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카톡이 울린다. 설핏 잠들었던 나는 시계를 본다. 1시 24분이다. ‘또 술을 먹었군. 이번엔 꽤 오래 참았네. 한 오 개월만 인가?’ ‘아니 안자’ 답장을 보낸다. 세면대로 가서 가볍게 세수를 한다. 내친김에 양치도 한다. 스킨을 가볍게 바르고 다시 핸드폰을 잡는다. 이번엔 뭐라고 핑계를 댈까? 궁금하기도 하다. 카톡 오는 시간이 좀 걸리는 걸 보니 아직 딱히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듯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뻔뻔해지기로 했어. 나 너 보고 싶다. 집에 올 수 있어?’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뻔뻔하다는 단어를 생각해 내기까지 힙합 가사라도 뒤져 본건가? 마음이 동했다. 잘 찾아낸 단어인 것 같다. 식은 숭늉같이 미적지근한 핑계를 대는 것보다는 뻔뻔한 놈이라고 인정하는 게 낫지. 외투를 챙겨 입으면서 택시를 호출한다. 거절할 이유도 거절할 생각도 없다. 어쩌면 연락이 한 번쯤은 더 오길 바랐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되뇌었지만 수컷의 본능이 센 그 녀석은 내가 자기를 그리워하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나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7년이 지나는 동안 1년은 뜨겁게 연애를 하고 2년 동안은 서 너번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술만 마시면 나를 불러내기를 4년째다. 2년 전부터는 만나면 얘기도 안 한다. 그저 서로의 몸을 안고 뒤돌아 선다. 택시를 타고나서야 답장을 보낸다. ‘가고 있어’ 그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했듯이 나도 이제는 무감각하다. 혼돈 따위는 없다.
그는 그저 그런 놈이고 나는 그저 이런 여자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헤어지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헤어진 것은 확실하지만 끝나지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보신탕 뱀탕을 많이 먹어 마지막 숨이 잘 끊어지지 않는 노인네 같은 인연이 지금의 우리의 상태다. 이제는 끊어 낼 필요조차 이유조차 잃어버린 사이가 된 것이다.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예 불도 꺼져 있었다. 나는 뱀 허물을 벗듯이 옷을 흘려내려 버리고 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익숙한 순서대로 키스를 하고 서로를 만지고 흥분시키고 절정에 도달한다. 그리고 잠시 나란히 누워 있었다. “누구랑 마셨어?” “ 회사 사람들하고.” 그리고 다시 두어 가지 순서를 생략한 동일한 행동을 반복한다. 나는 일어나 속옷만 챙겨 입고 침대에 걸터앉아 오늘 해야 할 말을 한다.
“ 나 내일모레 결혼 해.”그는 아무 말없이 일어나 앉는다. “누군데?” “누구라고 말하면 알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영관리 팀 김 대리님.” “뭐?” 나의 어깨를 돌려 내 얼굴을 빤히 본다. “응. 그래 네가 사람 좋다던 김 대리님. ” “ 그럼 그동안 김대리님이 말하던 여자 친구가 너였어?” “너랑 그런 얘기도 했어? 김대리가?” “나 이제 집에 갈게. 결혼식에 올 거야? 오겠지? ”
나는 옷을 마저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서며 마지막 말을 했다. 6년 동안 수도 없이 말했지만 그가 한 번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말. “나한테 이제 연락하지 마. 난 네가 급하면 가는 화장실이 아니야.”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큰길에 빈 택시가 바로 앞에 있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바람은 차지만 시원했다. 내 마음처럼... 끝
PS 실랄한 합평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