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한다. 겨울잠을 깨 비몽사몽간에 둥지를 나서는 곰처럼 몸이 둔하다. 한 생애 동안 살던 곳인데도 여기가 어디인지 식별이 안 된다. 잠이 현실이고 지금이 꿈인 것 같은 느낌이다. 안개가 끼어 있는 축축한 숲 속을 걷는 것처럼 집을 나선다.
행선지는 평창동이다. 이름이 낯선 카페로 불려 나가는 기분은 좋다기보다 미로로 향해 출발하는 생쥐가 된 것 같다. 그만큼 오랜 칩거가 움츠러들게 한 것이다. 설핏 도망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실현 가능성 없는 그리고 실행하지 않을 게 뻔한 생각들은 왜 머릿속을 실바람처럼 지나다니는 걸까? 그러한 생각들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새삼 의문스러운 것들이 많아진 것 보니 뇌가 좀 깨어나는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수애뇨’라고 입력한다. 27분 후에 그곳에 당도해 있을 것이라 기계가 예언해준다. 대개는 이 예언들이 맞아떨어지는 21세기는 기계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느덧 당연해졌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맹목적으로 수동적이게 변해가고 있다. 무기력을 호소하는 인간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머리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아졌다. 행동하는 인간이기보다는 작동하는 인간으로 변해감으로 무기력해진다.원초적 행위에 대한 목마름으로 무의식의 반항이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굽이굽이 언덕이 많은 평창동까지 걸어가야 하는 행위를 해야 했다면 나는 동면에서 잠이 덜 깬 기분을 일찍 떨쳐 냈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지 못했더라면 지도를 보고 길하나 하나 표지판 하나하나를 정신 차리고 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나는 안개 낀 머릿속이 맑아지는데 지체됨을 겪는다.
시나리오를 의뢰받은 일 또한 백일몽을 꾼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상상이 만들어 낸 꿈이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든다. 꿈이라도 확인은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평창동을 향한다. 막상 상상의 일이라고 생각을 이으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도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진다. 안개 때문이리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의 너울거림이 더욱 그런 기분을 부추긴다. 잠이 서서히 깨면서 꿈이 아니라는 확신으로 무게추가 이동한다. 현실이라면 더욱 이상하다.
나는 어쩌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고 어쩌다가 감독님을 만나 회의를 하러 가는 것인가? 누가 무엇을 위해 진행되는 일들인가? 과연 이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한 것일까? 안개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듯이 정확한 답은 구하지 말라고 한다. 인생에 뚜렷한 것은 없다고 그게 정답이라고. 뚜렷하지 않은 이유를 가진 그러나 마치 다 내가 계획한 일 인 냥 짐짓 연기를 하기 위해서 카페 앞에 파킹을 한다. 카페 문을 연다. 딸랑하고 종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이제 모든 것을 다 잘 안다는 듯 연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작동이 잘되길 바라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