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승무원 그만두다
9월 말로 10년이나 했던 승무원을 그만두었다.
3월 말에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시간이 안 가는 듯했으나 어느새 9월이 당도했고 홍콩으로 들어가서 모든 걸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 왔다. 캐세이 퍼시픽 이라는 회사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일할 줄은 입사할 당시에는 거짓말 같지만 꿈에도 몰랐다.
길면 5년 짧으면 3년간 일하다가 다시 한국 와야지 했던 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초반 1-2년차에는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이후에는 비행이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오늘은 뉴욕 일주일 뒤에는 오사카 그리고 열흘 뒤에는 파리 그리고 보름 뒤에는 모스코바 그리고 또 며칠 뒤에는 런던 이라는괴이해 보이는 일정을 매달 소화해 내면서 솔직히 재미있었다.
호주 시드니 에서는 영양제를 사고 스페인 마드리드 에서는 이가 시릴 만큼 달디 단 만다린 오렌지를 사고 이탈리아 밀라노 에서는 와인을 사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마카롱을 샀다. 하루하루가 재미있었고 현지 가격 그대로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으며 전세계의 슈퍼 마켓을 마음대로 가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 만점이었다.
홍콩에서 풍족하게 살았다고는 못 하지만 시간이 맞고 마음이 맞는 한국인 동기들과 오프 날이면 모여서 생맥주를 마시면서 같이 일한 정신 나간 승무원 욕도 하고 진상 승객을 안주로 삼아서 신명나게 놀았다. 그리고 코로나를 맞이했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만두지 않았으리라.
코로나로 인해 비행은 사라지고 한 달에 한 번 비행을 하면서 겨우 연명해야 했다. 비행 체류비가 월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나는 그만큼 월급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비행만 다녀오면 해야 하는 호텔 격리 생활이었다. 지긋지긋한 호텔에서 최대 21일까지 격리를 해야 하는 홍콩 정부의 공지는 소름 끼치게 현실성이 없었으나 우리는 결국 따라야 했고 나는 안식년을 내고 2년을 한국에서 쉬었다.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승무원 할 시절보다 돈은 더 벌었지만 비행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올해 초에 다시 비행을 복귀했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행을 하진 않았지만 며칠 만에 바로 적응했다. 7년이 넘게 비행을 해서 그런지 몸이 다 기억하고 있었고 소소하게 바뀐 걸 제외하고 서비스는 그다지 전과 많이 바뀌지도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체력적인 한계와 너무 낮아진 월급이 고민이 되었고 한 달 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면서 병가를 쓰게 되었고 한국에 들어와서 몇 개월 정도 있다가 지난 달 말에 홍콩에 들어가서 모든 걸 정리하고 돌아 왔다.
회사 아이디 카드와 관련 카드들을 반납하면서 만난 회사의 오래된 승무원 출신 담당자가 덕담을 해주는 순간 눈물이 조금 나왔지만 그래도 다 끝나서 이제는 후련하다.
사실 아직도 승무원을 정말 그만둔 건지 실감이 나진 않으며 오랜 꿈을 꾼 거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다 끝났다.
10년 간 정말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