 같은 건 바로 버리는 제품이라서 가지고 내린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진 않겠으나 그래도 회사 물건이라서 나는 가지고 오기가 조금 꺼림칙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특히 술 같은 걸 가지고 내리는 사람들은 간이 정말 크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게 뭐 살림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수준도 아니라서 다들 특히 홍콩 승무원들 위주로 많이 하시긴 하는데 일반적인 건 절대 아니긴 하다. 


이 이야기를 사실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을 했으나 이미 몇 년 전에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될 정도였고(물론 홍콩 기준) 홍콩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라서 굳이 숨겨야 할 필요를 모르겠다. 어딜 가나 다 어두운 면 혹은 알리고 싶지 않은 면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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