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PA는 인천 홍콩 구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캐세이 퍼시픽에 입사한 한국인 승무원들은 기내 방송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국제 항공사 이다 보니 영어 와 모국어 기내 방송을 통과해야 하는데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 기내 방송 시험을 봐야 한다. 대부분은 통과하지만 가장 힘든 건 기장의 방송을 번역해야 할 때이다.
물론 매뉴얼이 다 있고 요즘은 어플로 찾아볼 수 있지만 가끔 정신없을 때면 기장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를 때가 있고 기장 마다 말하는 스타일이 다 달라서 초반에는 이것 때문에 힘들었다. 특히나 캐세이는 여국이나 호주 출신의 기장들이 많아서 발음을 알아 듣기 어려워 하지만 나는 그래도 호주에서 2년 남짓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발음 알아 듣기가 그다지 어렵진 않았는데 간혹 가다 스코틀랜드 출신 기장 만나면 이게 영어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런데 미국 애들 말 들어보면 자기들도 사투리 심한 애들은 못 알아 듣는다고 해서 내 문제가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었을 정도다.
보통 한국 비행에는 한국인 두 명이 무조건 승무원으로 일하게 되어 있는데 비행 시작할 때에는 내가 막내라서 무조건 내가 기내 방송을 해야 했는데 초반에 너무 긴장하고 내가 발음이 안 좋은 편이라서 이런 저런 실수를 정말 많이 했었다.
특히 홍콩 도착하는데 인천 도착했다고 실수해서 다시 정정한 적도 있을 정도인데 옆에서 선배 승무원님이 웃참하는 걸 보는 건 고역이었다. 그래도 좋은 선배님이라서 뭐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말이 빠르고 발음이 상당히 안 좋아서 외국 살다 왔냐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로 굴욕적인 순간이 있었는데 집에서 혼자 기내 방송문 읽어 보고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도 하면서 나중에는 많이 나아지긴 했다. 사실 정신 없이 일하면 기내 방송 하는 것도 정말 스트레스 이지만 센스 있게 자동 기내 방송을 틀어주는 분도 계셔서 그럴 때면 말은 못해도 너무나 감사하다.
처음 비행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어떻게 서비스를 한 건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물론 엉망진창이었을 거라는 건 안 봐도 뻔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경험도 다 추억이구나 싶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뭐 어떤가. 내 기억이고 내 추억인데 미화 좀 했다고 욕 먹을 일은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승객들은 기내 방송 아무도 안 듣는 건지 기내 방송 때문에 승객한테 불평 들은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도 승무원 되기 전에는 기내 방송 아예 안 들었으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